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들어?”'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달라진 후였다. 어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낯선 공간, 아이보리색 침대. 허나 걱정스럽게 묻는 것은 조폭같이 생긴 덩치가 아닌 그런 일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젊은 남자라, 나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꽤 오래 잤어.”'“여, 여긴…… 어디인가요.”'“걱정 마. 해칠 생각 같은 거 없으니까.”'“…….”'“우선, 이것부터 먹어 둬.”'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누워있는 곳은 마치 궁전과 같아 보였다. 우선 비싼 실내 장식들과 고급스런 침대, 깔끔한 가구들 어디를 봐도 내가 예전에 살던 집과는 달라 이질감이 묻어났다.'“…….”'“비타민제야. 신경 쓰지 말고 먹어.”'그래도 다정한 말투로 나를 대하는 젊은 남자는, 악의라고는 전혀 없어 보여 기분이 한결 나아지도록 만들었다. 그럼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런 것을 생각하기엔 일단 목이 너무 심하게 말랐던 터라, 나는 남자가 건네는 두 알의 알약까지 의심 없이 받아먹었다.'“많이 놀랐을 거야.”'“근데, 여긴 어디…….”'“그건 차차 알게 되겠지.”'편한 니트 차림을 하고 짧게 자른 검은 머리와 걸 맞는 인상적인 검정색 눈동자로 나를 보는 남자는, 마치 모든 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담담한 말투였다. 이제 보니 이곳은 평범한 가정집인 것 같다. 평범하다고 하기엔 훨씬 고급스런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사람 살기에 문제가 있는 집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일단은 술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직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 남았으나,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시 안도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술집으로 끌려갈 뻔 했던 나를 구해준 은인이 아니었던가. 이제야 새삼 제 자리를 찾아온 기억에 나는 지금의 상황이 조금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절 구해주셨잖아요.”'“…….”'“맞죠?”'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생김새와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기억해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왔다는 믿음 때문인지 그에게 친근함이 느껴졌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기 위해 반갑게 입을 열었다.'“일단은 좀 더 자 둬.”'허나 남자는 대화가 길어지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단순히 말을 섞는 걸 귀찮아한다기보다, 자신을 많이 드러내는 걸 피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대신 희미한 미소와 함께 내가 다시 누울 자리를 정돈해 주는 것으로, 그는 의아해하는 내 눈빛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이제 눈을 뜨면,”'“…….”'“전혀 다른 삶이 시작될 거야.”'조심스런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든 남자의 시선에서 묘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아까 먹은 비타민제는 정말 비타민제가 맞는지 이상하게 내 몸에서는 자꾸만 기운이 빠져나갔다. 전혀 다른 삶이란 무엇일까.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나는 지독한 잠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고……'“…….”'마지막으로 마주친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선, 그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