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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천재 사냥개 9권
이야기상인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범죄자들의 도시 (2)
향수
임명식
약속
1
범죄자들의 도시 (2)
그라이트가 있는 초고층 빌딩으로 향하는 한.
달리는 동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후회가 존재했다.
‘그라이트의 안정화가 지나치게 좋지 않은 타이밍에 끝났다.’
‘하다못해 이곳과 본대의 거리가 조금만 더 떨어져 있었더라면….’
‘본대가 최소한의 정비만을 끝낸 상황이었다면.’
‘이처럼 무모하게 혼자 달려드는 일은 없었을 터.’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무모한 일.
맨몸으로 불길 속에 뛰어드는 중인 한은 반대로 속도를 높인다.
‘그라이트의 안정화가 끝나기 전에 기습했어야 했나?’
‘아니. 안정화 도중이라고 해서 약화 되었다는 뜻은 아니야.’
‘별반 시간도 끌지 못하고 침투 부대가 몰살당하는 것은 물론.’
‘공화국이 만디아 시티 내에 침입했다는 걸 광고하는 셈이었을 테니 술식 제거는 꿈도 꿀 수 없었겠지.’
한과 기습조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타이밍이 끔찍한 건 사실. 한은 책임감 역시 느꼈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다행히 만디아 시티의 상공은 곧 공화국이 차지한다.
다른 대원들 역시 한을 도울 것이며, 지금도 근방에 있던 침투 부대 중 전투에 특화된 자들이 빌딩으로 향하겠다고 전했다.
턱?.
어느새 목표 빌딩 앞에 도착한 한.
그는 빌딩에 오르기 전 잠시 숨을 골랐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늦는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치이이이익?!
빌딩을 외관을 그대로 타고 올라가는 것.
기동 장비로 강화된 신체는 한의 발끝에 힘을 더한다.
마치 암벽 등반을 하듯, 그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게. 한은 그라이트가 있는 고층으로 향한다.
그러나.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구나.
지지직.
귀 뒤편에 붙이고 있던 통신기에 간섭이 발생했다.
원인은 명확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높디높은 고층 유리를 깨고 나온 무언가.
아니, ‘그라이트’ 본인이 되레 한을 향해 돌진한다. 막대한 에너지를 머금은 유성처럼 빠르게 달려드는 그라이트.
한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한은 똑똑히 보았다.
녀석이 웃고 있다.
9위계를 달성한 괴물이 달려든다.
콰아아아아앙?!!
소행성 충돌을 방불케 하는 현장.
건물을 올라가려던 한은 방대한 운동 에너지에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지면이 파이고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주변의 건물이나 사물들은 충격파에 일부가 뜯겨 나가거나 부서졌다.
단순히 부딪히기만 한 여파가 이 정도.
그 장본인이 허연 이빨을 보인다.
“내 도플갱어와 싸운 널 기억하고 있다. 한 어거스터스. 걸출한 재능을 가진 신세대야.”
휘익?!
검을 휘둘러 먼지를 몰아낸 한.
갑작스러운 기습을 무사히 넘겨낸 동인이 절대악을 노려보며 읊조린다.
“…영광이라고 해야 되나?”
한은 스킨슈트를 벗지 않았다.
그랬음에도 그라이트는 한의 정체를 확신하고 있다. 생체 전류 읽어 확인한 것일까.
뭐, 어느 쪽이든 지금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럼. 마땅히 영광으로 여겨야 할 일이지.”
그라이트가 말했다.
입가가 찢어질 듯 올라가 있는 게 기분이 자못 좋아 보인다.
“그 ‘눈’으로 보아 잘 알고 있지 않나.”
별반 액션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그라이트의 전신을 감도는 검은 전류.
언뜻 벨카의 붉은 전류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성질도 위력도 아예 다르다.
검은 전류의 일부가 파지직 튄다. 쾅! 전류가 닿은 주위 사물이 번개를 맞은 듯 일그러지거나 불타버린다.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존재인지.”
“…….”
