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큰 지출을 한 덕에 동주는 남은 이주의 생활 동안은 빌어먹는 인생이 되어야 했기에 아침에 토스트나 김밥 하나도 사 먹을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쫄쫄 굶고는 아침 회의에 참석했던 동주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천둥번개를 치는 위장 때문에 좌불안석이었다.'“이번 학습 만화에 들어갈 표지와 도비라 그리고 권 도비라의 디자인 업체는 평소에 거래를 했던 곳 말고 다른 곳으로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대상이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학습 만화의 특징상 화려한 색채에 귀여운 만화와 서체가…….”'“꼬르륵…… 꿀떡.”'어찌나 소리가 크게 나던지 모두들 소리의 주인공인 동주에게 시선이 몰렸다. 그러자 동주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두 손을 빨개진 양 볼에 대고는 수줍게 말했다.'“밥을 못 먹었더니……. 하하하.”'모두들 조금씩 키득거리다 모두 그런 상황을 겪어보았기에 다시금 회의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회의가 끝날 동안까지 동주는 세 번의 천둥 번개를 동반한 위장의 반란을 들어야 했다.'“세상에 한 끼 안 먹어 줬다고 이 난리냐? 내가 창피해서 원.”'모두들 회의실에 나가고 혼자 남은 동주가 창피함에 뱃가죽을 두 팔로 감싸고는 좌절한 듯 말했다.'“넌 한 끼 안 먹었다고 쓰러지기도 하지 않았나?”'“앗, 깜짝이야. 쫌! 인기척 좀 내고 다니세요.”'회사에 있을 때는 존대를 하고 회사 밖으로 나가면 늘 말이 반 토막이었던 동주는 배가 고파도 이성만은 바로 잡혀 있는지 갑자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 온 승백에게 존대를 사용해 말을 했다.'“이거라도 먹을래?”'순간 승백이 말한 이것에 솔깃한 동주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승백이 양복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주먹에 쥐고 꺼내었다.'“생감자로 만든 포카 칩이다.”'그러면서 주먹으로 감자를 만들어 동주의 눈앞에 가져다주었다.'“이 자식이 진짜!”'“꼬르륵…….”'이성이 사라져도 배는 고픈 법.'“하하하…….”'주린 배를 붙잡고 여전히 창피해 하는 동주를 뒤로하고 승백은 웃으며 회의실을 나왔다. 그러다가 한 쪽 주머니 안에 있던 초콜릿을 손에 집더니 다시 회의실 문을 열고는 여전히 얼굴이 벌게져 있는 동주에게 무언가를 던졌다.'“앗!”'순발력 없는 동주는 유독 먹을 것에 강했다. 지금도 뱃가죽을 잡고 있던 손이 승백이 뭘 휙 던지자 한 손으로 바로 잡는 나이스 캐치를 해 버렸다.'“그거 먹고 배 좀 조용히 시켜!”'그리고는 승백이 회의실 문을 닫고 사라졌다.'“저 자식은 곱게 주면 좀 좋아?”'그러면서 거칠게 초콜릿의 옷을 벗긴 동주는 쪼개어 먹으라고 친히 선까지 구분되어 나온 그 초콜릿을 한입에 넣어 와그작 씹어주었다.'“음, 역시 이 맛 이로고.”'동주는 녹은 초콜릿들이 이 사이에 낀 것도 모르고 씩 웃으며 감탄했다.''오늘은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 환영회 겸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극한 성비 불균형으로 여대 분위기를 조성하던 기획도서 팀에 이번에 남자 신입사원 그것도 꽃미남 신입사원들이 대거 입성함에 따라 오늘 동주는 안 하던 라이너까지 그리고 출근을 해 주셨다. '그렇게 1차 2차까지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차에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소파에 앉자 한 신입사원이 살아남고자 하는 아부로 옆에 앉은 동주에게 사뿐하고도 사근사근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선배님 오늘 아름다우십니다. 매일 이렇게 화장하고 다니세요.”'“어머. 호호호 그래?”'“선배님은 자연 미인이시죠? 요즘 워낙 수술을 해서 그런지 얼굴이 죄다 똑같은 게 마네킹 같아요. 하지만 선배님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동양미인 같으십니다.”'“엄훠, 그럼. 난 전혀 얼굴에 칼 데지 않은 순수한 자연산이지. 암, 그렇고 말고.”'연신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어대며 깔깔거리는 동주와 그 외 신입들의 광경을 보고는 승백은 계속 못마땅한 듯 표정을 불퉁거렸다. 그러더니 승백이 마이크를 들더니 모든 이가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이동주 씨, 요즘 코 수술은 칼이 아닌 가위로 하나 보죠?”'순간 모든 이는 동주의 오뚝한 콧날에 집중되어있었고 동주는 눈이 확 찢어질 것처럼 치켜세우며 승백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동주가 그러거나 말거나 승백은 자신의 18번인 박효신의 동경을 찾아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동주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알고 있는 장승백의 심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