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4권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4권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4
Cadilet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4권
차례
Chapter 01. 작은 보상 - 2
Chapter 02. 어둠 속에서 웃는 얼굴
Chapter 03. 다른 이에게 건네는 마음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4권
Chapter 01. 작은 보상 - 2
“인기가 많으시군요.”
“그냥 모험가끼리 서로 좋게 좋게 하는 것이지요.”
“하하.”
현준의 말에 바하누스가 작게 웃었다. 현준은 조금 뜨끔해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가 모험가들과 마을을 위해 한 일들이 실로 거대하지만, 꾸준한 이미지 관리를 통해 인기를 쌓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 경비병의 인사를 받고 숲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적당한 장소에서 마주 섰다.
놀랍게도 탄타레스가 죽고 고작 하루 지났는데 숲에는 벌써 새와 곤충 소리가 들려온다. 한동안은 숲에 생긴 공백으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금방 회복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시작할까요?”
“예.”
현준이 목검을 빙글 돌리며 대답한 뒤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현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본 바하누스도 창과 방패를 올렸다.
현준은 잠시 간을 보다가 바하누스가 먼저 움직일 것 같지는 않자 단숨에 달려들었다. 그러자 바하누스가 한 걸음 내밀며 여유롭게 손을 움직였다.
탁! 타닥!
숲의 울퉁불퉁한 지형에서 보인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와 저돌성으로 거리를 좁히던 현준이 머리로 뻗어져 오는 창을 막고 파고들려다가, 순식간에 회수된 후 가슴을 노리는 창을 겨우 빗겨내고 몸을 물렸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현준이 이번에는 바하누스의 왼쪽으로 돌며 달려들었다. 방패 쪽에 붙어서 창의 거리 안쪽까지 파고들어 가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그것도 실력이 부족한 이델리아나 모험가들 상대로나 통하는 것이지, 바하누스에게는 어림도 없다.
후웅!
바하누스가 든든하게 발을 디디고 서서 허릿심을 이용해 사선으로 창을 크게 휘둘렀다. 창의 길이가 긴 만큼 현준은 그것에 반응할 수는 있었지만, 스칸덴의 하수도에서 디엔을 상대로 한 것처럼은 할 수 없었다. 절묘한 거리에서 바람처럼 휘둘러진 창에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못한 현준이 자세를 단단히 하며 그것을 막았다.
퍽!
“크윽!”
조금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져 옆구리를 파고들던 창을 막았지만, 그 충격에 현준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손을 들고 날을 아래로 두며 팔을 받쳐 막았음에도 충격을 다 줄이지 못해 목검이 확 밀리며 뒷날이 현준의 허벅지를 때렸다.
현준의 손목이 검사 중에서도 독보적일 정도로 유연하지 못했다면 부러져 그걸로 전투가 끝났을 정도로 홱 꺾였다. 제대로 장병기에 맞서는 것이 처음이라 저지른 실수이고, 신성력을 쓰지 않았음에도 힘이 장사이며 초절의 기술을 가진 바하누스의 신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바하누스가 크게 휘두른 공격을 막았고, 파고들 기회를 잡았다!
“엇.”
하지만 곧장 회수됐다가 튕겨져 나온 창이 가슴 앞에 딱 멈추자, 현준 역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하누스가 창과 현준이 충돌하는 순간 창대를 방패의 홈에 끼우고, 몸을 탄력 있게 털듯이 움직여 창을 회수함과 동시에 내지른 것이다.
그렇게 거칠게 움직였음에도 어찌나 섬세하게 조절했는지, 현준이 창에 반응해 멈출 위치까지 고려해 정확하게 가슴을 툭 건드릴 정도로만 뻗어져 나왔다.
“이야…….”
현준이 목검을 내리고 물러나며 감탄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 그대로 상대도 되지 못한다.
‘질레나이가 얼마나 봐주면서 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같은 전투 사제인 질레나이와의 대련에서 현준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가열차게 쏟아부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질레나이의 배려 덕분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하누스와 맞서고 보니 새삼 전투 사제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준은 검술을 펼치기는커녕 그의 영역 안에 바하누스를 두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쏟아지는 화살을 막으며 성벽을 향해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다시 가도 괜찮습니까?”
“얼마든지요.”
바하누스가 방패를 들고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 방패를 한 번이라도 때릴 수는 있을까?