한의 달란트는 빠르게 상대에 대한 분석값을 내놓았다.
녀석이 불길한 마나. 그 밀도가 말한다.
‘허풍 따위가 아니야.’
‘손가락 한 번 까딱이는 것으로 이 근방을 초토화 시킬 수 있다.’
한의 눈매가 더욱 진중해진다.
식은땀이 흐른다. 적을 앞에 두고 이리 막막한 느낌을 받은 건 처음.
녀석의 도플갱어와 맞붙어 봤기 때문에, 그 강함을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척?.
하지만, 한은 묵묵히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막강한 적이라고 해도 기세를 잃지 않는다.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적을 분석한다.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음이 꺾이는 순간, 판도를 바꿀 수 없을 테니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싸운다.
싸워서 승리한다.
그러기 위해서 방법을 강구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이 삶은 최악의 상황에서 무릎을 꿇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다.
“훌륭한 자세다.”
마찬가지로 마나를 예열하는 그라이트.
그는 공화국 본대로 향하기 전, 한을 상대로 몸을 풀려고 한다.
그라이트 본인도 자신이 얼만큼의 위력을 낼 수 있을 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니, 이번 승부는 적당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부디 날 즐겁게 해 다오.”
쿠르르릉?!
전투가 시작되자.
천둥 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모습이 사라진 그라이트.
한은 부지런히 눈동자를 움직이며 녀석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때론 이성보다 본능이 우선일 때가 있으니.
“크읍…!”
쿠르르릉, 콰강?!!
뒤에서 나타나 한의 머리를 걷어찬 그라이트.
버티기 힘든 위력에 한은 무참히 날아가 버린다. 건물 몇 채는 우습게 관통하며 인간 물수제비를 한 꼴이 되었다.
폭발적인 힘과 스피드.
그러나 그라이트는 한을 비웃지 않았다.
“판단력이 대단하군. 날을 세웠으면 되레 썰리는 건 네 녀석이었을 텐데.”
그의 말마따나.
건물의 잔해에서 몸을 일으키는 한은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다.
백운철검의 날 면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백운철검이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팔이 마비된 듯 저려.’
‘고작 일격을 막았는데도 이 정도란 말인가.’
욱신거리는 팔의 통증에 한은 정신을 각성시켰다.
당연하지만 도플갱어와 싸웠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한 번 부딪히려면 모든 집중을 다해야만 한다. 아니면 확실히 죽는다.
치이이이익?!
그러나 멈추지 않고 먼지 폭풍을 뚫고 나온 한.
기동 장비로 강화된 육체, 걷어 차이기 직전 그라이트의 뒤에 걸어둔 밴드의 인력 덕에 비약적인 속도로 내달릴 수 있다.
그 속도는 늑대 인간이었던 칼 덴트마저 뛰어넘을 정도.
하지만, 9위계를 달성한 그라이트는 이를 가만히 직시하고 있다가.
휙?!
단순히 몸을 조금 비트는 것으로 피했다.
마치 어린 아이의 주먹질을 피하듯, 가볍게.
“느리잖아. 더 빨리는 안 되나?”
치이이이익?!
그라이트의 도발에 더욱 민첩하게 움직이는 한.
피해를 입히는 데는 실패했지만, 거리를 좁히는 데는 성공했다.
한은 곧장 자세를 바꾸며 맹공을 퍼붓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달궈진 기동 장비가 그의 몸에 활력을 더한다.
지옥 같았던 훈련,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던 실전 경험이 한의 검을 날카롭게 한다.
사실상 경지에 올랐다고도 볼 수 있는 검기.
하지만, 산 봉우리 하나 올랐다고 해서 하늘에 닿은 것은 아니다.
‘…닿지 않는다.’
‘허공에 허우적대고 있는 것처럼. 공기를 베고 있는 것처럼.’
‘분명 눈앞에 있는 녀석의 몸을 건들 수조차 없다.’
자신의 새로운 몸을 시험 하려는 지.
반격은 하지 않고 오로지 피하고만 있는 그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