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2권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2권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2
Cadilet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2권
차례
Chapter 01. 성기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 2
Chapter 02. 수상한 소문의 F급 모험가
Chapter 03. 모험가 54인의 탄원서 - 1
상점 쓰는 이세계 전사 02권
Chapter 01. 성기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 2
현준은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질레나이를 찾아 양피지를 건넸다. 질레나이는 델리아나의 글을 읽고는 곧장 신성력을 터뜨렸다. 성기사의 힘보다는 확연하게 약한 힘이었지만 선명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십여 명의 사제들이 몰려들었다.
“델리아나 자매님이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시설의 아이들이 곧 도착할 겁니다. 아이들을 한곳에 모으고 전투를 준비해 주십시오.”
질레나이의 말이 끝나자 사제들은 곧장 흩어졌다. 질레나이가 현준에게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형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델리아나 님은 형제님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라 말씀하셨지만,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의뢰는 완료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현준은 쓰게 웃었다. 델리아나도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와서 발을 뺄 수는 없죠.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레나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굳게 고개를 끄덕인 뒤 급하게 발을 놀려 이동했다.
현준은 그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무기고였다.
먼저 왔던 다른 사제 네 명이 신속하게 무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질레나이도 사제복을 벗어 던지고 갑옷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무장이다. 관절같이 접히는 부위는 사슬 갑옷으로 막았지만, 몸통이나 팔다리는 모두 플레이트 아머로 든든하게 막았다. 그리고 어쩐지 은은한 빛이 나는 것 같다.
사제들은 서로의 갑옷을 착용하는 것을 도와 순식간에 갑옷을 갖춰 입고는 큼지막한 대형 방패와 무기까지 챙긴 뒤 한곳에 모였다.
“시설의 아이들이 도착하면 곧장 출발할 것입니다. 준 형제님, 지도를.”
현준이 지도를 건네자, 질레나이는 모두가 볼 수 있게 책상에 펼쳐 놓고 몇몇 표시들을 묶어서 짚었다.
“이곳들을 수색할 것입니다. 준 형제님의 추리대로라면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겁니다. 주변 건물들도 살펴야 할 겁니다.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확인해 주십시오. 두 명이 한 팀으로, 총 세 팀으로 나눠서 움직이겠습니다. 준 형제님은 저와 함께해주십시오.”
“형제님,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제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현준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그는 현준의 대답에 감동한 듯 보였지만, 내심 걱정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해 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외부인인 저한테 그렇게 막 주셔도 괜찮습니까?”
그 말에 사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함께 싸워주시는 형제님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그 말에 다른 사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너무 빛밖에 없어서 초강력 랜턴으로 고문이라도 받는 기분이다. 눈을 잘 뜰 수가 없고 뜨거움에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현준은 애써 고개를 끄덕이고 장비들을 살폈다.
부무장으로 팔뚝 길이만 한 검과 묵직한 단검을 하나씩 챙기고, 건틀릿에 맞는 뱀브레이스 한 쌍을 팔에 착용했다. 아쉽게도 다른 갑옷의 여유분은 현준이 이미 착용한 부분뿐이었다. 다리도 보호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팔을 보호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충분하다.
현준까지 무장을 마치자 사제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밖으로 나섰다.
밖은 아이들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그들이 무장을 하는 동안 다른 사제들이 아이들을 한곳에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무장한 사제들을 보고 감탄사를 질렀지만, 제법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그 모습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으려 하는 다부진 체격의 아이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굳은 얼굴에는 각오가 있었다.
“사제님,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그 말에 한 사제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그들을 따라가세요.”
아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지 입술을 깨물고 분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하지만 끝내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치지 마요.”
“네. 걱정 마세요.”
사제는 아이를 안아주고 돌려보냈다. 아이는 미련이 남는지 돌아봤지만, 사제들은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배웅했다.
아이가 돌아가자 사제들은 곧장 신전의 입구로 갔다. 카리오스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으로 완전히 무장한 전투 사제들이 나타나자 거리가 소란스러워졌다. 깜짝 놀란 아가씨 하나가 비명까지 질렀다.
