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민아.”'두 번째로 부르는 소리에 여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건 도완이다. 그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지나치게 강하고, 지나치게 아름답다. 두 눈으로 보기엔 너무도 그 빛이 강해 눈을 멀게 하고 말 그런 빛이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왜 하필 지금 그녀를 원한다고 하는 걸까. 여민이 힘없이 시선을 떨어뜨리는데, 도완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물끄러미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다른 정석은 아무 것도 지킬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시작을 하자. 나랑 사귀자. 홍여민. 연애란 걸 하는 거야, 나랑.”'연애. 그 말이 너무도 낯설고 생소하게만 들려서 여민은 피식 웃었다. 웃는 데, 문득 도경이 한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난 그저 네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게 좋겠다 싶어서.''이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게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봐? 그렇다면 류도경, 넌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 천치야. 라희도 너도 착하기만 한 바보들에 불과해. 그래도 네가 보고 싶은 게 그거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난 한 번도 네게 상냥했던 적이 없으니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쯤 문제 될 거 있겠어.'“당신, 강하죠?”'“응?'불쑥 여민이 물어본 말에 도완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씨익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강할 거야.”'“어중간하게 강한 건 안돼요. 세상 어떤 사람도 당신을 상처 입히지 못할 만큼 강해요?”'“강해. 나한테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없어.”'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도완의 말에 여민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얼굴에 말갛게 빛이 서리는 것 같으면서 입술이 아름답게 호를 그리자 도완의 기억 속에 있던 그 소녀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몹시 지쳐있는 목소리까지 고스란히.'“그럼 됐어요. 해봐요. 연애.”'꼭 예전 그때처럼 도완은 잠시 동안 얼어 있다가 이윽고 환하게 웃으면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도완의 품속에서 가느다란 빗줄기를 밝혀주는 빛이 쏟아지는 가로등을 올려다보면서 여민은 흐릿한 눈으로 생각했다.'당신이 나빠요. 나는 치졸하고. 그래도 다행인 건, 당신이 강하다는 거겠죠. 나 같은 거한테 상처받진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