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이 인서를 다시 본 것은, 전주 지점으로 발령이 난 후, 처음으로 매장에 들르던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서가 그동안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있던 ‘그 여자’인지 전혀 몰랐다. 또한 이미 충분히 골 아프던 그녀가 장차 더욱 신경 쓰이고 머리 아픈 존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새로 집을 지을 터를 보고 오는 게 순서겠지만, 허진은 그보다 매장에 먼저 들러보고 싶었다. 감각적인 판단력에 주로 의지하는 허진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매장 분위기를 먼저 들여다 본 다음에 땅을 보러 가기로. '팔린 땅을 아직까지 차지하고 있는, 낡고 허름한 집이 있다는 소리를 아버지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허진은 이번에도 역시 별 생각 없이, 서울에서 내려온 날부터 죽 묵고 있던 호텔의 체크아웃을 했다. 불편하나마 공사를 하는 동안, 낡은 집에서 지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에 허진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하지만 가뿐하게 나섰던 그의 마음은, 길이 막히기 시작하자 이내 짜증으로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 하던 차가 아예 길 위에 멈춰 서자, 허진은 급기야 화가 스멀거리고 두통까지 이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매장까지의 거리를 미리 계산해 두지 않은 탓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늦어져 있었는데, 빠른 길로 가겠다고 방향을 트는 곳마다 길이 꽉꽉 막히는 통에 속이 부글거리고 머리가 지글거렸다. '“이런 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