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열혈분이

'1장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지만 작고 아담한 기차역 주위로 벚꽃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어디선가 벌들이 날아와서는 벚꽃주위를 맴돌았다. 바람이 어느 곳에서 불어왔는지 벌들이 귀찮다는 듯이 가지를 흔들어대었다. 나무 그늘 아래도 꽃이 눈처럼 흩어져 나풀거렸다. 그 나무 아래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몸이 갸우뚱거리며 불안해보였다. 한데 용케 지팡이에 몸을 기대어 달게도 주무셨다.''기차역 건너편에서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재잘거리면서 엄마 팔에 매달려서는 건널목을 건너왔다. 그녀는 자신이 이야기해놓고도 재미있었는지 깔깔거리면서 크게 웃었다. 그 소리에 그만 졸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놀라서 지팡이를 놓칠 뻔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시더니 졸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내 눈을 감고 처음 그 자세로 다 자지 못한 낮잠을 주무시기 시작하셨다.''기차역 안에 녹색으로 칠해진 낡은 의자위에 두 명의 여자가 앉았다. 둘은 뭔가에 대해서 깊이 토론하는 사람들처럼 머리를 맞대고는 서로 자신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엄마, 진짜 비가 더 낫다니깐.”''“어머, 왜 이래? 아무리 그래도 권상우가 더 나아. 그건 변치 않는 사실이야.”''“이게 웬 귀신 씨나락 까다가 이빨 깨지는 소리야. 솔직히 매끈한 몸매로 보면 비가 더 낫잖아. 권상우는 좀 울퉁불퉁하잖아.”''“울퉁불퉁하기는 뭐. 권상우 배 근육을 봐라. 누가 왕자 아니랄까봐 배에 '왕'자 떡하니 새겨졌잖아. 넌 왜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 도대체 이 애는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눈이 나빠.”''“엄마 닮았어도 우리 인정할거는 서로 인정합시다. 한 살이라도 어린 비가 더 낫지.”''“사람이 어리다고 다 무조건 좋은 줄 아냐? 이 아가씨야.”''엄마와 딸인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계속 토론을 했다. 아무리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차표 파는 아가씨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침을 꼴깍 삼키고는 여직원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여직원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맛을 다시던 그들에게 기차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리자 잠시 평화협정을 맺기로 했다. 역시 둘 다 멋있다는 데에 합의를 두고 진지한 얼굴로 악수까지 나누었다. 그런 그들을 보던 여직원과 주위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사람들이 웃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두 모녀는 얼른 기차에 몸을 실었다. 평화협정을 맺은 탓인지 서로 달걀껍질을 까서 입에다 먹여주면서 다정스레 기차 여행길에 올랐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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