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5권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5권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5
자운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5권
차례
제21장.
제22장.
제23장.
제24장.
제25장.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5권
제21장.
그는 발끝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위로 떠오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소화는 그 앞에 서서 그가 말하는 것을 전부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술상을 발로 걷어차 뒤엎은 것이 소화가 그 방에서 한 마지막 일이었다.
광걸개는 자기가 휘하에 두고 있던 거지가 이런 방법으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광걸개가 아닌 누구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소화가 밖으로 나가자 옆방 문이 열리고 정춘이 나왔다.
아직은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만약 누군가 소화를 가로막는다면 자기가 나서려는 생각이었다.
다른 기생들이 소화를 보자 정춘이 다가가서 소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소화에게 관심이 있어서 수작을 부리는 것처럼 굴었다.
그곳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지만 왠지 다가오지 않았다.
정춘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만 그것은 소화의 술법 때문이었다.
기루를 다 빠져나가고 정춘은 희한하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곳이네. 왜 한 사람도 붙잡지 않지? 저런 식으로 하면 기녀들이 다 도망쳐도 되는 것 아닌가? 루주가 착하거나 멍청하거나 그런 건가?”
그러자 소화가 궁금한 것도 많다는 듯이 정춘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손을 내밀었다.
“뭐?”
“옷이나 주쇼.”
“야, 그렇게 차려입으니까 좋구만 뭘 갈아입으려고 그래? 그리고 그 말투는 또 뭐야? 그러고 보니까 정말 대단하던데? 옷을 갈아입는다고 말투도 당장에 나긋나긋해지고 말이야. 소화 아우에게 내가 오늘 여러 번 놀랐어.”
“헛소리하지 말고 옷이나 내놓으라는 말이오.”
그러더니 머리에 꽂은 온갖 장신구들을 그 자리에서 다 뽑고 머리를 묶은 고무줄까지 풀어서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놔버렸다.
그러더니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흙을 손바닥에 묻히고 그것을 다시 얼굴에 묻히니 거지꼴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만해. 옷을 줄 테니 그 옷은 더럽히지 마. 좋은 옷을 왜 그래?”
정춘은 옷이 험한 꼴을 당할까 봐 겁이 나는 듯 서둘러 보따리를 주었다.
대사를 치르는데 악취 때문에 들키면 안 되겠기에, 새옷을 구해 누더기로 만들어 더럽힌 채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있었다.
소화가 옷을 가지고 가까이에 있던 나무 뒤로 가더니 잠시 후에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됐으니 이제 돌아갑시다.”
“알아내지 못했지? 그자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는 아닌 것 같더라.”
“왜 못 알아내오? 신법만 빠르면 며칠 안에 척인궁과 조반을 같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소화가 표정도 없는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하자 정춘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윽고 안휘성의 모처에 위치한 장원의 이름이 소화에게서 흘러나왔다.
정보가 어찌나 생생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잘 아는 곳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너!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그냥 대충 둘러대는 것 아니야?”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소?”
그러면서 그것을 광걸개에게 알려주는 것은 알아서 하라는 듯이 한껏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일단 여기는 빨리 떠납시다.”
이제는 소화가 완벽하게 거지꼴이 되었으니 자기만 좋은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자기 때문에 더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것 같았다.
개방 제자로 살면서 언제 이런 좋은 옷을 입어볼까 해서 좀 더 입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별수 없었다. 그도 곧 소화에게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나왔다.
이제는 소화가 하는 말을 믿고 광걸개에게 그 내용을 서둘러 보고하는 일만 남았다.
“빨리 가자니까요?”
자기는 이미 충분히 서두르고 있는 것 같은데 소화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정춘을 재촉했다.
“아니, 왜 그래? 그자를 때려눕히기라도 했어? 사람들이 그자를 발견하고 잡으러 올까 봐 그래?”
“아, 글쎄 어서 가요.”
정춘은 결국 소화의 성화에 못 이겨 그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떠난 후 기루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기루에서 죽은 것이다.
더군다나 맹선유는 그날 루주의 특별한 초대를 받고 그곳에 온 거였다.
루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맹선유가 일찌감치 기루를 떠나 다른 곳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말을 맞췄다.
관에서 나와 사인을 조사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을 듯했다.
놀랍게도 그자는 그 방에서 물에 빠진 것처럼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속에 오래 빠진 듯이 몸은 차갑고 푸르딩딩하게 불어 있었다.
시신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기겁하며 루주의 말을 들었다. 근방에서 맹선유의 가문에 죄를 짓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어차피 다른 수는 없었다.
* * *
광걸개가 알려준 장원 앞에 도착해 그곳을 노려보는 이는 세 사람이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모용지란이 탈락하고 남궁결과 팽우현이 자소청의 곁을 지켰다.
그들도 모용지란의 검술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림맹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수련에 매진한 그들은 상당한 성과를 이룬 터였다.
그래서 그들이 자소청과 함께 하기로 하고 모용지란은 청성파에 그의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일이 끝나면 광걸개와 함께 비각을 무너뜨릴 계획도 같이 생각해보라고 해서 모용지란도 할 일이 많았다.
“주위 사람들은 저곳에 누가 사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 같던데 비밀을 잘도 지킨 것 같습니다.”
자소청의 말을 들으면서도 남궁결과 팽우현은 반신반의했다.
여기에 척인궁이 없으면 어찌 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의 생각대로 광걸개가 알아낸 것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척인궁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은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광걸개가 실컷 위험을 무릅쓰고 알려주었는데, 정확하지 않으니 믿지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사실 자소청에게 소식을 전한 광걸개조차도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확인은 해보고 그 결과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이유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 때문에 자소청은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암습은 적성에 안 맞는데.”
