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도대체 자신이 언제부터 인연 같은 것을 찾았었나. 1달 전만 같았어도 평소의 냉소 띤 반응이 나오기 딱 좋은 소재인데, 지금은 습관대로 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얽혀 버렸잖아.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폭이 센 감정의 기복이, 어느 정도의 밀고 당기기 끝에 토해 놓은 적절한 어휘는 필연이었다. 카드 한 장으로 간단히도 처리되었던 정석현이라는 존재가 다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런던에서 1주일을 보내고 시카고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이미 마음을 정했었다. 6년 전처럼 허탕을 칠 일은 이번에는 없다는 것과 8년 전처럼 무시 아닌 무시로 자신을 속일 마음도 없다는 것. 허탕을 허탕으로 그냥 내버려 두는 안일함도 없을 거고, 무시 아닌 무시를 고집하는 자존심도 일단은 접겠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이도희를 사돈 댁 노처녀로 고이 모셔두고 싶은 생각, 이번에는 눈곱만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