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패션 천재 5권
다시 사는 패션 천재 5권
목차
101화 정공법으로 간다
102화 약속을 지키러 왔다
103화 살면서 처음 본 숫자
104화 50% 찍을 드라마
105화 누나라고 불러
106화 첫 실적을 올려야겠군요
107화 진짜 후계자의 자리
108화 대기업을 흙탕물에
109화 혹시 자네인가?
110화 디자인이 왜 이래?
111화 그게 누구 것인지 모르나?
112화 호랑이의 자식
113화 나는 양다리인데
114화 어떻게 보내 버리지?
115화 모든 게 순조롭지만…
116화 뒤바뀐 대본
117화 말리지 마
118화 그만 고마워해
119화 그 새끼, 잡아와
120화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121화 내전이다
122화 아무리 바지사장이라도
123화 전설로 남을 촬영
124화 난 이만 쉬어야겠다
125화 모바일 시대의 개막
다시 사는 패션 천재 5권
101화 정공법으로 간다
[서명준 : 배당금 넣었다.]
설희와 나리에게 레이트온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자 8월의 마지막 날.
법에 명시된 절차를 모두 끝내고, 드디어 배당금 지급을 실행했다.
총 20억 배당, 그중 60%인 12억이 내 몫이다.
원천징수 떼면 대략 10억이 조금 넘고, 나머지 세금은 내년 5월에 종합소득세로 내야 한다.
즉, 내년 5월 세금폭탄을 맞기 전에 또 배당을 해야 하는 거지.
[윤설희 : 고마워!]
[안나리 : 고마워 진짜 ㅜㅜ]
설희와 나리한테는 세금 떼고 3억 넘게 들어갔다. 이만하면 나리도 새 집 사서 효도하겠지.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전화?”
“밑에 부동산 좀 가게요. 그렇게 오래 안 걸리니까 점심은 같이 먹어요.”
“아냐, 나 이제 점심 따로 먹으려구.”
은주 누나의 표정이 오묘했다. 뭐랄까, 비장미 있게 단단한 표정?
점심 따로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과장님이 다이어트 시작하셔서 그래요.”
효주 씨의 말이었다.
은주 누나가 다이어트라. 지난 금요일 술자리에서 뭔가 이야기가 있었겠구나.
오늘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길래 기윤재한테 사기당한 후유증이 안 남은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그럼 혼자 샐러드 먹게요?”
“응. 도시락 싸 왔어.”
“음… 괜찮겠어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샐러드 먹기 쓸쓸할 텐데.”
까딱하면 서러워서 눈물 나올 수도 있다.
1회차 때 직원들이 다이어트에 관심 많았는데, 혼자 하면 얼마 못 가더라.
“혼자 아니야. 정 팀장이랑 같이 먹기로 했어.”
“정 팀장님이요?”
은주 누나의 옆을 봤더니 효주 씨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촬영 이후로 좀 방심했거든요. 다시 긴장하려고요.”
“…별로 티 안 나는데요.”
“알게 모르게… 아니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저 몸에 뺄 살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
착장샷만 예쁘게 잘 나오면 됐지, 그 이상 신경 안 쓰련다.
“그래요. 그럼 저 내려갑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기온이 다시 30℃ 가깝게 올랐지만, 한여름보다 습도가 낮아져서 그런지 그늘에서는 쾌적했다.
건물 입구에서 창고 쪽을 슬쩍 보니 직원들이 밖으로 나와서 작업하고 있었다.
땡볕에서 너무 고생하네. 빨리 창고 벽 터서 넓혀야지, 원.
딸랑.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일로 사장님이 PC 앞에 있었다.
“오, 2층 청년 왔는가.”
“안녕하세요. 괜찮은 데 몇 군데 찾았다면서요?”
“내가 주말도 없이 일해서 좋은 데만 눈도장 찍어 놨다네.”
사장님이 아주 자신만만하시다.
하긴, 아직 부동산 매물 모아 놓은 앱도 없는 시대다. 진짜로 주말 반납하고 일하셨을걸.
“그럼 한번 볼까요?”