“으음…….”
도저히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탁시스의 정예병 서른 명이 진형을 짜도 이것보다는 들어가기 쉬울 것이다. 현준은 바하누스의 자세와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집중하자 표정도 사라지고, 날카로운 기세조차도 가라앉았다. 현준은 어느새 바하누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정신을 쏟아붓고 있었다.
바하누스는 가라앉은 현준의 기세 속 섬뜩할 정도로 바짝 치솟은 한줄기의 칼날을 느끼며, 그 극적인 변화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를 더 공고히 했다.
팍!
현준이 아무런 자세도 잡고 있지 않다가 돌연 예리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바하누스의 좌측으로 비스듬하게 파고드는 모양새다.
바하누스는 다시 창을 휘둘러 현준에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흠!”
현준이 슬쩍 몸을 틀어 창의 범위를 벗어나고, 그대로 달려 바하누스의 측면에 도달했다.
바하누스는 다시 창을 회수해 소름 끼치는 속도로 창을 내질렀다. 반응하기도 어려운 속도이지만, 현준은 목검을 들어 올려 간신히 그것을 빗겨낸 후 멈추지 않고 바하누스를 지나치듯 계속 달렸다.
다시 한번 바하누스의 창이 쏘아져 오고, 현준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나무를 박차서 공중에서 빙글 돌며 바하누스에게 뛰어들었다.
“음!”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바하누스가 침음성을 흘렸지만, 창을 회수했다가 재차 내지르고, 방패를 들어 든든하게 가로막았다.
공중에 몸이 뜬 현준은 찰나의 순간에 파고들어 오는 바하누스의 창을 검으로 막고 전신을 이용해 밀어붙이다시피 빗겨낸 뒤, 그대로 떨어져 내려 발로 방패를 걷어찼다.
“으앗!”
하지만 바하누스가 정확한 타이밍에 방패를 당기며 홱 틀어버리자, 충격을 주기는커녕 현준의 발이 방패를 따라 틀어지며 공중에 뜬 몸도 크게 휙 돌아갔다. 현준이 당황했지만, 고양이처럼 몸을 틀며 손으로 땅을 짚어 착지했다.
툭.
바하누스의 창이 현준의 등을 툭 때리고 물러났다.
“하아…….”
현준이 엎드린 자세 그대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을 털며 일어났다.
“도무지 어떻게 파고들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현준의 투덜거림에 바하누스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현준을 살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제님. 혹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분께 검술을 사사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그게…….”
현준은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상점에서 샀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 그, 훔쳐 익히면서 독학했습니다.”
현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바하누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검술이 장난도 아니고 훔치겠다고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준의 움직임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다.
“형제님, 검술의 기본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바하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현준도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형제님의 검술은 둘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습니다.”
바하누스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나는 정석적인 검술입니다. 자세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가끔 섞어서 사용하는 변칙적인 움직임도 허를 찌르기에 좋습니다.”
롱소드 1의 검술과 안톤의 검술을 말하는 것이다. 바하누스가 손가락을 하나 더 들며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음, 조금 난폭한… 움직임인데.”
바하누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현준도 그것을 인정하는 바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최근에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어서요.”
“으음…….”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현준이 말하자 바하누스도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너무 난폭하고,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거기에 제대로 몸을 지키지 못하고, 공격이 막혔을 때를 대비하지 못하는 동작이 많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모든 움직임은 공방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형제님의 움직임은 마치…… 음, 맹수나 몬스터처럼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이고 위험천만한 움직임입니다.”
현준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시도한 것들이 혹평을 받는 것에 대한 실망은 전혀 없었다. 그도 알고 있던 내용이고, 전투의 전문가인 전투 사제의 말에 반박할 정도로 속이 꽉 막힌 머저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 세눈박이 놀을 죽이면서 시도한 것들이라 아무래도 방어를 도외시하게 됐나 봅니다.”
“으음…!”
현준이 담담하게 인정하자 오히려 바하누스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렇다고 그 움직임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마치…… 으으으음…… 아! 예. 마치 많은 괴물을 죽이기 위한 검술처럼 느껴졌습니다.”
