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례를 치른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갑작스런 왕명으로 지방에 확인할 일이 있어 닷 세간 집을 비웠다 돌아온 김시원은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린 후 옹주가 머무는 별당으로 들어섰다. '급명으로 지방에 가는 내내 혼자 두고 갔던 새신부가 은근히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바보 옹주와 혼인을 하면 마음껏 다닐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첫날밤 몰래 흐느끼던 옹주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던 그였다. '바보니까 무신경하고 무시한다 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그의 짐작이 틀렸던 것이다. 인경궁에서 홀로 지냈으니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할 거라 생각했건만, 왜 이리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아이마냥 불안하단 말인가! 혹 다치지는 않았는지 또 아이들이 놀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별당에 들어서자 이번에 새로 옹주의 몸종을 맞게 된 이월이 인사했다.'“넷째 서방님 오셨습니까.”'“옹주마마께서는?”'“저, 저기 후원에…….”'‘아니 제대로 말하던 몸종까지 말을 더듬다니 이무슨 변고인가!’'시원이 몸을 돌려 후원 문으로 들어서는데 안에서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리더니, 곧이어 박수소리도 들렸다.'무슨 일인가 싶었던 시원은 후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까르르거리며 해밝게 웃고 있던 작은 여인이 그의 가슴으로 폭하니 안겨들었다. '“앗, 어마나!”'눈가리개를 하고 있던 여인이 놀라면서 한걸음 물러나더니 눈가리개를 풀었다.'김시원은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여인을 내려다보다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분명 자신의 내자가 맞는데, 지금까지 기억했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지곤지를 찍은 모습과 밤에만 보아서 제대로 얼굴 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리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니……. '폐서인 오씨의 미색에 빠져 눈과 귀를 닫았다던 현성왕이 이해가 되고 있었다. 희빈오씨라면 그도 어려서 본적이 있었다. 한데, 지금 앞에 있는 여인과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요염하고 여인으로는 키도 컸다는 오씨에 비하면 앞의 여인은 안아버리고 싶을 만큼 작고 귀여웠다.'초롱초롱 빛나는 커다란 눈에 초승달처럼 휜 진한 눈썹.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발그레한 복숭아 빛 양 뺨은 경국지색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가르고 나온 말에 김시원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죄, 죄송합니다. 지, 지원도련님.” '‘허허, 지금까지 내 얼굴도 모르다니. 그 정도로 바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