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있던 정신이 금이 간 틈새로 목을 길게 뺐다.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검은 물 밑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타르처럼 찐득하게 엉켜든 물은 여인의 폐부를 죄고 있었다. 여인은 고개를 치켜들어 멸해가는 불빛을 보았다. 납덩이같은 사지를 허우적거려 육지에 몸을 뉘여 숨을 고르고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레 있어야할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함 속에 대저택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붉은 달의 파편이 그 위로 날카롭게 부서졌다. '소년은 그곳에 존재했다. 흐릿한 문 앞에 서서 여인에게 손짓했다. 여인이 홀린 듯이 다가가자 소년은 우아하게 등을 돌렸다. 소음 한 점 없이 열린 문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소년은 어둠을 구석으로 몰아내며 여인을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