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4권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4권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4
자운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4권
차례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4권
제16장.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겠습니다. 비각에는 초미려와 같은 사람이 수도 없이 있을 게 아닙니까?”
자소청의 말에 천지안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초미려?”
“예. 사백들은 귀도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 말에 천지안이 한수겸을 바라보자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당적산이 대답했다.
“그렇구려. 그 여도객이 귀도였구려. 나도 귀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소. 무림인치고 귀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는데 이제야 모든 게 딱딱 들어맞는 것 같소. 최고의 도객이 아니면 그런 도법을 펼칠 수 없었을 거요. 그런데….”
당적산이 침을 튀기며 말을 하다가 자소청을 보았다.
“그런데 자 도장이 그 귀도를 꺾은 게 아니오? 최고의 도객을 꺾었다면….”
그러나 당적산은 거기에서 말을 멈췄다. 자소청이 최고의 검객인가 하면 그 말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만 해도 여럿이었다.
검제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청성파 내에도 자소청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겠는가.
‘아닌가?’
그는 자소청의 검식을 떠올렸다.
그리고 최고의 검객이라는 게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지 생각했다.
심후한 내공과 무공에 대한 깊은 이해. 굳은 의지와 초인적인 근성?
그것 중 이 젊은 도장에게 부족한 것이 있을까 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내공?’
그러나 기연을 얻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내공이 심후하다는 인상을 받은 게 여러 차례였다.
‘그래도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 만약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당적산은 주인을 바꾼 노복과 마찬가지의 신세였다. 자의로 갈아탄 것은 아니지만 새로 모시게 된 주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청성파의 입장은 무엇이오? 비각을 지울 것이오? 아니면 비각을 견제하고 청성파를 키워나가는 것이 목적이오?”
당적산의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청성인들은 모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답을 찾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질문이었다.
웬만하면 얽히고 싶지 않지만 계속 모른 척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거참 질척거리네. 그런 인간들 정말 질색인데.”
천지안의 말을 들으며 자소청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 사제는 무사하겠지요?”
동문들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며 자소청이 말했다. 그러자 다들 그 일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야 할 텐데.”
자연스레 그들의 걸음은 빨라졌고 그때부터는 별다른 말이 없이 각자가 신법을 펼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 * *
우종혁과 추원서가 자소청의 지도 아래 집중적으로 수련을 하게 됐다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행히 우종혁은 부상을 거의 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미 초미려를 그냥 보내준 상태였기에 만약 우종혁의 부상이 심했다면 후회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당적산은 그날부터 암기 제작에 들어갔는데 자소청은 자기가 광운표국에서 얻어왔던 바늘과 비녀까지 주면서 그를 격려했다.
당적산은 어디서 이런 것들을 구한 거냐며 신기해하면서 사양도 않고 받았다. 어차피 훨씬 대단한 물건으로 탈바꿈해서 자소청에게 돌아갈 거였기에 미안해할 필요도 없었다.
우종혁과 추원서는 자소청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럴 이유는 많았다.
첫째, 자 사형은 훈련 시간에 늦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유는 수도 없이 댈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이유가 생기지 않게 했으면 되지 않냐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요리점에서 일이 생기기 전에 그곳을 나섰으면 됐으리라.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자 사형은 다른 이야기를 했을 때보다 그들이 잉어요리를 먹었다는 말에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이라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 생각한 걸 거라고 여겼다.
어쨌건 첫째 이유는 그거였고 둘째 이유는 우종혁이 너무 어이없이 당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우종혁은 그 상황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종혁을 납치한 사람이 귀도라면 우종혁이 아닌 장로급도 별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그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고 자소청이 하라는 대로 순순히 수련을 했다.
지금이나 되니 사형이 일일이 훈련을 도와주는 것이고, 나중에는 훈련을 도와달라고 해도 그럴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하자 두 사제도 수긍했다.
그들도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사형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고 있었다.
자소청은 두 사제를 혹독하게 수련시키는 한편 초미려와의 전투를 복기했다.
‘그런 고수와 싸울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어. 그렇게 한 번 부딪혀보고 나면 그동안 연못가에 와서 사람들이 와서 하던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자소청은 자기가 깨달은 것을 두 사제를 상대로 훈련을 해보았다. 사제들은 만족스러운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이렇게 해놓으면 위기의 순간에 떠올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적들이 나타나도 어떻게든 도망치거나 한 몸을 지켜내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사제들은 너무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 사제들은 잠자는 시간을 줄이도록 해. 알겠어?”
지은 죄가 있는 그들이라 별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초미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비각의 각주는 조용히 그녀를 불러들였다.
