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 민주는 시내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사가지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집 근처 공원에는 완연한 봄임을 알려주듯이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려 활짝 피어 있었다. 지금쯤 이곳뿐만 아니라 창원 곳곳에는 벚꽃들이 터널을 이루며 그들의 화려한 향연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민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따사로운 볕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 볕을 쬐고 싶어서 나무로 만든 긴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곳을 찾아 앉았다. 벚꽃 그늘에 앉은 그녀는 서점에서 산 책을 펼쳤다. 그리고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강현과 처음 만났던 날 자신의 입술에서 허밍으로 흘러나왔던 그 곡이 이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민주는 그 음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어디선가 낯익은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것을 인지한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서 뭐 하고 있어?”'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가슴이 먼저 반응했으니까.'민주는 느린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바짝 다가서 있는 그의 얼굴로 인해 그녀의 뺨에 그의 입술이 살며시 닿았다.'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쿵. 쿵. 쿵.'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술이 민주의 뺨에 닿은 걸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강현은 그저 무심히 미소 짓고는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여기서 뭐 해? 아, 너무 뻔한 걸 물어봤나? 책 읽고 있는 모습을 빤히 보고 있으면서 말이야.”'그의 눈가에 스민 부드러운 움직임, 그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에 담겼다. 벚꽃 그늘 아래 있는 그의 모습은 눈부시게 하얗고 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눈이 시릴 만큼.'“여기는 정말 봄이 빨리 찾아오는군.”'그렇게 낮게 읊조린 강현은 민주의 옆에 놓인 책 한 권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이거 읽어도 되는 거지?”'민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시선을 떨어뜨려 책을 읽었다. 그늘을 드리운 그의 눈동자가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내었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어떤 때는 진지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스몄고, 또 어떤 때는 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스며들었다.'민주는 강현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옆에는 시디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긴 생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피아니스트, 한지원. 팬인가?’'그녀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강현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민주는 얼른 고개를 숙여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의 머리 위로 와 닿는 손길이 느껴졌다. 바람의 장난으로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그녀 머리 위에 올라앉은 모양이었다. 민주의 몸이 그대로 얼어버렸다.'또다시 쿵. 쿵. 쿵.'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떨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현은 시선을 그가 읽고 있는 책으로 가져갔다.'바람이 불어와 그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리고 나무에 있는 꽃잎들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 부드러운 유혹을 이기지 못한 꽃잎들이 곱게 나부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흡사 그의 부드러운 유혹을 이기지 못한 그녀의 마음 같았다. 그 꽃잎 따라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도 곱게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벚꽃 그늘 아래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가슴속에 사랑 하나를 새겨 넣었다.'온통 하얀 세상. 그곳에 그가 있었고,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