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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팔면 마나가 쌓임 4권
비찬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의뢰 1
순찰
협업
레디트
판매 퀘스트 1
1
의뢰 1
저건…… 눈인가?
르노아의 눈을 통해 보인 것은 어떻게 봐도 눈처럼 생긴 문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양은 아니고 마나의 흔적이었다. 이질적이다 못해 찝찝하기까지 한 마나가 느껴지는.
마나의 흔적이 남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저렇게 명확한 형태를 갖추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리고 마나의 흔적이 남은 것이 자폭한 키메라들의 사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중요한 단서일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것이다.
눈 문양을 쓰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진 않지만, 몇 군데 있다.
동부에서 유명한 마탑인 라이엘르 마탑도 눈 문양을 상징으로 쓰니까.
하지만, 눈 문양이라도 느낌이 전혀 달랐다.
라이엘르 마탑이 초롱초롱한 느낌이라면, 이건 좀 기괴하고 무서운 느낌이랄까?
고민하는 사이 르노아의 눈의 효과가 끝났다.
“뭐 해?”
“잠깐만.”
나는 급히 종이와 펜을 가져와 조금 전 본 눈 문양을 그렸다.
그림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라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모양 자체가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던 덕분에 그럭저럭 비슷하게 그릴 수는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본 타이오가 물었다.
“갑자기 웬 그림이지?”
“르노아의 눈으로 본 걸 그린 거야.”
마탑 사람들에게는 르노아의 눈에 관해 말해 놓은 상태였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타이오는 르노아의 눈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번 써 보고 신기해하는 게 다였다.
운동과 관련된 게 아니라서 그런가?
“그래?”
“응.”
“눈이라……. 특이한 문양이군.”
“이건…….”
타이오의 말에 사르킨이 다가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눈치였다.
“혹시 아는 문양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옛날에 비슷한 걸 본 같네.”
“그게 뭐죠? 말해 주세요.”
“음…… 흑마탑의 문양인 듯하네.”
“흑마탑이요?”
“아,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군. 흑마탑은 저 옛날 마왕군 휘하의 마탑으로 흑마법사들이 모인 마탑이라네.”
잠깐만. 그렇다는 건…….
“……키메라들이 흑마탑과 관련 있다는 건가요?”
“글쎄, 단언하긴 어렵네. 흑마탑은 오래전에 사라졌으니까 말이네.”
단서를 얻었지만, 오히려 더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대체 누가, 왜 우리 마탑에 침입한 것일까?
놈들이 찾던 ‘그것’이 뭘까?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확실한 게 있다면, 누가 됐든 심상치 않은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 * *
그 시각, 제페인 마탑.
데이노르는 순간 느껴지는 감각에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길버트의 물음에 데이노르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무래도 키메라들이 패배한 것 같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다크 버그가 죽었으니 확실하다.”
다크 버그는 어둠의 마나를 먹고 사는 벌레 형태의 몬스터로 키메라를 만들 때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어둠의 마나를 먹는 특성 탓에 다크 버그에 금제를 걸 수 있고, 이 금제에 따라 다크 버그가 숙주로 삼은 생명체에게도 금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키메라가 되며 급작스럽게 강한 힘을 거머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뒀다간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법.
당연히 데이노르도 키메라들에게 금제를 걸어 놓았다.
여러 금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금제는 배후를 발설하려고 하면 자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금제가 발동한 것이 느껴졌다.
그 말인즉, 키메라들이 패배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패배하지도 않았는데 발설할 이유는 없으니까.
“……혹시 지원군이 있었던 건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리안과 타이오 둘만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졌다고? 하.”
데이노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카일러가 졌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다크 버그가 자폭한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길버트.”
“네, 탑주님.”
“르노아 마탑의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분 뒤.
길버트가 돌아와 보고했다.
“그래, 상황이 어떻지?”
“그게…….”
“말해 봐라.”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뭐라고?”
패배한 것도 믿기지 않는데, 아무도 죽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치지도 않았다고?
한 마디로 그냥 패배도 아니고 완패라는 뜻이었다.
“르노아 마탑의 전력이 생각 이상인 것 같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그래도 금제가 발동한 이상 저희가 배후에 있다는 걸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딱히 위로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키메라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 버렸잖나.”
“그건…….”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조용히 있을 수밖에.”
데이노르는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더욱 더 조심해야 할 듯했다.
‘두고 보자. 언젠간 내 손으로 죽여 주마.’
* * *
세이린은 갑자기 찾아와 하는 리안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마탑에 침입자가 있었다고?”
“정확히는 침입자들이에요. 4명이거든요.”
“괜찮아? 다친 건 아니고?”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그 말이 거짓이 아닌 듯 딱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바닥을 뒹굴기라도 한 듯 옷이 더러워진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무사해요.”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세이린이 리안에게 물었다.
“아, 배후가 누군지는 알아냈어?”
“자폭하는 바람에 실패했어요.”
“……자폭이라고?!”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입자들에 관한 것들을 간략히 세이린에게 설명했다.
“키메라라니……. 그게 아직도 있을 줄이야.”
“사르킨 님 말로도 50년 전쯤이 키메라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이겼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네.”
“운이 좋았어요.”
리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적들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브루노나 사르킨을 한꺼번에 공격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테니까.
까딱 잘못했으면 일대일로도 카일러에게 질 뻔하기도 했고.
“키메라까지 만들어서 너희 마탑을 공격하다니.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단서 같은 건 없어?”
“하나 있긴 해요.”
리안은 미리 그려 놓은 눈 문양을 세이린에게 보여 줬다.
“놈들에게서 본 문양이에요. 혹시 아세요?”
“처음 보는 문양이야.”
“사르킨 님이 예전에 비슷한 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리안은 사르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줬다.
그러자 세이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흑마탑이라……. 확실히 키메라와 연관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오래전에 사라진 마탑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일단 알아는 볼게.”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