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고을의 산 아래 남쪽 방향으로 열린 ‘ㄷ’자 모양의 일곱 칸짜리 초옥이 있다. 초옥의 뒤로는 야트막한 야산에 길게 드러누운 소나무들이 그림같이 펼쳐졌고 울타리 밖으로 우측과 앞으로는 넓은 텃밭이 둘러싸여 있었다.'마지막으로 좌측에는 일곱 칸짜리 초옥보다 더 큰 기와를 올린 서당이 있다. 서당은 큰 글방과 작은 글방, 그리고 서고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서당은 고을 사또 박무룡이 신축한 것이다.'육십 중반을 넘긴 늙은 아비와 과년한 딸이 오붓하게 마주 앉아 점심을 들고 있었다.'“설후야.”'“예, 아버지. 국 좀더 드릴까요?”'설후가 바닥이 거의 다 보이는 국그릇을 보며 물었다.'설후라 불린 여인은 방년 이십일 세로 마을 총각들의 기피 대상 일 순위인 노처녀(?)였다.'그녀의 오른쪽 볼과 턱 사이에는 호두알만한 큰 점이 있었고 양쪽 볼에도 깨알 같은 점들이 밤하늘에 별들만큼이나 많았다. 머리는 밭일을 보는 아낙네처럼 넓은 천으로 묶어 콧등까지 가리고 있었다.'그런 설후를 보고 그녀의 아비, 박지학은 고개를 저었다.'“그게 아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데도 이 아비가 딸의 얼굴을 잊은 지 오래구나. 내 도무지 그 얼굴을 기억할 수 없으니 실로 안타깝구나.”'박지학은 왕년에 태사의 지위까지 올랐던 학식과 명망이 높은 선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