신전이 무력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삽시간에 혼란이 번지며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집의 문을 닫고 빗장을 잠갔다. 창문까지 모두 닫아버렸다. 뛰어다니며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외치는 어머니도 있다.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현준은 퀘스트 때문에 까먹고 있던 일을 해결하고자 질레나이에게 말을 걸었다.
“사제님, 잠깐 괜찮습니까?”
“예. 말씀하세요.”
“전에 카리오스 님의 성기사를 뵌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다른 사제들까지 현준을 돌아봤다.
성기사를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사제인 그들도 성기사를 만난 적은 없다.
“그분께 작은 도움을 받았는데, 신의 빛이 저를 비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호오…….”
한 사제가 감탄을 흘렸다. 질레나이가 현준에게 다가왔다.
“잠시 괜찮습니까?”
“예.”
질레나이가 현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에 붉은빛이 어리더니 현준의 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현준은 그 이질적인 느낌에 움찔했지만 곧 안심했다. 따뜻한 힘이 몸 곳곳을 돌면서 힘을 불어넣고 긴장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머리로 부드럽게 흘러간 힘이 다시 질레나이의 손을 통해 빠져나가자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신성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
현준이 아쉬움에 소리를 내자 질레나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신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투구를 툭 쳤다. 그는 현준의 머리에 어른거리는 강렬한 힘의 편린을 느꼈다. 그것은 눈물이 날 정도로 무척이나 상냥하고 따뜻한 힘이었다.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께서 형제님을 지키고 계십니다.”
“지키고 계신다고요?”
“예. 단순히 힘을 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잘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현준은 내심 가호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에게 능력을 불어넣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레나이는 신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능력들은 가호로 인해 받은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걸로 알 수 있는 것은 교육과 성장의 여신은 그에게 생각보다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결코 쉽게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잠시 따뜻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멀리서 아이들이 보이자 다시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무장한 전투 사제가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끌고 있다. 뒤에는 이델리아인 듯한 작은 체구의 갑옷이 보인다.
현준은 이델리아의 갑옷을 유심히 살폈다. 다른 사제들의 갑옷과 달리 빛이 나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훨씬 두껍고 묵직한 갑옷이다. 풀 플레이트 아머다. 키가 작은데 저렇게 두툼한 갑옷을 입으니 옆으로 퍼져서 터무니없이 무거워 보인다. 거기에 방패도 전신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크고 허리춤의 검도 훨씬 넓고 두툼하다.
‘성기사의 갑옷과 흡사하다.’
사소한 디테일에 차이가 있고 붉은 케이프가 없지만, 확실히 그가 본 카리오스의 성기사와 비슷한 갑옷이다. 그녀는 정말 견습 성기사로 보일 정도였다.
그 무장을 보자 그녀의 검술이 조악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련은 검이 닿으면 끝이지만, 저런 갑옷을 입으면 그냥 웃으며 맞아줄 수 있다. 그녀의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망치로 머리를 후려쳐도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엄청난 힘으로 다 쳐부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기교를 살린 검술보다도 우직하게 돌파하는 것이 더 강력할 수도 있다.
아이들을 이끌고 전투 사제가 신전으로 들어가고, 이델리아만이 남아 신전 입구에 섰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질레나이를 끌어안았다.
“조심해요.”
“걱정 마세요.”
질레나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마주 안아줬다. 이델리아는 다른 전투 사제들도 안으며 말을 나눴다. 전투 사제들 모두 그녀를 딸이나 동생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제들과 인사를 마친 이델리아는 현준의 앞에 서더니 고개를 슬쩍 돌리고 작게 말했다.
“…다치지 마요.”
“끝이야? 난 안 안아줘?”
“끝입니다!”
그러고는 발을 쿵쿵 굴렀다. 바닥이 울릴 정도다. 그 모습에 사제들이 작게 웃었다.
현준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질레나이에게 말했다.
