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3권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3권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3
자운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3권
차례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전생에 만년화리였다 03권
제11장.
마부는 아니었다.
마부는 자소청이 그곳에 나타나고 곧바로 일찌감치 도망쳤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느껴져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자기가 잘못 안 거라면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암기가 날아온 것이다.
자소청은 뒤돌아볼 틈도 없이 계속해서 몸을 날렸다.
모용지란은 그에게 안긴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검은 복면을 한 남자의 시선이 들어왔다.
복면 속의 눈이 너무 평화로워보여서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했을 정도였다. 그 눈만 보면 제갈문을 향해 암기를 던져 그를 죽인 게 아니라,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현장에 온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불쌍하게 공격당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자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의 행동으로 곧 확실하게 판명이 났다. 그는 모용지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마치 보라는 듯 제갈문의 목을 찔렀다.
팔의 절반 길이 정도 되는 단도를 목에 넣고, 걸리적거리는 뼈를 함께 잘라내며 목을 잘라버린 것이다.
제갈문의 목은 거의 절반 이상이 잘린 채 뒤로 넘어가 덜렁거렸다. 그런데도 모용지란은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자신은 증인이었다. 제갈문에게 일어난 일을 자소청에게 모두 말해주어야 했다. 그러려면 알아야 했고, 설사 그 광경이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봐야 했다.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가 얼마나 후회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주위로 몇 개의 신형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들은 모용지란이 있는 곳을 곧바로 찾지 못한 듯했다. 제갈문을 죽인 자도 모용지란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모용지란은 그자가 자기들을 붙잡으려는 생각은 없는 건가 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모습을 드러내기 전 그녀는 그들이 근처에 와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모용지란이 볼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한계였다. 자소청의 신법이 너무나 빨라서 곧 그 광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자소청은 그러고도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몇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제갈문의 목을 잘라서 죽였고요. 눈이 마주쳤어요.”
모용지란이 자소청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극한의 신법을 펼치는 중이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도 자소청의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멈춰도 될 것 같아 말한 것이다.
자소청은 모용지란이 하는 말을 들으며 움찔하더니 조금 더 신법을 펼쳤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제갈문을 죽인 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모용지란은 묻지 않았다.
자소청은 인근에 낡은 도관이 한 채 있던 것을 기억했다. 그곳은 워낙 외진 곳에 있고 관리도 되지 않아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우연히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거기에 도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오는 게 아니라면 거의 찾아갈 일이 없는 곳인데 지금은 그곳이 적당할 것처럼 느껴졌다.
모용지란은 어디로 가는 건지 묻지 않은 채 최대한 조용하고 얌전하게 있었다. 지금은 자소청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공지가 나타나고 도관의 부속 물품들이 보였다.
자소청은 이제 됐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내려서더니 모용지란을 가만히 내려주었다.
모용지란의 얼굴은 처음에 봤을 때보다 더 상태가 나빠보였다. 퉁퉁 붓고 찢어지고 멍이 더욱 짙어졌다.
모용지란은 얼굴과 몸에서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에 자소청이 왜 그렇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했다. 그 손을 자소청이 붙잡았다.
“만지지 마십시오. 제가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안으로 가지요.”
모용지란은 그제야 주위를 자세히 돌아보았다.
자소청은 모용지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평소에 이곳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재수 없게 하필 이런 때 사람이 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도관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는 동안 뒤에서 모용지란에게 일이 생길까 봐 손을 잡고 가는 거였다.
모용지란은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심장이 정신없이 뛰는 바람에 기가 막혔다. 아무리 자소청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이런 반응이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모용지란은 지금껏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이성적인 호기심을 느껴본 적도 없었기에 이런 경험이 완전히 생경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려서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하필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별 수 없이 자소청을 따라가는데 자소청이 그 자리에 멈칫했다.
앞에 사람이 있는 건가 해서 모용지란도 덩달아 놀라 멈췄다.
그러나 자소청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갑자기 멈칫한 것은 사람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기가 이 도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희한하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것은 자소청, 그러니까 만년화리의 기억이 아니라 죽은 자소청이 갖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것이 스며들어 자소청에게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잘 된 일이긴 하네. 처음부터 이랬으면 더 좋기는 했겠지만 지금이라도 기억이 나서 다행이야.’
죽은 자소청은 시간이 날 때 이 도관에 자주 온 듯했다. 시간이 날 때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가롭게 쉰 게 아니라 이런 곳에 왔다는 게 안타까웠다.
사람이 찾지 않는 어두운 도관에 와서 자소청은 자기가 쓸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다 쓰다가 돌아갔다.
‘정말 불쌍한 사람이었네….’
자소청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한숨을 쉬면 모용지란은 일이 잘못된 줄 알고 겁을 먹을 것이다.
‘일이 잘못되기는 했지.’
이제부터는 생각해야 할 게 많았다.
“여기에 이런 도관이 있었어요?”
모용지란이 물으며 주위를 살폈다. 숫제 폐가와 같아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도관에 들어가지 못한 채 불청객을 맞이했다.
자기들이 도관의 주인이 아니니 그들을 불청객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제갈문을 죽인 자예요.”
모용지란이 자소청에게 작게 속삭였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일곱 명으로 각자 특색없는 무복을 입고 있었다.
전부다 복면을 두르고 있었는데 손에 든 무기도 제각각이었다.
자소청은 그들이 든 병기와, 그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공법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죽은 자소청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었다.