바하누스가 머리를 쥐어짜다가 말을 꺼냈다. 그렇다고 그것이 억지로 지어낸 말은 아니다. 현준이 보인 것들은 강력한 한 개체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불필요한 동작과 방어를 도외시한 무모한 움직임이지만, 제대로 된 무술을 익히지 못한 다수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거의 최적의 움직임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격이 막히면 무방비해지고, 무인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음, 조금 적용을 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상황에 따라 적의 허를 찌르는 비수처럼 사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으음,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군요.”
“하하하!”
현준이 눈썹을 모으며 하는 말에 바하누스가 크게 웃었다. 현준이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바하누스가 웃음을 띤 얼굴로 말했다.
“형제님!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신 겁니까?”
“예? 무엇을 말입니까?”
“하하! 형제님께서 새로운 검술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예? 검술을요?”
현준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
“검술이라기에는 조잡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바하누스가 웃음을 지우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고 한정된 상황에서만 쓸 수 있겠지만, 그것은 엄연한 검술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도 상황을 만들기만 한다면 제힘을 다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래도 한참 부족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검술을 만드는 것이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검술은 인간의 몸으로 보이는 극한의 예술이고, 그것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덜컥 만들어 버린 것이 이상한 일이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축적되어 온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분해한 뒤 재조립해서 다시 검토하고, 다시 부수고, 다시 쌓아 올리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검술이 만들어진다. 그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답답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하는 과정을 위해 일부 귀족가에서는 마스터라고 부르는 검술의 달인들이 한데 모여 밤낮으로 대가리가 깨지도록 가문의 검술을 분석하고 있다.
그것을 감히 한 명의 인간이 놀 따위를 죽이다가 만들어버린 것이다. 비록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신이 실수로 만든 듯한 이 터무니없는 천재의 손에서 그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엄청난 일을 하신 겁니다. 제 가슴이 다 두근거릴 정도군요.”
바하누스가 상기된 얼굴로 하는 말에 현준도 그제서야 제가 뭔가 대단한 것을 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딱히 실감은 가지 않았다. 너무 손쉽게 만들어 버린 검술이고, 그 스스로 보기에는 롱소드 1이나 안톤의 검술과 비교해서 너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석 중의 정석인 롱소드 1과 기사인 안톤의 검술에 비교하며 별것 아니라고 하다니, 바하누스가 들었으면 선량한 전투 사제인 그도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을 것이다. 하버드에 들어가지 못해 서울대에 들어가다니,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집단 린치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폭력 사태에 달려온 경찰도 일의 전말을 들으면 합법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럼 좀 더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현준의 말에 바하누스가 웃으며 창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롱소드를 다룰 줄은 몰라서… 조금 아쉽군요.”
바하누스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부무장으로 한손검을 쓰기는 하지만, 롱소드를 제대로 다룬 경험은 없다. 질레나이처럼 온갖 무기를 다루는 것이 이상한 일이고, 바하누스가 정상적인 것이다. 베흐비네의 사제들이 성서 공부에 열정적인 것처럼 카리오스의 사제들도 무기 다루는 것에 열정적이란 뜻이겠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현준은 다시 목검을 들고 바하누스에게 달려들었다.
전투 사제가 검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도와준다니,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버릴 수는 없다. 그는 앞으로 이틀은 더 이곳에 있어야 하고, 이제는 탄타레스가 사라져 의뢰를 할 수도 없다. 남은 이틀간은 검만 휘두를 생각이다. 바하누스가 붉은 숲 마을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최대한 이 기회를 활용하자.
다시 둘의 신형이 부딪치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 * *
바하누스와의 대련은 현준의 검술을 확실히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만든 검술에 국한되지 않고 검을 다루는 것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도 있었다.
“형제님은 그립을 잘 바꾸지는 않는군요?”
“그립 말입니까?”
바하누스의 말에 현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히려 바하누스가 당황했다.
“아니, 모르셨습니까? 검술에 가장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그립입니다.”
현준이 구매한 롱소드 1의 검술은 아주 기초적이고 정석적인 것이다. 그리고 안톤의 검술도 그립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동작들이었기 때문에 현준은 여태껏 정석적인 스탠다드 그립만 써왔었다.
기사인 안톤의 검술에서도 그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안톤이 철저히 숨겼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도 현준의 재능은 심상치 않았고, 손을 슬쩍 고쳐 쥐는 것만 봐도 그것에서 파생되어 나올 수 있는 동작들을 싹 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안톤은 현준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의 진짜 검술을 도둑맞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지금도 종종 하고 계시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