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패션 천재 4권
다시 사는 패션 천재 4권
목차
76화 이건 질러야 해!
77화 대박이 아니라 초대박
78화 내가 할 수 있는 일
79화 이건 어머니의 음모다
80화 있는 그대로 쓰는 조건
81화 얼마를 들여도 좋다
82화 흰 봉투의 대가
83화 이미지 체인지 전략
84화 간담회 겸 팬미팅
85화 디자인만큼은 동급
86화 시대를 초월한 쇼핑몰
87화 어머, 이건 사야 해!
88화 신임 제작부장님입니다
89화 아동복 시장의 흐름
90화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91화 여름이 끝날 무렵
92화 너무 빨리, 너무 많이
93화 담판 짓고 올게요
94화 그새 품절
95화 난 너한테서 배웠어
96화 역시 연륜이란
97화 날개만 달면 천사 아니냐?
98화 이 새끼, 그 새끼였네?
99화 그런 놈도 자식이라고
100화 1회차 때의 약속
다시 사는 패션 천재 4권
76화 이건 질러야 해!
―접속 중인 IP를 기준으로 하면 8천 명이 넘네요.
“어… 와….”
8천? 이 무슨 비현실적인….
우리 팬들이 아이템 페이지 오픈을 기다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많았다고?
그 많은 사람들 중 몇백 명만이라도 F5를 연타했다면 트래픽이 다 소진됐을 만하지….
―혹시 오늘 무슨 이벤트 같은 거 하세요?
“아, 네. 12시 정각에 가을 신상 출시합니다.”
―대표님, 그런 건 미리 말씀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이거, 12시 넘으면 만 명 넘어가요.
“저희도 예상 못했어요. 이렇게 많이 몰릴 줄은.”
만 명이 문제겠냐?
곧 직장인들 점심시간이다. 사무실에서 우리 쇼핑몰 접속할 사람들까지 치면 더 될걸.
조금이라도 더 많이 오기를 바랐기에 12시 오픈으로 정한 건데, 이게 판단 미스였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오전 10시 오픈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니까요. 이러다 지난 5월이랑 똑같은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12시 직전에 리셋 한 번 더 해 둘게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보니까 또 대박 나실 것 같은데 미리 축하드리고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이런 일 생길 거라면 트래픽 용량 늘리는 것도 고려해 주세요.
이런 상황에 영업 잘하시네.
안 늘려요. 누르면 결제창 띄우는 유료 트래픽 리셋 버튼 개발하고 있을 거면서.
그리고 곧 자체 쇼핑몰 만들어서 독립할 건데, 오늘만 트래픽 리셋으로 버티면 되지.
“네, 고려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내 입은 예의 바른 소리를 잘도 한다.
일단 전화를 끊었다.
오늘만 버티자, 오늘만. 그러면 다음 접속 폭주 이벤트인 겨울 신상 출시는 자체 쇼핑몰이다.
“대표님이 우리 자체 쇼핑몰은 데이터센터에 입주시켜야 한다더니, 이유가 있었네요.”
옆에서 개발팀 장 팀장이 의자를 젖히며 나를 돌아봤다.
“회사에 전산실 두는 것보다 그게 나으니까요. 특히 이렇게 접속자가 폭주할 때는요.”
“돈만 내면 센터에서 다 해결해 주니 에러 볼 일이 없죠.”
전산실 유지보다 데이터센터 입주가 훨씬 싸게 먹히고, 관리도 편하다.
게다가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싸지지.
“이제 2분 남았네.”
슬쩍 시계를 보니 12시가 거의 다 됐다.
어느덧 11시 58분.
이제부터는 거의 카운트다운이다. 앞으로… 107초.
* * *
파워블로거 허가을은 오늘이 오기만을 벼르고 별렀다.
파운딩바니 가을 신상 출시일.
런칭 아이템들을 여름 내내 입고 다녔던 만큼, 가을 신상에 대한 기대도 아주 컸다.
특히 그 룩북! 지나치게 일찍 공개된 그 룩북을 본 순간, 그녀는 지름신을 영접하고 말았다.
그리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오늘.
“앞으로 60초, 59초, 58초….”
허가을은 모니터 화면과 핸드폰 시계를 번갈아 보며 정오를 기다렸다.