그 생각에 자소청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갑자기 지금, 죽은 자소청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도 희한했는데 지금처럼 그게 필요할 때도 없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기괴하게 보였을지 자소청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소청이 자기들의 실력을 알지 못해서 그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괜히 패기를 부릴 수 있는 거라고 여긴 것이다.
자소청은 모용지란의 손을 놔주었다.
그는 모용지란의 검술이 꽤 쓸만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그녀를 지켜가면서 싸울 것인지 거기에 생각을 집중했다.
그때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북풍이 위용을 드러냈다.
자소청에게는 그 순간 그보다 더 반가운 존재가 없을 정도였다.
북풍은 자신의 앞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복면을 한 자들은 말이 나타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것이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그대로 달려올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존심 싸움을 하겠다며 객기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두 일시에 몸을 피하자 조금 전까지 그들이 있던 자리로 북풍이 지나갔다. 북풍의 말발굽에 찍혀나간 땅거죽이 솟아서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계속 버티고 있었으면 몸이 성하지 못했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북풍이 달려온 곳은 자소청의 앞이었다. 아니, 모용지란의 앞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모용지란은 북풍이 처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북풍이 자기들을 구하러 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북풍이 다가오자마자 곧바로 몸을 실어 올라탔다. 그리고 자소청도 올라타기를 기다렸는데 북풍은 자기가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이 그대로 쌩 하니 달려가버렸다.
자소청은 기가 막혔다.
그도 말을 타고 도망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북풍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나 태우고 빠르게 도망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이 자기들을 호락호락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 모용지란만 보내고 자기는 그들을 상대하려 했다. 어차피 얼마 가지 못해 모용지란과 함께 붙잡히느니 모용지란이라도 보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면 모용지란이 그사이에 검제와 사백들을 불러다줄 수도 있으리라 했는데….
그래도 거절할 기회는 줄 줄 알았는데 저렇게 냉정하게 가버린다는 것인가.
가만 보니 모용지란도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등에 몸을 바짝 숙이고 가고 있었다.
그거야말로 바른 자세이기는 했다. 여기에서 자기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사람들을 모아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리라.
‘그게 맞는 거겠지? 그래. 맞을 거야.’
자소청은 정신을 차리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용지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모용지란이 그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고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제갈문이 겁낸 놈들이 네놈들인가? 신기하군. 천하의 제갈문이 겁내는 사람도 있고.”
자소청은 말을 하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자들을 살폈고 그중 한 사람의 옷에 피가 튄 것을 알아차렸다.
그자가 직접 제갈문을 죽인 건가 하면서 자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나를 죽일 자신이 없는 건가? 왜 다들 복면을 쓰고 있어? 복면을 벗고 시원하게 싸우고 나를 죽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럴 자신은 없는 건가?”
그 말을 듣고도 그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피가 튄 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석상 같았다.
“재미있군. 왜 갑자기 설치는 것이냐.”
역시나 입을 먼저 연 사람은 그자였다.
* * *
“자기 소개부터 하는 건 어떤가?”
자소청이 물었지만 그는 대화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가 고개를 한 번 움직이자 석상처럼 서있던 자들이 자소청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그들은 자소청을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자소청은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은 없었다. 상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스스로에게 여러 조건을 걸어둘 마음은 없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거였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전광석화처럼 몸을 쏘았다. 그것은 자소청이 전에 보지 못한 속도였다. 움직임이 시작되기 전에 무서운 반응으로 먼저 피했지만 그러고도 자소청은 그자에게 붙잡혔다. 자소청의 팔을 붙잡은 그의 손톱이 자소청의 팔에 파고들었다.
손톱에 암기를 부착해둔 것인지 그것이 깊이 들어오며 깊이 상처가 생겼다. 그자는 그대로 긁어 살점을 긁어내려고 하는 듯했다.
자소청은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그자가 붙잡으려던 것은 애초에 팔이 아니었다. 목과 가슴을 연달아 노리다가 자소청이 피하는 바람에 팔을 붙잡은 것이다. 그 손에 만약 목과 가슴이 잡혔으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그러나 놀라움은 자소청만의 몫이 아니었다. 그도 만만치 않게 놀라서 자소청을 보았다.
일단 붙잡은 이상 그는 상대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소청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팔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지만 그에게 붙잡히고 겨우 그 정도 부상만 입고 피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랐다.
“현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냐.”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차갑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소지존!”
현일이라 불린 자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소지존? 마교도들인가? 자기들의 신분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던데 저 호칭으로 부른다고? 헷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건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말이 이어졌다.
“현이와 현삼도 도와라.”
이름도 참 건성으로 지었다고 생각하며 자소청이 웃어버렸다.
그러고는 뒤로 풀쩍 뛰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옷자락을 찢어 팔을 감았다.
싸움의 양상이 어찌 될지 몰라서 금창약을 마구 쓰지는 않았다. 오늘의 싸움은 어쩌면 신무문주를 상대했을 때만큼이나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네놈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을 건가?”
자소청이 말했지만 그 말에 대한 대답은 누구에게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참 야박하네.”
소지존이라 불린 이의 명을 받고 세 사람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자소청을 공격해왔다.
자소청은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그들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공격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매번 가까스로 몸을 내빼는 일이 반복되었다.
“으어!”
“아악!”
“히익!”
그게 모두 자소청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소리였다. 사람들은 자소청이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매번 아주 약간의 차이로 놓치다보니 조금씩 평정을 지키는 게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