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1995년 4월'''''카페의 분위기는 여느 곳과 같았다. 여자는 2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 앉아 있는 남자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여자는 몰랐겠지만 남자 또한 그 여자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어딜 가나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일이 거듭되면서 무시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향한 여자는 달랐다. 다른 여자들이 감탄하거나 선망하거나 갖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는 시선이었다면 그 여자는 슬픔을 품고 있는, 자신의 슬픔을 꼭 자신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은 모호한 표정. 어쨌든 그 여자의 눈빛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자신이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며 ‘왜?’ 라는 의문부호를 떠올리는 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윤기가 나면서 찰랑거리는 까만 생머리만 빼고는 무엇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입고 있는 옷도 카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셔츠남방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자신에게 꼬리치던 여자들처럼 육감적이지도 않았고 아니 카페 안에 있는 그 어떤 여자들보다 비쩍 말라 있었다. 어두운 조명으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예쁜 얼굴도 아니었고 키가 큰 것도 아니었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데도 이런 곳에 출입을 하는 것을 보면 보이는 것만큼 어린 것은 아닌가 보다.'드디어 여자가 움직였다.'남자에게 다가간 여자는 미리 준비 한 듯 곱게 접은 딱지 모양의 메모를 그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주위 어느 누구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션이었다. 남자도 자신의 손 바로 앞에 있는 딱지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정도로. 그냥 스쳐 지나는 것처럼 여자는 지나갔고 테이블 위에는 거짓말처럼 딱지만이 남아 있었다. 순간 남자는 아는 여자인데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 것인가 잠깐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고 기억의 창고를 두드려 보아도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비슷한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호기심! 그 딱지를 펴본 것은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가끔씩 모임이나 파티에서 여자들이 그를 유혹하기 위해 슬쩍 몸을 부딪쳐 오며 메모를 건네 준적은 있었다. 호텔의 룸 넘버가 적혀있고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는.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실수인 듯 스킨십을 유도하며 먼저 의사표현을 확실히 했었다. 노골적으로 난 당신을 갖고 싶다. 당신과 자고 싶다라고. 저 여자도 똑 같은 것일까? 딱지는 접은 지 오래 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메모지 또한 카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걸로 봐서 그 자리에서 쓴 것이 분명했다. 즉흥적으로 아니면 계획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