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언약가(言約歌)의 무대가 되는 수신국의 도성엔 꼭 가봐야 하는 명소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는 기루(妓樓) 유수루였다. 기녀 서화(書話)가 머물렀던 곳 유수루는 서화가 사라진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도성의 명소임은 변하지 않았다. '그 두 번째는 은하수라는 뜻말을 가진 미리내였다. 도성 근처에 있는 작은 샘인 이곳이 명소로 손꼽히는 것은 시선을 떼기 어려운 아름다운 경관 때문이 아니었다. 유수루와 마찬가지로 언약가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명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리내는 항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허나, 매년 11월 21일만은 그 어느 누구도 미리내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그 연유는 11월 21일이 서화의 존재가 수신국에서 사라진 날이기 때문이었다. 법으로 정해진 금기의 날은 아니었으나 암묵적으로 퍼진 기녀 서화와 황제 수현의 은애를 기리는 사람들 간의 배려였다.'살아 있는 성군이라 불린 수현이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11월 21일. 해마다 내리는 눈이 꽃이 되어 온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리 감싸 안아주는 눈꽃을 동요 없이 삼키고 있는 미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자태로 보아 옷차림으로 보아 귀한집안의 여식이 분명했다.'“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가지 말라 한 곳이기에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박혀 올 수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허나, 저도 모르게 발길이 절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