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그녀는 나의 비밀

그 여자는 오전 9시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건희는 지루한 얼굴로 발을 까딱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앉은 자리에서는 호텔 반대편에 위치한 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공원의 시계탑 아래에 선명한 빨간색의 레인코트를 입은 여자가 홀로 서있었다.'‘애인이라도 기다리나?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하기도 하지. 그래도 저런 짙은 빨강이라니, 촌스럽기는.’'시계탑에 기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여자는 마치 동상 같았다.'“저, 시간 됐습니다. 지금 올라가셔야 하는데요.”'목이라도 조를 것처럼 넥타이를 꽉 죄어 맨 남자가 입구에서 건희를 불렀다. '건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폈다. 그리고 벗어둔 상의를 들고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고모를 대신해 참석한 세미나가 막 시작할 시간이었다. '‘졸기라도 했다간 고모가 날 죽이려 들겠지?’'호텔업계와 지역 관광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구에서 열리는 세미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석에 의의가 있을 뿐, 누가 나와 열변을 토하든 그의 관심 밖이었다.'“어제 일어났던 괌 비행기 사건을 모두 아실 겁니다. 아무리 글로벌화로 세계가 안방처럼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지리적 이점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써…….”'무슨 관광협회에서 나왔다는 사내가 기나긴 연설을 시작했다. 오전 내내 건성으로 자리를 지키던 건희는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휴게실로 내려왔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고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 여자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바람 맞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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