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지?”'“서재 좀 둘러봐도 될까요?”'“좋을 대로…….”'승민이 나가고 강윤은 천천히 그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차분한 무채색으로 깔끔히 정리된 서재는 책과 시디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경영에 관련된 책들과 동서양의 고전들, 그리고 수필집들……. 천천히 시선을 옮겨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훑어가던 강윤의 눈에 헤세와 카뮈의 책들이 눈에 띄었다. 국내에 번역된 책들이 거의 다 꽂혀있었고, 그의 손이 가장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꽂혀있는 걸로 봐서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눈으로 빠르게 책제목을 훑던 강윤은 헤세의 시집을 꺼내 손에 들었다. 가벼운 흥분이 일고 있었다. 헤세와 카뮈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들이었다. 자신과 맞닿아 있는 하나의 접점. 왠지 그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책을 펼쳐 헤세의 시를 읽어가던 강윤은 그 아름다운 시들에 빠진 나머지 승민이 서재로 들어선 것도 모르고 있었다.'까만 눈이 그늘을 드리우고 자신의 책을 손에 든 채 그렇게 서 있었다. 헤세의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시선과 표정으로. 그 모습에 승민은 그녀를 부르는 것도 잊은 채 서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던 그 시절의 강윤이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12살의 강윤과 17살의 승민. 지금 승민의 눈에는 그 시절의 그들 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향긋한 커피 내음이 느껴지자 강윤은 고개를 돌려 승민을 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부딪쳤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눈을 응시하였다. 그 눈이 좋았다. 깊은 듯 맑고 까만 그녀의 그 눈이…….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며 뛰는 그녀의 심장 소리와 그녀를 바라보며 뛰는 그의 심장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