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무사 레벨업 in 무림 0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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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무사 레벨업 in 무림
08
휴헤
삼류무사 레벨업 in 무림 08권
차례
제61장. 외전. 새로운 시대
제62장. 시대의 끝 시대의 시작
제63장. 천심
제64장. 진군
제65장. 방어
제66장. 구름처럼 몰려드는
제67장. 반격
제68장. 준비
제69장. 조고륜
제70장. 승리
제71장. 싸움의 끝
제72장. 괴물
제73장. 천마
제74장. 후일담
삼류무사 레벨업 in 무림 08권
제61장. 외전. 새로운 시대
삶이란 어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법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감히 엿볼 수 없으니.
율국의 황제이자, 중원에서 가장 고귀한 자. 하늘의 아들. 천명을 잇는 자.
천자는 평소처럼 술에 잔뜩 취한 채 주지육림을 즐기고 있었다.
정원에 만들어 놓은 작은 수로에는 물 대신 향기로운 술이 끊임없이 흘렀고.
헐벗은 여인들이 교태를 부리며 그의 기름진 뱃살에 기대 누워 있으니.
그림에 그린 듯한 암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지루하게 하품을 내쉴 뿐이었다.
“하아아암. 심심하구나. 뭐 재밌는 일이라도 없느냐?”
황제는 이미 이런 자극에는 무뎌져 버렸다.
천하에서 가장 향기롭다는 술도 원 없이 마시고, 매일 산해진미를 아낌없이 먹으니 더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없었고.
중원 곳곳에서 데려온 미인들을 매일같이 품으니, 색도 더는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그런 황제를 즐겁게 하기 위해 악공이 열심히 줄을 튕기고, 광대가 신기한 재주를 부리지만, 그 어떤 것도 황제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에에잇! 됐다! 재미없는 것들.”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찬 황제는 문득, 정원 한구석에 마련된 연못을 발견했다.
순간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황제가 저 연못에 풍덩 빠지면 어떻게 될까?
‘소스라치게 놀라겠지?’
사람들은 기겁하며 아연해할 것이다.
늘 딱딱한 얼굴로 학문을 공부하라느니 성군이되라느니 떠드는 관리들이 경악하는 걸 보는 건, 분명 즐거울 것이다!
“마침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헤엄이나 쳐야겠다.”
“예?”
황제는 다른 이가 말릴 틈새도 없이, 그 육중한 몸을 날려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연못 물이 솟아오르며 수면이 요동쳤다.
“하하하! 하하하하!”
황제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들을 보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즐겁다!
삶이란 지루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번뜩이는 즐거움이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니.
이러니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황제는 열과 함께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도, 궁에 유행한다는 적사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사람들의 추측은 제각각이었다.
찬물에 헤엄친 탓에 냉한 기운이 몸을 망쳤다고도 했고, 연못 물이 오염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매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술을 퍼마신 탓에 몸이 약해진 탓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궁은 난리가 났다.
황제가 병에 걸리다니.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암군이라도, 일단 제대로 살아있으면 최악의 군주는 아니다.
적어도 황제가 살아있으면 그 자식들이 엄한 생각을 품지는 못할 테니까.
신하들은 황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율국 최고의 의원들을 대동하고, 온갖 귀한 약재를 구해다 바쳤다.
하지만 황제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 갔다.
어느 순간부터 황제는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리고 사경을 헤맸다.
적사병은 살아날 확률이 더 높다고 호언장담하던 의원들의 얼굴이 검게 죽어갔다.
궁 사람들은 황제가 곧 죽을 것임을 직감했다.
병필태감 조고륜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황제의 침소에 찾아갔다.
“폐하! 폐하! 부디 유조를 내려주소서!”
황제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조고륜을 포함한 모두가 황제를 간절히 내려다보았다.
황제는 이제 끝이지만, 적어도 그의 후계에 대해서는 반드시 언질을 들어야 했다.
“아, 으, 아.”
황제는 몇 번이고 입을 달싹이며, 언어가 되지 못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모든 힘을 다해 쥐어짜 내듯이 말했다.
“수, 술. 술 한잔이 고프구나.”
“……폐하? 폐하!”
