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은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겨놓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적막한 복도 풍경이 그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급하게 걸려온 그 전화는 면도칼에 턱을 베이게 만들었다. 3년 6개월 만에 듣는 해수의 목소리는 현빈의 가슴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현빈은 그때부터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될 수 있으면 놀라지 말았으면 좋겠어. 성하, 지금 병원에 있어. 성하 어머니,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너한테 연락을 취해줬으면 하고 부탁하시더라. 너 연락처 알아내느라 무척 애먹었어. 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3년 6개월만인데 해수가 마치 자주 통화했던 사이인 것처럼 너무나 편안한 목소리로 얘기했고 해수의 그런 태도가 어색한 분위기를 희석해주는 것 같아 처음의 거북함이 조금씩 사라지려는 찰나에 깜짝 놀랐다.'‘성하가 병원에 있다…… 하지만 내가 왜 놀라야 하지?’'“병원에? 병원엔 왜?”'현빈은 짐짓 무심한 어투로 물었다. 왜 꼭 무심한 척하려 했을까? 아직도 자신이 성하라는 이름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약을 먹었어. 수면제 한 통에 보드카 한 병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나 봐. 순식간에.”'해수는 마치 삼류 잡지나 신문 한 귀퉁이에서 본 가십기사를 즐기는 독자처럼 중얼거렸다.“우리, 우리 성하가!”'현빈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놀라지 않는 척 하려고 했는데 소용없는 짓이었다. 성하한테 여전히 붙들려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만 것이다. 속마음을 들키건 어쩌건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현빈은 기절할 것 같았다. 뇌를 휘감고 있는 예민한 핏줄이 콱 막히거나 아니면 모조리 동시에 터져 버릴 듯한 기분이었다. 면도를 하면서 전화를 받고 있던 현빈은 성하가 약을 먹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면도날이 피부를 침범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었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아니 느낄 수 없었다.'“어딨어?”'해수는 병원과 병실을 알려주고 옆에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 달래다가 전화를 끊었다.'현빈은 면도를 끝내지 못하고 군에 있을 때보다 더 빨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면도날에 베인 턱에 약을 바를 생각도 못했다. 현빈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병원에 달려가서 성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밖에는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