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춘산
11권
의천중 장편소설
제330화
길게 한숨을 내쉰 안락후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다 이 아비가 무능해서 너의 발목만 잡게 되는구나. 네가 추성을 떠나있던 지난 2년 동안, 나는 매일 꿈에서 너를 그리곤 했단다. 오는 길에 제대로 잠도 못 이루고, 계속 겁에 질려있었을 정도였다. 알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네 어미가 세상을 일찍 떠나고 나는 항상 네가 잘못될까 걱정을 놓지 못했단다….”
이것저것 거창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전부 과거 이야기였을뿐, 핵심적인 내용은 없었다. 배융은 안락후의 말을 끊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들었다. 이윽고 안락후가 말하다 지쳐 잠들자 배융은 불을 끄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시녀와 함께 등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던 이 이낭이 배융을 보고 인사를 올렸다.
“세자, 후야께서 잠드신 겁니까?”
“네. 잠드셨습니다.”
배융이 시녀에게 자리를 비우라 한 다음 위엄 있게 이 이낭에게 앉으라고 했다.
“바느질하고 싶으면 아침에 하십시오. 괜히 밤에 하면 눈이 나빠져 이낭만 고생하게 되고, 아버지 시중에 영향을 끼칠 겁니다.”
사실 이 이낭은 자신의 어진 마음씨와 근검함을 과시할 생각이었지만, 배융에게 이런 꾸지람을 듣게 되자 얼굴이 붉어졌다. 당황한 그녀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세자의 말씀이 옳습니다. 천첩이 가만히 있지 못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배융은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려 말허리를 자르고 다시한번 엄격하게 말했다.
“이낭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이 이낭은 지레 겁을 집어 먹고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가 황급히 일어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자,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병세가 달라진 것 같은데, 언제부터 저리 되신 겁니까?”
배융은 의학에 어느 정도 정통한 사람이었다. 안락후는 몇 년 전에도 괴팍한 성격 탓에 시중들기 어려웠으나, 오늘처럼 거위에게 물렸다고 실금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연기가 아니라면 큰 병에 든 것이 분명했다. 황제 때문에 생긴 병이라면 단유유를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때문에 배융은 모르는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생각했다.
이 이낭이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야께서는 두 분이 떠난 후로부터 이상해졌습니다. 모처럼 잠에 들 때에도 항상 악몽을 꾸셨죠. 그럴 때마다 ‘폐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하고 잠꼬대를 하셨습니다…. 잠에서 깨면 식은땀에 젖은 채로 바로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천첩이 무슨 꿈을 꾸신 건지 여쭈어도 말씀해 주지 않았고, 재차 물으면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다 세자께서 어전에서 강경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는 식사도 하고 잠도 제대로 주무셨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요, 서신 한 통을 받으셨는데 그 뒤로 다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하루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더니 천첩에게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다며, 세자께서 고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연이어 또 한 통의 서신을 받았는데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서둘러 그 서신을 태우시더라고요. 이어 두문불출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천첩은 너무 걱정스러웠습니다. 줄곧 밖에서 후야를 달랬었죠. 그러다 어느 늦은 밤에 간신히 후야의 허락을 받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그날도 어김없이 후야께서는 또 악몽을 꾸셨습니다. 잠꼬대도 멈추지 않으셨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세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목숨은 살려달라며…. 천첩이 그런 후야를 깨워 연유를 물어도 도통 말씀해주지 않으시면서 자신이 부족한 탓에 세자의 발목만 잡는다는 말을 반복하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죽는 게 낫다고 하셨는데…. 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천첩은 매일 후야께서 그럴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마을 마친 이 이낭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겉보기에는 진심으로 안락후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배융은 조금도 감동한 기색 없이 여전히 차가운 눈빛이었다. 이 이낭을 꿰뚫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가 더욱 무거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눈물까지 흘리는 겁니까! 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신데, 본분을 지키십시오!”
이 이낭이 멋쩍은 듯 눈물을 거두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리가 찾아왔을 때, 모두가 기쁜 소식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후야께서 놀라 갑자기 기절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오늘처럼 실금까지 하셨으니…. 깨어나신 후야께서는 독약을 찾느라 바쁘셨고, 천첩에게 밧줄로 목을 졸라 죽여 달라고까지 부탁하셨습니다. 재앙이 닥친 것이라면서요….”
“여전히 후야께서는 이유를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천첩은 어쩔 수 없이 관리에게 가서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저희를 입성 시키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 후야를 설득했습니다. 만약 이대로 자결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은 후야께서 제가 두려운 탓에 나쁜 결정을 했다 판단할 것이고, 결국 세자까지 말려들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 말을 듣고 후야께서는 그제야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후야께서는 겁에 질려….”
배융이 다시 한번 이 이낭의 말을 끊었다.
“오는 길에 모든 사람이 고생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 이낭께서 굳이 한번 더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 두 통의 서신은 누가 쓴 것이고, 무슨 내용이 적혀있었던 겁니까?”
