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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팔면 마나가 쌓임 3권
비찬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안톤 칼레노스 2
결승
속도 제어 마법진
라트라
스치웰
침입자들
1
안톤 칼레노스 2
막을 수 없다.
맹렬한 기세로 짓쳐 드는 ‘춤추는 바람의 칼날’을 보고 난 후 든 생각이었다.
수호의 벽이 멀쩡하더라도 장담할 수 없을 텐데, 이미 균열까지 가 있는 상태에서 막을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막을 수 없다면 피해야 한다.
판단은 빨랐고, 실행은 더욱 빨랐다.
“질풍 같은 용기를!”
곧바로 가속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몸을 날린 것이었다.
가속 마법을 쓴다고 해서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가속 마법이 이동 속도를 올려주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신체 능력에 따라 그 효율이 달랐으니까.
신체 능력이 100인 사람이 20% 빨라지면 120이지만, 50점인 사람이 20% 빨라지면 60이다.
절대적인 속도 차이는 물론, 향상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마법사들은 신체 능력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골방에 틀어박혀 마법만 연구하는데 신체 능력이 좋을 턱이 있나.
타이오 같은 예외도 있기야 하겠지만, 극소수다.
아무튼, 내가 만약 대다수의 마법사처럼 신체 능력이 형편없다면, 가속 마법을 쓴다 한들 춤추는 바람의 칼날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 신체 능력이 그 정도는 아니다.
타고난 신체 능력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타이오에게 강제로 운동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처럼 근육을 키운다고 마나가 안 쌓인다니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운동은 필요하다. 너처럼 활동량이 적은 사람은 특히.”
그래 봐야 가끔이고 강도도 낮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쩌저적!
나는 춤추는 바람의 칼날이 수호의 벽을 박살 내기 직전 몸을 날릴 수 있었다.
쒜에엑!
춤추는 바람의 칼날이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저 칼날이 가른 것은 내 몸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섬��해졌다.
쾅!
관중석 쪽으로 날아간 춤추는 바람의 칼날이 투명한 장막에 막혀 소멸했다. 관중석에 설치된 방어 마법진이 발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계속됐다.
“춤춰라, 바람의 칼날이여!”
안톤이 재차 공격을 해 왔으니까.
쒜에엑!
수호의 벽을 사용할 틈도 없이 이어진 공격에 나는 또다시 몸을 날려야 했다.
이번에도 어떻게 피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당장 가속 마법의 효과만 끝나도 위험했다.
무엇보다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어떻게든 공격해야 하는데, 안톤은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최대한 고르며 생각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도박이 필요했다.
안톤의 공격을 피하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
그러니까 ‘무빙 캐스팅’을 해야 했다.
전투 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무빙 캐스팅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가만히 서서 마나를 배열하고, 심상을 떠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움직이면서 한다고?
그게 쉬울 리 없었다.
그래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무빙 캐스팅은 3서클부터 가능하니까.
하지만, 3서클이 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상황.
게다가 연습 한 번 하지 않고 실전이라니.
평소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해야 해.”
이대로는 천천히 질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안톤을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단순히 패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겨야 했고, 이기려면 도박이 필요했다.
쒜에엑!
나는 안톤이 날린 마법을 피하며 마나를 배열하고, 심상을 떠올리고, 주문을 외웠다.
“꿰뚫어라, 불꽃 화살!”
화르…….
그러나 불꽃 화살은 만들어지다 말았다.
무빙 캐스팅에 실패한 것이다.
제길.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지만, 실패하니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쒜에엑!
그러나 실패에 얽매여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이어지는 안톤의 공격을 피하며 다시 한번 무빙 캐스팅을 시도했다.
“꿰뚫어라, 불꽃 화살!”
화르르…….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속 마법도 끝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반격은커녕 안톤의 공격에 당하고 말 터.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멈춰서 마법을 쓸까?
순간, 갈등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고.
나는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대각선으로 달리며 마법을 사용했다.
“질풍 같은 용기를!”
아까와 달리 불꽃 화살이 아닌 가속 마법이었는데…… 성공이었다!
기존 가속 마법의 지속 시간이 끝나 느려졌던 몸이 다시 빨라진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대각선으로 달리며 주문을 외웠다.
“날아가라, 물의 공!”
죽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에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한 덕분일까.
무빙 캐스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는 듯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쒜에엑!
수압을 최대로 높인 물의 공이 안톤을 향해 날아갔다.
“……솟아라, 수호의 벽!”
안톤이 멈칫하며 마법을 사용했다.
내가 반격할 줄은 몰랐던 듯했다.
콰앙!
최대 수압의 물의 공은 수호의 벽에 커다란 군열 여러 개를 만든 다음 소멸했다.
……아깝네.
어쨌든, 공격이 실패한 이상 가만히 서 있는 건 위험했다.
나는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이번에도 방향은 대각선.
정면보다는 측면을 노리는 것이 조금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그렇게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몸을 돌리는 안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좀 이상했다.
……왜 저렇게 느리지?
몸을 움직이는 게 느려도 너무 느렸다. 마치 둔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하지만, 나는 둔화 마법을 쓴 적이 없다.
그러니까 둔화 마법 때문은 아닐 터였다. 스스로한테 둔화 마법을 건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원래 저렇게 느리다는 건데…….
물론, 날 때부터 느린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건 그 정도가 심했다.
혹시 몸에 문제라도 있나?
사실, 움직임이 느린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느리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걸 공략하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해 보자.”
나는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안톤의 방향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지그재그로 뛰었다.
그 노림수가 통했다.
날 따라 몸을 돌리는 안톤의 움직임은 느려도 너무 느렸고, 그 탓에 안톤은 공격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었으니까.
“날아가라, 물의 공!”
나는 아직 몸을 돌리지 못한 안톤에게 물의 공을 날렸다.
안톤이 급히 수호의 벽을 사용했다.
수압을 전혀 올리지 않은 물의 공은 수호의 벽에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소멸했다.
상관없었다. 애초에 물의 공은 미끼에 불과했으니까.
그 사이 안톤의 뒤로 이동한 나는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했다.
“날아가라, 물의 공.”
이번에도 물의 공이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물론, 수압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수압을 올린 물의 공은 너무 강했다.
잘못하면 안톤이 죽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