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 서울.''가을비가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는 신희의 손에 식은 커피 잔이 들려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과, 유리 문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어느새 낙엽들이 뒤엉켜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냈다.'신희는 콧등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무태 안경을 내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머지 한 손으로 미간 부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며칠 야간작업을 했던 터라 피로는 쉬 물러가지 않았다. 머리를 한껏 치켜들자, 귀 근처에서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조금의 틈도 없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듯 목까지 채운 단추는 답답해보였다. 제복처럼 군더더기가 없는 옷차림은 그녀를 유능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근사하게 어울렸지만 딱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까칠하게 곱이 낀 입술이 벌어지며 한탄처럼 흘러나온 말에 그녀는 스스로 어색해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식은 커피를 식도로 밀어 넣기도 싫어, 책상 한편에 내려놓았다. 스산한 늦가을 비 때문인지 사무실의 공기가 한층 싸늘하게 느껴졌다.'“……팀장님?”'언제 들어왔는지 전략기획팀의 정상경 대리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밖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것이 무안해, 신희는 밭은기침으로 무마했다. 생기가 도는 부하직원의 모습이 순간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울적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칙칙한 흑백의 사진처럼 생명력을 상실한 자신과 다른 여자에 대한 부러움이 목에 쓴 물을 넘어오게 했다.'“흠, 흠! 무슨 일인가요?”'“회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