‘F5 좀 그만 눌러, 이 인간들아! 트래픽 또 뻑나면 어쩌려고 그래?!’
그녀는 한국인답게 F5 키를 누르고 싶다는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자기 한 사람만이라도 트래픽에 부담을 덜 주겠다는 간절한 의지였다.
“20, 19, 18….”
로그인은 진작 해 뒀다. 뭘 살지도 다 결정해 뒀다.
503 에러가 뜰 만큼 바글바글 몰린 경쟁자들을 뚫고 결제까지 끝내면 오늘의 미션 성공이다.
“5, 4, 3, 2, 1… 됐다!”
12시 정각.
전국에서 수천 명이 거의 동시에 F5 키를 눌렀다.
다행히 커피24 측에서 미리 트래픽을 리셋시켜 둔 덕분에 에러는 뜨지 않았다.
“원피스 블루… 됐고. 울 티셔츠! 이거 사야 돼. 오케이, 그다음은….”
순조롭다.
상품 안내나 윤설희 착장샷 같은 건 나중에 봐도 된다. 눈여겨본 아이템을 재빨리 장바구니에 넣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넣고, 드디어 스크롤을 가장 하단까지 내렸을 때.
허가을은 마우스 클릭하기를 망설였다.
“트렌치코트가 39만 9천 원?!”
맙소사.
이런 가격은 예상하지 못했다.
6만 9천 원짜리 원피스, 4만 9천 원짜리 울 티셔츠까지는 큰마음 먹고 지를 수 있었지만…
아무리 가을 시즌 메인 아이템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으… 으으으… 잠깐 좀 봐야지, 안 되겠어.”
허가을은 스크롤을 내렸다. 착장샷이 빠르게 다운로드돼서 화면에 띄워졌다.
트렌치코트가 얼마나 잘빠졌는지 보여 주는 착장샷, 중간중간 소개되는 소재와 봉제.
보면 볼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만하면 비싼 게 당연한 수준 아닐까?’
허가을은 스크롤을 가장 위로 끌어올렸다. 더 볼 것도 없다.
이건 질러야 해!
“이번 달, 라면만 먹고 산다!”
숏 트렌치코트까지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서로 넘어갔다.
그리고 대망의 결제…!
[503 Service Unavailable]
“아악!”
마지막 한 스텝만 남겨 놓고 있었는데!
“커피24, 일 안 해?!”
타다다다다다!
허가을은 이성을 잃고 F5 키를 연타했다.
그러기를 거의 10초, 드디어 트래픽이 리셋되고 다시 쇼핑몰에 접속됐다.
다행히 로그인은 안 풀렸다. 장바구니도 그대로다.
“아직 괜찮아. 품절 뜬 거 없어. 결제만 하면 돼.”
다시 주문서를 작성하고, 이제 결제만 하면…!
[고객님의 안전한 금융거래를 위해 최신 암호화 모듈이 설치 또는 업데이트 중입니다.]
브라우저에 그 메시지가 뜬 순간, 허가을은 마우스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마우스를 던져, 말아?
“으아아악! 액티브X 이 망할 것이 또!”
방심했다.
왜 미리 업데이트를 해 두지 않았을까.
“바보! 등신! 왜 그랬니, 나!”
허가을은 보안 프로그램 업데이트가 완료될 때까지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리고 드디어 업데이트가 끝났을 때는 주문서 단계로 되돌아가 있었다.
다시 주문서를 작성하고, 결제 버튼을 누른 순간.
[주문이 불가능한 상품이 있습니다. 주문서를 다시 작성해 주세요.]
쾅!
기어이 마우스가 박살 나고 말았다.
* * *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게 하나 있다.
숏 트렌치코트 39만 9천 원은 너무 심했다고, 옷은 좋으니 팔리기야 하겠지만 느릴 거라고.
가격이 공개되는 순간 온갖 욕은 다 처먹을 테니 눈 감고 귀 막아야 한다고.
그런 예상은 틀렸다.
“트렌치코트 베이지 66 품절!”
“벌써?!”
판매 시작 후 5분.
고작 5분 만에 첫 품절이 나왔다. 그것도 수량 제일 많은 66 사이즈가. 미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