이렇게 빨리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뭔가 일이 잘못됐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초미려는 최대한 담담하게 각주를 알현하러 갔다.
각주는 높은 단상 위에서 초미려를 내려다보았다.
초미려가 있는 곳에서는 각주의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찌 되었느냐.”
그 목소리는 사방에서 울려퍼졌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음성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초미려는, 만약 자기가 밖에서 각주와 마주친다고 해도 그가 각주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초미려만 그런 것도 아니고 비각의 모든 사람이 그랬다. 각주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만 정작 그가 누구인지 가려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존재이기에 비각의 누구도 감히 각주를 향해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자기가 포섭하려고 한 사람이 각주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해주려고 그러는 것처럼, 초미려에게 말하는 음성 중에 초미려의 음성과 똑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다.
자신은 그들 중 누구의 목소리도 흉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러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각주님. 실패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해보아라.”
초미려는 감히 가감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소청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버렸는데 각주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왜 웃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그자가 지금의 이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저를 놓아주었던 것이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초미려는 자소청과 그의 사백들이 했던 말을 해주었다.
각주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자소청은 무림맹 정보각의 말단 서기라 하지 않았느냐. 그런 놈이 무슨 기연을 얻어 그렇게 단기간에 강해졌다는 것이냐.”
“제갈문이 청성의 청월검법을 얻으려고 그자에게 비급을 아끼지 않고 보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년화리의 내단을 먹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것이야 나도 알고 있다. 허나 무재가 없던 자가 그런 기연을 얻었다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 네가 보기에는 어떻더냐.”
초미려는 그 답을 신중히 하려고 생각에 잠겼다.
각주도 초미려가 더 자세한 답을 하려고 그러는 것임을 알아차려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자는 특별한 무재를 지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붙어서 격전을 치르면 상대의 무공을 체득하는 듯합니다.”
초미려는 자소청이 자신의 초식에서 몇 가지를 흡수해 검식으로 바꾸어 사용하더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말에는 각주도 놀란 것 같았다.
만약 초미려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겠지만 초미려는 강호 최고의 도객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펼치는 절초를 따라 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다른 병기에 응용을 하고 그 자리에서 펼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각주는 초미려가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초미려가 누군가의 무재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각주의 기억에는 없었다.
“자소청의 처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그 말에는 초미려의 태도가 한층 더 신중해졌다.
“그자를 지키고 싶은 것이냐.”
각주의 말에 초미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지는 않을까 해서 그것은 걱정이 됩니다.”
“그 말에 조금의 사심도 없느냐?”
“사심 없이 대답한 것이 이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부각주를 보내시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제 말씀이 맞다면 그때는 자소청이라는 불이 한층 더 커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각주도 계속 의심만 하기는 어려웠다.
“누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각주가 그렇게까지 묻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의심을 지운 것 같았지만 초미려는 섣부르게 대답하지 않았다.
자소청이 어찌 되기를 바라는지, 초미려 자신도 자기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답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알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알겠다. 돌아가보아라.”
초미려는 이제야 끝났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나섰다.
초미려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려 했을 때 한 사람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서른 초입 정도의 외모에 깎은 듯이 수려한 용모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각주의 대공자이자 소각주였다.
윤소의 이복 형이기도 한 윤신이 실제로 몇 살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각주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소의 나이가 있으니 윤신은 적어도 마흔은 넘지 않았겠냐고 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부각주님, 임무를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듣기 좋은 중저음이 울렸다.
비각의 여자들은 어떻게든 그의 눈에 들려 안달이었지만 각주의 대공자가 초미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대공자에게 관심을 가진 이 중에는 비각의 고위직 간부도 있었기에 그 이유로 초미려에게 견제가 들어오기도 했다.
정작 초미려 자신은 윤신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기에 그런 일에 휘말리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또 마주친 것이다.
* * *
어찌나 절묘한지,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예, 다녀왔습니다, 소각주. 임무를 성공하지 못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각을 실망시켰습니다.”
적당히 예의를 갖추어 말하자 윤신이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이 실망하는 것이 뭐가 문제라고 그러십니까.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돌아오셨으니 되었습니다. 상하신 곳은 없습니까?”
“다친 곳 없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더 민망하군요.”
“부각주님이 다치셨다면 걱정했을 겁니다.”
초미려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이 달갑지 않아 대충 인사를 했다.
“이제 돌아가서 쉬었으면 합니다.”
“예, 그러셔야지요. 돌아가 계시면 심신의 안정에 좋은 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저는 차를 즐기지 않습니다. 차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그분들에게 주시면 기뻐하겠군요.”
윤신은 초미려의 철벽에도 그저 인자하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