이 이낭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천첩은 까막눈인 데다가 후야께서 받으셨던 서신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그저 두 통의 서신이 아주 정교한 화전으로 만들어졌고 청아한 향기가 났다는 것과, 두 통 모두 경성에 있던 한 사람이 보냈다는 사실이라는 것뿐입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챈 배융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짓말!”
“아닙니다! 천첩은 거짓말 따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낭이 겁먹은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세자, 천첩은 반평생 후부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어찌 감히 세자께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배융은 이 이낭의 속셈을 단번에 간파했다.
“저와 안사람은 관대한 사람이기에 무고한 사람을 해할 리 없습니다. 이낭께서는 오랜 세월 아버지의 시중을 들어오셨기에, 제가 끝까지 이낭을 보살피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이낭이 잠시 주저하더니 조용히 뛰어가 안락후가 잠들었는지 확인한 다음, 다시 창문으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어 밖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제야 다시 돌아온 이 이낭이 배융 앞에 무릎을 꿇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첩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후야께서 두 번째 서신을 받으셨을 때 악몽을 꾸시며, 부인께 목숨을 구걸하셨습니다.”
배융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정말입니까?”
이 이낭이 확실하게 대답했다.
“네. ‘아가, 목숨만은 살려다오,’ 라고 하셨습니다.”
안락후가 애원한 상대는 단유유였다. 배융이 잠시 차가운 얼굴로 이 이낭을 살펴보더니 이내 방으로 돌아가 침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불빛을 받으며 침상에 누워있는 안락후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는 추측할 수 있었다. 안락후가 받은 서신에는 아마 입을 막기 위해 살인을 계획했던 일이 적혀있었을 터였다.
서신을 받았을 시점으로 계산해본다면 그때는 단유유가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성격으로 짐작해보건 바, 그런 서신을 보내 안락후를 겁먹게 하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그 서신을 보낸 인물은 왕슬일 것이다. 배융의 머릿속에 판단이 섰다. 그녀의 수법은 너무나도 악독했다. 진심으로 그를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 수법이었다. 모든 것을 깨달은 배융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녀에게 자비를 베푼 자신이 한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단유유는 매 이낭이 끈질기게 흔들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나른한 하품을 하더니 침상에 다시 몸을 뉘이며 말 했다
“이낭, 그만 좀 깨우세요. 조금만 더 자게 해 주세요.”
매 이낭은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났다.
“도대체 세상에 너같이 게으른 며느리가 어디에 또 있니? 병드신 시아버지께서 먼 길을 찾아왔는데 말이야. 빨리 가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계속 늦잠을 잘 생각이니? 시아버지를 푸대접한다며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매 이낭의 꾸짖음에도 단유유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갔다.
“싫어요. 부군도 말했어요. 그쪽 일은 신경 쓰지 말라고, 본인이 알아서 처리한다고요. 어차피 제가 죽을 만들어 줘도 버릴 테니 음식만 낭비하게 될 거예요.”
매 이낭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너는 네가 할 일을 하고, 세자는 세자가 할 일을 할 것이다. 누가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는 지켜보는 사람들이 알 테니 걱정하지 말렴. 명심해, 네가 당했다고 해도 나 몰라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써야지. 세자에게 네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려야지. 안 그러니?”
“그냥 게으르게 살래요. 머리 쓰는 것도 귀찮아요.”
매 이낭 앞에서는 스스로를 숨기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
어쩔 도리가 없던 매 이낭은 훤훤을 살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겸사겸사, 가는 길에 서과원의 움직임을 살펴 볼 생각이었다. 그때, 연지가 황급히 뛰어 들어와 소리쳤다.
“주방에서 거위를 잡고 있어요! 그것도 큰 거위 두 마리를요! 잡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다 같이 달려들어서 잡고 있어요!”
“뭐? 도대체 누가 시킨 거야?”
놀란 단유유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신발을 질질 끌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 시장에 가서 거위를 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느 대담한 놈이 이 몸의 거위를 건드리려는 거지!
연지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고 설명했다.
“저희 집 거위가 아니에요. 세자께서 요 집사에게 밖에 가서 사 오라고 시키신 거예요. 하지만 후야께는 후야의 다리를 문 거위라고 말할 예정이에요.”
연지의 설명에 단유유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우리 거위들이 주방에서 거위를 잡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잘 처리했지?”
그 장면을 목격하면 거위들이 겁먹고 다시는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진즉 가둬놨어요.”
유지가 찬합을 들고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잠시 풀어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에 장자로 보낼지 말지 검토하신다고 합니다.”
단유유가 찬합을 받고 뚜껑을 열었다.
“깜짝 놀라서 입맛이 다 떨어졌네.”
매 이낭이 그녀를 노려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야는 병에 드신 거야. 그게 아니라면 체면을 중요시 하는 분이 어떻게 실금까지 하겠어.”
