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여운은 부스스 일어나야 했다. 백수가 된 지 이제 겨우 삼 일째인데 어찌나 적응을 잘하는지 정오나 돼야 눈이 떠지고 새벽은 돼야 잠이 왔다. 어제도 늦게까지 비디오를 보다 잠이 든 여운은 밖에서 들리는 북적대는 소음과 어수선한 말소리에 짜증과 궁금증을 동반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비어 있던 앞집이 드디어 이사를 오는 모양이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은 신혼부부였는데 어찌나 닭털을 날려 주시던지 현관문이 열리거나 엘리베이터가 열릴 때마다 손으로 눈을 가려 여차하면 발생할 수 있는 19금의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알아서 차단해야 했었다. 하지만 뭔 놈의 사랑이 그리 얕은지 이사 온 지 팔 개월 정도 지나자 집 안의 살림을 때려 부수는 걸로 사람 겁을 주더니,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하려던 여운의 인내심이 끝을 보이기 전에 알아서들 도장 찍고 갈라서는, 현대인의 필수인 스피드를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