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강검 아니 강변!”'온통 바쁜 걸음으로 가득한 사람들 틈을 헤치고 누구보다 빠르게 법원을 나서던 보은은 저 만치 들리는 건장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잡느라 숨이 다 차네. 뭐가 그렇게 바빠.”'“이 정도로 숨까지 차면 선배 운동부족이에요.” '과장되게 숨까지 헐떡거리는 정우를 보며 보은은 안됐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요즘 운동이고 뭐고 잠이나 제대로 자고 싶다.”'“잠은 무덤 속에서 질리도록 잔다.”'무심한 듯 한 무표정의 보은이 말을 꺼내자 뒷말은 정우가 이어갔다. '“할 수 있을 때 죽을힘을 다해 일해라.”'신입시절 부장검사 때문에 구호처럼 여겨지던 말을 입에 올리자 두 사람은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여전한 모양이네요. 그쪽은.”'“죽지 않을 정도. 넌 어때? 변호사일은 할 만해?”'검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을 때에 비한다면 변호사가 된 지금은 시간이 남아 돌 지경이다. 하지만 보은은 별 말없이 작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맡는 일마다 승률 100%라던데. 부장검사님 강 검사 놓아준 거 아주 대놓고 후회하신다.”'“강 검사는 무슨. 검사 접은 지가 언젠데.”'정우와 헤어지고 차에 오른 보은은 깊다 못해 한탄에 가까운 한숨을 뱉었다. 정우의 인사치레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긴 했지만 아직도 강 검사라는 호칭을 들으면 속이 쓰렸다. 그리고 당연한 순서처럼 일 년 전 전쟁 같던 기억들이 제멋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