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바람은 따뜻하다. 아니, 따뜻하단다.'스물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지금처럼 추운 적이 없는 희연은, 오늘도 어김없이 미술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이즈음 그녀는 저물녘 어김없이 둥지를 찾아드는 새처럼, 점심시간이 되고 나면 아무도 모르게 이곳을 찾곤 했다.'자료실과 함께 더는 창고이상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는 미술실 안으로 들어서면, 그늘 속에 서식하는 특유의 먼지 냄새가 후각을 자극해 왔다.'희연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줏빛 벨벳 커튼이 쳐진 어둑한 미술실에,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들을 새라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 보지만, 고요를 가르고 지나는 구두소리는 여전했다.'이럴 바에는 빨리 걷는 편이 낫겠다 싶은 생각에, 보폭을 좁힌 희연은 다다다다, 하는 소리를 내며 구석으로 다가섰다.'비밀 문(?) 앞에 수북하게 쌓인 집기들을 치우고 안으로 들어선 희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함께 교생 실습을 나온 친구들은 봄바람이 초여름의 그것 같다고 했지만, 막상 희연은 그늘지고 습진 이곳에 들어오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한때는 흰색이었을, 이제는 낡아서 누렇게 그 빛이 바랜 장식장 너머로 손바닥만 한 창문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무척이나 오래됐을 것 같은 창으로 투영된 햇살을 받으며, 희연은 알록달록한 무늬가 그려진 담요가 깔린 간이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선배가 알려준 이곳을 처음 찾은 날은, 숨어있던 누군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내내 가슴을 졸였었다. 아무리 마음이 불편해도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