“출발하죠.”
“예.”
현준은 이델리아의 옆을 지나가며 그녀의 투구를 건틀릿으로 깡 두들기고 지나갔다.
“씨이…….”
투구 안에서 볼멘소리가 울리는 것을 뒤로하고 현준은 사제들과 함께 빠르게 움직였다. 빈민가로 들어서자마자 사제들은 서로의 안전을 빌며 빠르게 흩어졌다.
현준은 질레나이와 함께 구불구불하고 악취 나는 빈민가 골목을 정신없이 달렸다. 사제들 모두 마음이 급해서, 한 명이 냅다 달리기 시작하자 다른 사제들 모두 따라서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신전의 견습 성기사와 제법 친해지셨나 보군요.”
“너무 자만하길래 혼내줬습니다. 질레나이 사제님께서 가르치셨죠?”
질레나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예. 미숙하다고 말했습니다만, 사실… 뭐, 엉망이었죠?”
“예.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배운 티가 나더군요. 나중에는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행이군요. 저는 아무래도 그 아이에게 엄하게 대할 수가 없어서…….”
“사제님께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 애를 자극하려고 조금 험담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이델리아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겁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를 표해야죠.”
골목에 나뒹구는 쓰레기와 사람들을 피해 달리며 현준이 말했다.
“그나저나 전 그 애가 따라가겠다고 우길 줄 알았습니다.”
“이델리아는 조금… 특별한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걸 잘 알고 있죠.”
“특별하다뇨?”
“죄송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질레나이는 여태껏 보여준 적 없는 단호함으로 거절했다. 현준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여기입니다.”
질레나이가 돌연 멈추고는 말했다. 광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넓은 공간이다. 어두운 골목도 아니고 이런 탁 트인 공간의 근처에서 납치가 일어났다는 말인가?
“지하로 연결될 만한 공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건물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들은 주변 건물들의 주변을 살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문을 두드려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지하실이 있습니다만, 다른 통로는 없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한 남성이 선뜻 지하실로 그들을 안내해서 봤지만 다른 흔적은 없고 그저 지저분한 쓰레기와 먼지가 날릴 뿐이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사제인 질레나이를 서슴없이 집 안으로 들여보내 줬지만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질레나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지하실을 확인하시는 겁니까?”
“최근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전은 지하를 통해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수색 중입니다.”
그 말에 노인이 목소리를 낮추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거의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수도를 확인하세요.”
그러고는 그들을 꾹꾹 밀어서 내쫓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현준과 질레나이는 서로의 얼굴을 봤다.
“하수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현대에서는 하수도를 볼 일이 거의 없다. 그저 길가에 쇠창살로 막힌, 사람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작은 구멍을 보는 것이 전부다. 원형으로 뚫린 하수구는 너무 일상적이라 이제는 보고도 그것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다.
거기에 비마른과 다른 도시에는 하수도가 없었다. 때문에 하수도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질레나이도 초조함과 걱정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기에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다.
“다른 분들도 하수도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만.”
그들은 주변을 수색해 금방 하수도 입구를 찾았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의 계단 아래에 철창으로 막힌 입구가 있었다. 안에서는 물소리와 코가 뒤틀리는 악취가 쏟아져 나왔다. 질레나이는 바닥과 철창을 꼼꼼히 확인했다.
“최근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군요. 맞는 것 같습니다.”
질레나이는 습기로 녹이 잔뜩 슨 철창에서 떨어진 조각들과, 철창 아래 흙먼지가 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현준은 자물쇠를 살폈다. 제법 깔끔하다.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자물쇠 안쪽에 녹이 생겨서 열쇠도 들어가지 않고, 기껏 열쇠로 열어도 쇠가 맞물려 떨어지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 자물쇠만은 홀로 말끔하다.
“확실하군요.”
“잠시.”
질레나이는 자물쇠를 살피던 현준을 물리고 허리춤에서 메이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의 몸에 희미한 붉은 빛이 도는 순간 풀스윙으로 냅다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