팽우현이 말하자 남궁결이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몰래 들어가서 척인궁이 가진 패를 훔치기만 하면 되는 거니 저만 들어가도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척인궁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두고 그곳을 뒤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자소청이 말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비각의 부각주라고 하지 않나. 청선당주라는 자는 비각의 다른 부각주들과도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어. 나는 단순히 물건만 훔치고 끝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팽우현이 말하다가 슬그머니 자소청의 눈치를 보았다.
괜히 그런 소리를 해서 사기를 떨어뜨려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 듯했다.
정작 자소청은 별생각이 없었다.
패를 훔치는 것은 아주 어두웠을 때 한다고 해도 그곳에 정말 척인궁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지금부터 슬슬 움직여야 했다.
검제에게 그자의 용모파기를 받아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세 사람은 각각 구역을 분담했다. 남궁결과 팽우현은 자소청을 배려해서 그에게 가장 좁은 구역만 확인하게 했지만 어차피 얼마나 많은 구역을 맡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척인궁을 찾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일이었다.
자소청은 자기가 맡은 구역 중 우선 연무장이 있는지를 먼저 찾았다.
그러다가 연무장에서 훈련하는 사람 중에 동작이 어설픈 듯한 자에게 눈이 갔는데 그자가 하필 척인궁의 용모파기와 비슷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광걸개가 준 정보가 맞기만 하다면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제에게 받은 패 때문에 비각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당주만 그것만 가지고 특혜를 주지는 않았으리라. 그랬으면 연무장에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을 것이고, 당의 무인들과 달리 아직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척인궁인 건 당연했다.
자소청은 미리 정해두었던 새소리를 내서 남궁결과 팽우현을 불러들였다.
장원에 들어간 지 이각도 지나지 않아 이룬 성과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설마 정말 자소청이 척인궁을 찾아서 불렀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에게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정말 누가 보더라도 척인궁일 수밖에 없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남궁결과 팽우현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자소청을 보았다.
“패는 당주가 가지고 있겠지요?”
“그렇지. 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임무 수행에 결정적일 테니 그것을 비각주에게 주지는 않았겠지.”
자소청의 말에 남궁결이 답했다.
이제는 하월의 처소가 어디인지 알아내 패를 찾기만 하면 되었다.
자소청은 이미 비각의 여러 사람과 상대를 해봤기에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청선당주인 하월이라는 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이곳 장원에서 경계할 사람은 그자 정도가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실수는 당주가 가장 좋은 건물에 머물 거라고 생각한 거였다.
그런데 그곳은 당주의 처소가 아니었고 아무리 찾아도 그들이 찾는 패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체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형님들, 여기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이곳을 나가서 기회를 다시 노려야겠습니다.”
자소청이 말했지만 일단 무언가를 시작하고 그것을 도중에 멈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팽우현도 그렇고 남궁결도 그렇고 자기들이 보던 곳은 다 확인을 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자소청이 그리 말했다고 해도 곧바로 사람들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모두 기감을 펼치고 있었기에 누군가 온다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기감을 펼치고 있었음에도 완전히 기척을 숨긴 채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바였다.
“뭐하는 놈들이냐.”
조용히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놀란 기색도 없이 방에 있던 세 사람을 보았다.
“여기는 일조장의 방인데 일조장에게 볼 일이라도 있는 건가? 우리 일조장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손님들이 찾아든 거지?”
그러면서 세 사람을 보던 그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다. 그것은 그의 시선이 남궁결에게 닿은 후였다.
* * *
“혹시 남궁세가의 공자님이 아니신가?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귀하는 남궁결 공자인 것 같은데. 명망 높은 남궁세가의 공자님이 여기에는 무슨 일인가? 하는 짓으로 봐서는 꼭 도둑 같은데?”
그러다가 마침내 무슨 일인지 깨달은 듯 세 사람을 보았다.
“허, 이게 재미있군. 천하에 명성이 대단하신 검제 대협이 이렇게 이중적인 분인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자기를 대신해서 죽은 수하의 아들에게 보은패를 주더니 이제는 사람을 시켜 그것을 훔쳐오게 했다는 것인가? 척인궁이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아냈지? 확실히 솜씨가 평범한 자들은 아니군.”
그가 말하며 세 사람을 하나씩 가늠하듯이 보았다.
팽우현에 대해서 미리 아는 바가 없었다고 해도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으리라.
하늘이 내린 기골이라 말하는 그런 체격을 가지면 어디에 가건 눈에 뜨이는 법이었다.
“하…. 남궁 공자가 무림맹 청룡단에 있었다더니 그때 맺은 인연인가 보군. 남궁 공자와 팽가의 소협이라. 그러면 이쪽은 누구지?”
자소청만큼은 추측해낼 방법이 없었는지 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보았다.
“곧 죽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는군. 그런데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긴 하고. 들킨 마당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인 건가? 그게 아니면 나오지?”
그러고는 먼저 걸어나갔다.
남궁결이 자소청을 보자 자소청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된 바에야 저자를 쓰러뜨리지 않고 나갈 방법은 없으리라.
“여기에서 공격하는 게 저자에게는 더 유리하지 않은가?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공격하는 게 좋을 텐데.”
팽우현의 말에 자소청이 웃었다.
건물을 부수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소청의 생각이 맞았는지 그자는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그때부터 창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숨도 쉬지 않은 채 창을 휘두르며 순식간에 수십여 초를 쏟아냈다.
휘두르고 찌르고 허점을 노리며 사혈을 노리는 공격이 계속되었다.
혼자서 세 사람을 공격하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였다.
자소청도, 그리고 남궁결과 팽우현도 진심으로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각에 이런 고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인재가 왜 비각에 투신했다는 것인가 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들이 생각할 것은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방법은 강구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