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렌지 마멀레이드. '그것이 지윤과 주연이 함께 운영하는 작은 수제 초콜릿 가게의 이름이었다. 두 사람 다 주황색을 좋아했고 두 사람 다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좋아했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 때면 가게 한쪽 구석의,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훌륭한 성능을 자랑하는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주연이 익숙한 솜씨로 미니 오븐에서 베이글을 구웠다. 그런 다음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고 그 위에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덧바르곤 했다. 늘 명랑하고 소녀 같은 지윤은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먹을 때면 꼭 주황색 보석을 삼키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주연은 그런 지윤을 비웃었지만,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알갱이 하나하나가 반짝거리는 주황색 보석.'스물아홉 살 동갑내기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지윤은 160센티미터라고 바락바락 우기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거기에서 2센티미터 정도 모자라는 작은 키에 통통한 스타일인 반면, 주연은 초콜릿을 만드는 일이 직업인 사람답지 않게 늘씬하고 키가 컸다. 지윤이 눈웃음과 보조개라는 매력적인 도구를 가진 귀여운 스타일이라면, 주연은 무심하고 차가워서 찬바람이 쌩쌩 도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판이했다. 지윤은 오븐 안에 무엇을 넣어 놓았는지도 깜빡깜빡 잊어버릴 만큼 덜렁대는 반면 주연은 뭐든지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다. 지윤은 주연이 무언가를 잊어버리거나 실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눈물 많고 정 많고 마음 약한 지윤에 비해 주연은 차갑고 도도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차갑고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자연히 지윤의 주변에는 주연의 표현을 빌자면 ‘쓸데없는’ 친구들이 득시글거렸고 주연은 아주 제한된 인간관계를 유지했다.'그런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사랑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없다는 것이었다. 몸 어느 구석에 점이 어떻게 박혀 있는지까지 다 아는 두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과거 연애사를 꿰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연애사가 썩 신통치 않았다는 것도 또한. 상냥하고 친절하고 마음 약한 지윤마저 연애나 사랑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못해 시니컬하기까지 했다. 지윤이 의도하지 않은 독신주의자라면, 주연은 철저하게 스스로의 의지로 독신주의자의 길을 선택했다. 두 사람은 가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새로 개업한 상큼한 빛깔의 치과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원룸에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 지윤의 치통은 주연 자신의 것만큼이나 가깝고 생생한 아픔이었다.'치과에 간다고 나갔던 지윤은 한 시간쯤 후에 심란한 얼굴로 돌아왔다. '“뭐야, 한산해 보이던데 사람이 많았어?”'“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