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진료실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열릴 것 같지 않더니 의사 선생님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미안해요, 아린 학생. 더 이상은.”'“선, 생님. 우리 엄마는요? 그럼 우리 엄마는……. 제발 살려 주세요. 엄마까지 저한테서 빼앗아 가시면 저는. 제발. 흑흑. 제 목숨을 가져가시고 엄마만은…….”'“아린 학생 심정 이해하지마는, 휴, 이럴 때는 내 자신이 정말 싫다네. 내가 신이 아닌 이상은 나도 더 이상은…….”'“선생님. 살려 주세요. 우리 엄마. 저 하나 키운다고 고생만 잔뜩 하셔서 이제야 겨우 살만해 졌는데. 이렇게 가시기에는 정말 너무 억울하잖아요.”'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이 자리를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기 위해 주춤거리던 의사의 얼굴도 안색이 너무 안 좋다. 이 학생에게 더 이상 해 줄 말도, 희망적인 말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의사 선생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을 흐느껴 울던 아린이 더 이상 울 기력도 없는지, 목이 메어와 말도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얼, 마나 남았나요?”'“1주일이 고비라네. 좀 더 빠를 수도 있고. 혹시라도 연락할 곳이 있으면…….”'“알겠습니다.”'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나가는 아린의 뒷모습에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도 눈시울이 붉어진다.'“김 간호사가 수시로 잘 지켜봐요.”'“네. 선생님. 하지만 너무 안 됐네요.”'“가는 사람도 맘 편히는 못 갈 것 같네요. 저 학생을 놔두고 쉽게 가지겠어요? 단둘이 의지하며 여태껏 살아 온 것 같은데. 휴, 하늘도 무심하시지.”'“세상이 참 불공평하게 느껴지네요.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에 왔으면. 이 정도까지는.”'“먹고 살기 바쁘다고 무시한 게 병을 키운 것을. 쯧쯧쯧.”'병실 문 앞에서 아린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 내기 시작했다. 아픈 엄마 앞에서 더 이상 눈물 흘리며 슬퍼 할 수만은 없기에 다시 한 번 마음의 감정을 가다듬는다.'‘한아린. 아직은 안 돼. 제발 진정하고 엄마 모습을 꼭꼭 내 가슴에 새겨 넣어야 해. 우는 것은 나중에. 지금은…….’'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아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살금살금 발걸음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가만히 병상 침대에 누워 계신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어느 틈에 고왔던 얼굴이 온통 자글자글 주름이 생겼던가? 단 며칠 사이에 이렇게 여리면서 말라 보이는 엄마의 몸에 그만 또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내밀며 엄마의 얼굴을 손끝에 저장이라도 시키려는 듯이 하나하나 쓰다듬듯이 내렸다. 조금이라도 주름과 고통으로 얼룩진 엄마 얼굴을 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쓰다듬는 손길이 조심스럽다.'“음? 아린이니?”'“응, 엄마. 어느새 우리 엄마 얼굴이 안 예쁘게 변한 건지. 나 못된 딸 인가봐. 엄마 얼굴이 이렇게 변할 동안 나 그동안 무얼 한 거지?”'“아린아.”'“미안하고도 정말 미안해. 엄마. 그 동안 그 아픔들을 어떻게 참은 거야? 흑흑.”'“아린아. 엄마는 괜찮아. 우리 아린이만 있다면.”'“엄마. 흑흑.”'엄마 품속으로 파고드는 아린을 엄마가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은 팔로 안아 준다.'“아린아. 엄마가 만약에 세상을 아니 너의 곁을 떠날 때는 너를 사랑했던 아름다운 기억들과 함께 저 하늘 위에 별이 될 거야. 네가 언제든지 엄마를 찾을 수 있게. 우리 아린이 시집가는 것도 보고 싶었는데……. 그저 이 엄마의 소원은 우리 아린이가 엄마 때문에 더 이상 울지도 힘들어하지도 말고. 씩씩하게, 아주 소박하더라도, 아니 하찮은 것에라도 이기심을 품지 않고 사랑 줄 줄 알고 받을 줄 아는 아린이가 될 거라고 엄마는 믿을 거야.”'“엄마. 왜 자꾸 내 곁을 떠날 것처럼 그래. 나 혼자 버리고 가고 싶어? 나 엄마 없으면 안 되는 것 알잖아.”'“아린아. 엄마는 네 곁에서 언제든지 있을 거야. 후, 엄마가 별이 되어서 우리 아린이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건데.”'“엄마. 나 무서워, 그러지마.”'“아린아. 엄마 집에 가고 싶어.”'“이렇게 아픈 몸을 가지고 집에 어떻게 가? 흑흑.”'“아린아. 엄마 병은 엄마가 더 잘 알아. 그러니…….”'“엄마가 무얼 알아? 의사 선생님께서는.”'“아린아. 엄마 다 알고 있어. 그러니 애써 감추지 마. 조금이라도 남은 시간 너랑 단둘이 지내고 싶어.”'“엄마. 흑. 정말로 엄마 밉다. 미워 죽겠어. 엉어엉.”'“아린아. 집에 가고 싶어.”'“흑흑. 알았어요. 퇴원 수속하고 올게. 하지만 엄마. 다시 한 번 더 생각을 하면 안 될까요?”'“아니.”'어느 때보다 엄마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보이는 이유가 눈물 때문일까? 아니면 내 눈물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린이 나가자 그제야 기운이 다 한 것인지 축 늘어지는 유연이다.'‘휴, 오빠. 나 이제 그만 용서할 때도 되지 않았어? 이제 그만 용서 받고 싶은데. 내 마지막 가는 길에 제발……. 우리 아린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늦기 전에 와 줘, 제발.’

미리보기 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