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르르르. 커피를 따르는 소리가 유난히 조용한 실내에 울렸다. 가사도우미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우아한 백색 잔 가득히 원두커피를 따르자, 잔의 눈부신 흰 색은 어느새 다크브라운의 커피색과 어우러져 진주 빛으로 그 색이 더 깊어졌다.'식탁에 앉아있는 젊은 남자는 그러한 시중이 익숙한 듯,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지 않은 채 손만을 내밀어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향을 음미할 새도 없이, 남자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계속 읽어 내렸다.' 중년의 여인은 남자가 커피를 마시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 그 전에 남자가 식사하던 식탁을 한 번 더 흘끗 보기는 했지만. ' 오늘도 남자는 밥과 국, 김치 외에는 다른 반찬을 제대로 건드리지 조차 않았다.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던 여러 가지 나물과 갈비찜, 솜씨를 잔뜩 부려 예쁘게 장식한 묵 접시도 그녀가 차려놓은 거의 그대로였다. 일단 식사를 할 때는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다리면 되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농도를 정확히 맞춘 커피를 한 잔 가득 내어야 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르게 힘들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