“거기 앉아서…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커피 한 잔 내올 테니까 거기서 보고 있게.”
사장님이 상담용 테이블에 A4 뭉치를 내려놓았다.
집 하나당 두세 장이고, 기본적인 정보와 집 내외부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고생 진짜 많이 하셨겠네.
“내가 거의 스무 집 가까이 돌아봤는데, 영 아니다 싶은 데는 다 빼고 그것만 남겼다네.”
탁.
달달씁쓸한 향이 나는 커피를 내려놓고, 사장님이 맞은편에 앉으셨다.
“제가 보기에도 다 괜찮네요.”
“그렇지?”
“사장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데는요?”
나는 강남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가 얼마나 오르는지, 그런 건 1회차 때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른단 말이지.
그렇다면 전문가에게 맡기자.
“나라면 한강변을 고르겠네.”
“강남역 근처가 아니고요?”
“그 동네는 신분당선 때문에 가격이 너무 뛰었어.”
신분당선은 한창 공사 중이다. 내후년 개통이던가, 아마?
그런데 한강변이라고 뭐 다른가.
“한강변도 9호선 때문에 올랐을 텐데요? 지지난 달에 개통했잖아요.”
“원래 지하철 착공 때 아파트값이 뛰고, 개통하면 내려간다네.”
“개통하면 편해지는데 오히려 내려가요?”
“개통하면 편해지니까 미리 올려 받고 싶은 게 사람 심리 아니겠나.”
“…….”
뭔, 할 말이 없어지네.
하여간 이놈의 부동산은 뭔 건수만 생겼다 하면 가격을 높이고, 그래도 사 줄 호구를 찾아다닌다.
부동산 업계에 비하면 패션업계는 얼마나 양반이야.
“한강변은 재개발이 꾸준히 이어질 거고, 가격도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걸세.”
“잠깐 주춤한 지금이 찬스라는 뜻이네요?”
“그렇지.”
“뭐, 그렇다 치고… 골라 주신 아파트 중에서 한강변이면, 딱 둘이네요.”
“둘 중에 아무거나 고르게. 둘 다 곧 재개발 예정이고, 시공사도 짱짱하니.”
당연히 짱짱하겠지. 자그마치 한강변 비싼 아파트인데, 이름값 높은 브랜드 딱지를 붙일 테니.
“그럼 이걸로….”
툭.
정말로 아무거나 골라서 내밀었다. 사장님은 별말 없이 그것 하나만 받아 챙기셨다.
“알겠네. 내일까지 계약서에 도장 찍어서 가져오지.”
“좋죠. 내일 업무시간 중에 말씀해 주시면 바로 도장 찍고 복비 이체할게요.”
“고맙네. 아, 그리고 가게 옮길 데도 알아봐 뒀다네. 사실은 언제 옮겨 갈지가 제일 궁금했겠지?”
옮길 가게까지? 주말에 얼마나 열심히 돌아다니신 거야?
“이달 안에만 옮기셔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번 주 안에 가게 비우겠네.”
“그렇게 빨리요?”
“내일 복비 받는데 더 미뤄서 뭐 하나? 저쪽은 이미 비워져 있고, 깨끗이 청소만 하면 돼.”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노천에서 땡볕 맞으며 일하는 거, 나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다네. 얼른 넓히고, 안에서 편하게 일하라고 하게.”
…갑자기 왜 이렇게 인심이 좋아지셨지?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돈 준다니까 말부터 고와지시는 거 봐.
* * *
9월의 첫날.
오늘은 빅 이벤트가 있다. 바로, 코튼캔디 신상의 K마켓 런칭.
“음….”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는 차분했다. 진짜 빅 이벤트는 지난주에 지나가 버린 느낌?
“매출 잘 나오네요.”
“정 팀장님, 그런 말을 하나도 안 기쁜 표정으로 하시면….”
“기뻐요. 기쁜데 지난 주 금요일만큼은 아니랄까, 아니면 그때 다 기뻐해서 감정이 안 나온달까….”
나흘 전의 그 멍한 표정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효주 씨의 목소리에서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출 단위는 K마켓 쪽이 압도적으로 큰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