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이니? 네가 치마를 다 입고.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예쁘다. 평소에도 그렇게 좀 꾸미고 다녀."'우민은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고등학교 때 교복 치마 외에 평생 치마라곤 입어본 적 없던 그녀였다. 언제나 후줄근한 청바지나 펑퍼짐한 카고 바지에 헐렁한 후드 티. 그리고 질끈 동여맨 머리.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그것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그런데 오늘은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정장 투피스에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모처럼 화장까지 한 얼굴이었다. 머리는 미용실에서 드라이를 하고 안경 대신 렌즈까지 꼈다.'"뭘…… 치마 좀 입은 거 가지고."'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지만 우민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명색이 XX라는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예쁘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지 않을 여자가 있겠는가?'"결혼식 끝나면 뭐 할래? 피로연도 없다는데 그냥 들어가기 뭣하잖아."'"하긴 오랜만에 딸린 혹들 다 떼버리고 왔는데 좀 놀다 들어가야지."'그렇다. 오늘 우민이 평소와 다르게 정장을 입은 건 대학 동기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이제는 이십대 끝 무렵에 다다르니 이런 때만이라도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겠다 싶었다. 이미 친구들 대부분은 결혼을 해서 유부녀가 돼 있는 판국에 자신만 싱글인 것도 뭔가 처지는 느낌이었는데 옷차림까지 후줄근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이십대 초반에야 뭘 입어도 파릇파릇한 생기로 커버가 되었겠지만 이제 스물아홉,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아닌가.'"미안, 난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식당에서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다음 장소를 논의하는데 영선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왔다. 영선은 어깨에 힘을 주고 조금 으스대는 투로 말했다.'"우리 자기가 데리러 온다고 했거든."'"계집애, 너 요즘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다? 애인이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 지겹지도 않니?"'"그러게 남자는 적당히 밀고 당겨줘야 되는 법이라구."'영선은 친구들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그녀의 얼굴에는 사랑받는 여자 특유의 오만함이 있었다.'"얘는, 우리 자기는 하루만 내 얼굴 못 봐도 병 나. 호호, 저번에 광주에 있는 언니네 집에 이틀 정도 다녀왔더니 얼굴이 아주 누렇게 떴더라."'"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