단유유가 증권분(蒸卷粉)을 한 접시 덜어내더니 천천히 떠먹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낭, 오해예요. 저는 정말 깜짝 놀라서 그런 거라고요.”
매 이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에 안고 있던 훤훤을 단유유에게 건네며 말했다.
“데리고 가렴. 어미다운 모습은 보여야지.”
단유유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게 해 주세요.”
“깜짝 놀라서 입맛 없다고 하지 않았니?”
매 이낭은 비록 말로는 그녀를 꾸짖었지만, 딸을 아끼는 마음은 숨길 수 없어 다시 훤훤을 품에 안았다. 그때 미소 띤 얼굴의 도지가 들어와 말했다.
“세자께서 찾으십니다.”
창문 밖을 바라보자 배융이 마당에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단유유가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이야기해요.”
제331화
배융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밥 먹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유유는 한 그릇을 비우자마자 또 한 그릇을 채웠고, 그러다 다시 또 한 그릇을 해치웠다. 아무리 먹어도 식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파진 배융은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꺼억~”
단유유가 만족한 듯 트림을 하고 밥을 차려 준 유지를 칭찬했다.
“솜씨가 많이 늘었네. 아주 맛있었어.”
유지가 답했다.
“과찬입니다. 빨리 가세요. 세자께서 기다리다 지치겠어요.”
단유유가 그제야 설렁설렁 밖으로 향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부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아직 단장을 마치지도 않은 단유유의 모습을 본 배융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씻지 않은 것이오?”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단유유는 한 두 시진 정도 준비하며 시간을 끌어 배융을 더 기다리게 할 생각이었다. 배융은 절망을 느끼고는 황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냥 말하겠소. 잘 들으시오. 급하고 중요한 이야기요…. 실은, 이황자비가 중간에서 음모를 꾀했던 모양이오.”
배융이 제가 알아챈 사실을 알려주다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는 사건의 진상이 탄로날까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밤낮으로 악몽을 꾸어 심마가 생기신 듯하오. 모든 일을 알게 된 당신이 아버지에게 보복할까, 혹은 내가 아버지를 버리고 당신의 편에 설까, 거기다 이 일이 폭로되어 궁에 불려가 폐하의 명으로 가문이 멸망할까 싶어 이성을 잃을 정도로 걱정하셨던 모양이오.”
단유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 궁금증을 풀어줘서 고마워요. 사람을 죽이려던 자가 피해자에게 보복당할까 봐 두려웠던 나머지 이성을 잃고 역으로 가엾은 사람이 된 거네요.”
단유유가 이토록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드물었다. 순간 얼굴이 빨개진 배융이 난처함에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 맞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단유유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앞으로 부군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아버님께서는 이미 자신을 해할 사람은 며느리인 저라고 답을 내려두신 듯한데요. 부군께서도 몸의 병은 치료할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치료하기 힘들잖아요. 오늘은 거위를 잡아먹어도, 내일 부군께 화리하라고 말씀하실지 어떻게 알아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반박한 배융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소. 일단은 천천히 아버지의 병세를 안정시키고 다시 논의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알겠어요. 부군께서 이미 결정하셨다면 그대로 진행하세요.”
단유유가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 가서 아버님께 아침 식사를 해드리고 좋은 의원을 모셔 오세요. 저는 집안일을 하러 가 볼게요.”
“유유!”
단유유의 미소를 보자 영문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 배융이 말했다.
“난 지금 난처하오. 한쪽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가, 다른 쪽에는 나와 생사를 함께한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소. 그러니 전부 다 완벽하게 해결하고 싶지만, 나는 원인 제공자일 뿐이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알려줄 수 있겠소?”
단유유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아는 부군이라면 현명한 선택을 하실 거라 믿어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걸 보니, 결국 원하지 않기에 외면하시는 건 아닐까요? 이런 일은 정면으로 상대해야지 두루뭉술하게 수습해서는 안 돼요. 그러면 결국 양쪽 다 엉망이 될 거예요!”
배융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왜 매번 성공이 눈앞에 잡힐 듯 보일 때마다 이런 사건이 터지는지 답답했다. 단유유의 말을 듣던 그는 혹시나 자신이 입을 잘못 놀려 돌이킬 수 없을까 싶어 결국 입술을 오므렸다. 그렇게 단유유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
북과원.
유지가 정원에서 옮겨온 귀중품을 진열하려 할 때 단유유가 담담하게 말했다.
“됐어. 그냥 평소에 사용하는 것만 꺼내.”
유지는 의아했지만 단유유의 언짢은 모습을 보고 괜한 질문 없이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지켜보던 단여의가 말했다.
“북과원에 풀과 꽃이 적은 걸 보니 곧 가을이 올 것 같네. 유유, 애들을 데리고 꽃과 풀이라도 심지 그래? 내년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단유유가 웃으며 말했다.
“귀찮게 뭐하러 그래요? 부군한테 시키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