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과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생각보다 좀 오래되었다.'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아무튼 그랬다. 운동신경이 둔한 내가 자전거를 간신히 배워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까지 한창 자전거로 통학하던 때였는데, 그날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슬슬 콧노래와 함께 오늘 배운 음표들의 콩나물 대가리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페달을 놀리고 있는데, 내 옆으로 스쿠터가 아주 폼이란 폼을 다 재면서 달려오더란 말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비너스다 뭐다 하는 멋들어진 스쿠터는 없었던 때여서 그 녀석이 탄 스쿠터는 일명 짱깨 애마로, 중국집 배달부들이 탈법한, 앞에 달린 넓은 챙이 허옇고 전체적으로 촌스런 자주색의 스쿠터였는데, 그걸 타고 달려오면서 어찌나 똥 폼을 재던지 웃겨 죽겠어서 나도 모르게 쿡쿡 웃었더랬다.'그런데 이런 젠장 할. 나의 웃는 모습을 그 녀석이 떡하니 보고야 만 것이다! 아뿔싸, 난 재빨리 웃음을 지우고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은 그 녀석의 눈빛이 등에 박혀서 나도 모르게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애써 모른 척하며 앞을 향해 조금은 빠른 속도로 발을 놀리는데, ‘부앙’하고 무지막지한 소음을 내더니 그 스쿠터가 어느새 내 자전거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 것이 아닌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 녀석의 스쿠터는 차도에 있었고, 내 자전거는 인도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는데, 갑자기 내 등골이 서늘하게끔 그 녀석이 스쿠터의 앞바퀴를 들어서는 냉큼 인도의 턱 위로 올라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