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남짓한 남루한 옷차림의 소년이 엄마의 손에 끌려 백화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소년의 엄마는 소년의 초라한 외양과 다르게 세련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백화점에 난생 처음 와 보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 소년의 이름은 함건하였다. 건하는 몇 년 만에 나타난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갓 서울에 상경한 상태였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건하를 데리고 곧바로 이곳 백화점으로 왔다. 엄마가 왜 이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 건하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곧 새아빠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시골에서 자란 건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주 생소했다. 기차도 난생 처음 타 보았고 자동차며 빌딩이며 온통 낯선 것들뿐이었다. 그마나 다행인 건 도시에도 나무가 있고 하늘이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빛바랜 가로수들이었지만 푸르른 잎사귀를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 백화점 안에 들어 선 건하는 백화점 안이 너무 밝아 눈을 자꾸 비볐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 좁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번쩍거리는 가방과 신발들이 눈에 띄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눈부셔 건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 잠시 후 눈을 뜬 건하는 이제 소음과 빛에 조금 익숙해졌다. 헌데 낭패가 났다. 좀 전까지 신발 코너에서 점원과 얘기를 나누던 엄마가 사라진 것이었다. 건하는 울상을 지으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 엄마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던 건하는 자신이 아까 엄마를 잃어버렸던 그곳에 다시 왔음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그곳에 없었다. 대신 엄마가 있었던 그 자리에는 어린 계집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쀼루퉁한 표정으로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계집아이 옆에는 한없이 다정한 듯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소녀의 아빠인 모양이었다. 건하는 갈 데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망연히 그 소녀를 쳐다보았다. 공주처럼 어여쁜 그 소녀는 공주가 신을 만큼 작고 반짝거리는 신발을 신고 벗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건하의 눈에는 그 소녀가 신발 고르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의 심술과 짜증을 다 받아 주는 소녀 아빠의 웃음소리에 건하는 한동안 취한 사람처럼 몽롱해졌다.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건하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저토록 가슴을 울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건하야! 건하야! 함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