그 뒤로 황제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저 한심한 말이 황제의 유조가 되었다.
이로써 황제는 최악의 암군이 되었다.
후계를 제대로 정하지 않고 죽어버리는 건, 국가를 빠르게 망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었으니.
그 뒤부터는 지극한 혼란이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황제의 장례였다.
황제가 죽었으니 관과 무덤을 준비하고, 숭유명덕장효경문정의태황제(崇儒明德章孝敬文正義太皇帝) 따위의 좋은 말을 덕지덕지 붙인 시호를 정해야 했다(황제가 잘한 게 너무 없어 학자들은 큰 고역을 치러야 했다).
여기까지는 큰 잡음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례가 시작되자, 누가 장례를 주재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본디 황제의 장례는 그 다음 후계자가 맡아서 한다.
자신이 황제의 적법한 후계임을 공고히 하고, 장례라는 대사를 실수 없이 치러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곤 했다.
문제는 지금은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태자도.
신친왕도.
그 밖에 다른 황자들도 이 역할을 탐냈다.
장례를 주재하는 자가 사실상 차기 황제가 되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긴 논쟁이 있었다.
무난히 생각하면 장남인 태자가 맡는 게 사리에 맞아 보였다.
하지만 신친왕과 다른 황자들은 극구 반대했다.
그들은 옛 사례를 들먹이며 반드시 태자가 장례를 주관한다는 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원의 역사는 길다.
역사를 뒤져보면, 반례가 하나 정도는 나오기 마련.
게다가 신친왕은 황제의 죽음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적사병으로 돌아가셨다? 글쎄. 내 생각에 그분은 독살당하신 게 분명하오. 그리고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큰 이득을 거두는 자가 누군지는……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소.”
여기서부터 길고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한 자리에 모인 학자와 관리들은 옛 서책과 법률을 뒤적이며, 서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공허한 언쟁만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숨겨진 황제의 유서가 발견된다거나(당연히 조작이었다), 관리 하나가 웬 도사를 데려와 황제의 혼을 잠시 불러내자고 주장했다던가(둘 다 효수되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란이 이어졌다.
관 속에 안치된 황제의 시신은 썩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황제가 죽은 지 12일째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황실의 장례에서 하루는 한 달로 여겨진다.
정무를 돌봐야 할 황제가 3년 상을 치르고 있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황제가 죽은 지 12일째가 되는 날은 소상(小祥)일이 된다.
소상은 부모가 죽은 지 1년째가 된 날을 의미한다.
이 행사마저 건너뛸 수는 없다.
결국, 여러 혼란 속에서 태자가 반쯤 어거지로 장례를 주관하게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통성이 강한 건 태자였던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장남이 장례를 주관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기에, 아직 파벌을 정하지 않은 많은 관리들도 태자를 지지했다.
다른 황자들은 이에 크게 반발했지만, 태자는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그대들의 뜻은 알겠으나, 선제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만약 이의가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다면, 우선 장례를 치르고 그 후에 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태자의 말은 언뜻 정론에 닿아 있는 듯 하나, 황자들로서는 이렇게 어이없는 말이 또 없었다.
장례를 치른 후라니?
후라는 게 어딨겠나. 그때 태자는 이미 황제가 되어 있을 진데!
황자들은 뭐라도 말해보라고 신친왕에게 눈총을 주었다.
여기서 태자를 위협할 수 있는 이는 건 신친왕뿐이었으니.
하지만 신친왕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장례를 미룰 수는 없소. 말씀대로 하소서.”
그 시원시원한 반응에 태자는 도리어 껄끄러움을 느꼈다.
뭐 저리 쉽게 승낙한단 말인가?
하지만 장례를 더는 미룰 수 없는 건 엄연한 사실이기에, 태자는 부랴부랴 움직였다.
급하게나마 준비를 갖추고, 황제를 위한 제사를 올렸다.
향초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로 올라가니.
궁의 모두가 통곡하며 바닥에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진짜 슬퍼하는 사람은 적었지만, 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 정도 눈치도 없으면 궁에서는 오래 살 수 없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는구나. 그분답다고 해야 할지’
제사를 주관하는 태자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