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끝의 탑스타 09권
내 손끝의 탑스타 09권
내 손끝의 탑스타
09
박굘
내 손끝의 탑스타 09권
차례
Chapter 01. 그 아들에 그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2
Chapter 02. Rock star never die
Chapter 03. 수확의 계절
내 손끝의 탑스타 09권
Chapter 01. 그 아들에 그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2
“으아악!”
“꺄아악!”
현우와 여자아이의 비명이 묘한 이중주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다 서서히 비명 소리가 잦아들었다. 현우의 시야를 메우고 있던 황금색 후광도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이건 또 뭔데?’
정신을 차린 현우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현우의 시선이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넘어져 있는 여자아이에게로 향했다. 여자아이도 눈물을 찔끔거리며 현우를 쳐다보았다.
순간 현우의 눈썹이 휘었다.
‘……!’
어린아이였는데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특히 커다란 눈과 밝은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무, 무슨 일이니?! 응?”
“오빠?”
어머니 최정희가 국자까지 들고 거실로 뛰어왔다. 송지유는 현우와 정체불명의 여자아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현우야?”
“엄마, 별일 아니에요. 지유야, 잠깐 놀란 것뿐이야.”
“오빠, 정말 괜찮아요?”
송지유가 걱정 어린 얼굴을 했다. 최정희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정말이에요, 엄마.”
현우는 일단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그런 다음에는 여자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안. 갑자기 소리 질러서 많이 놀랐지?”
“……아저씨가 사장님이랑 사모님 아들이에요?”
“어?”
현우가 최정희를 쳐다보았다. 최정희가 여자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우야, 얼마 전에 아버지 회사에 새 식구가 생겼어. 사정이 있어서 어제부터 아이를 봐주기로 했단다.”
“그랬던 거였어요?”
대충 전후 사정이 이해되었다. 현우가 어렸을 적에도 소속 트로트 가수들의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이름이 뭐야?”
“신지혜예요. 아저씨는요?”
“아저씨 이름은 김현우.”
“네?”
신지혜가 깜짝 놀랐다.
“아저씨 이름도 현우예요?”
“응, 왜?”
“우리 아빠랑 이름이 똑같아서요.”
“아, 그래? 신기하네. 지혜라고 했나? 지혜는 몇 학년이야?”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11살.”
“그렇구나. 한창 좋을 때네.”
현우가 빙그레 웃어주었다. 최정희의 품에 안겨 있던 신지혜의 시선이 이번에는 송지유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신지혜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송지유? 송지유 언니?”
“응, 안녕?”
송지유가 살짝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신지혜가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뒤늦게 현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김현우 대표님이죠?”
“오, 나도 알고 있어? 똘똘한데?”
“우와! 우와!”
조숙한 아이였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신지혜가 현우와 송지유를 번갈아 살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더니 살짝 표정이 변했다.
“사모님, 저도 도와드릴게요.”
“지혜는 여기 앉아 있어. 아줌마와 지유 언니가 할 테니까.”
“아니요,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도와드릴게요.”
“어머, 우리 지혜는 예쁘고 생각도 깊네?”
최정희가 신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도 도울게요, 엄마.”
현우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현우는 신지혜를 관찰하고 있었다. 송지유와 이솔 이후로 오랜만에 찾아온 황금색 후광이었다. 그리고 신지혜 역시 현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신지혜의 시선이 현우의 젓가락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식사가 시작되고 몇 분 되지 않아 신지혜가 갑자기 국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송지유의 그릇에다 꽃게탕을 조금 퍼주었다.
“고마워.”
“아니에요, 언니.”
“나는 안 주나? 역시 지유라 이건가?”
“대표님은요, 고기를 더 좋아하시죠?”
“응, 대체로 그런 편이지. 꽃게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지유가 좋아하지.”
“저 이제 다 알아요.”
그렇게 말하더니 삼겹살을 집어 상추쌈까지 싸서 현우의 앞 접시에다가 놓았다.
“쌈 예쁘게 싸네. 어디서 배웠어?”
“아빠한테요, 헤헤.”
현우는 정갈한 상추쌈을 한입에 집어 먹었다. 그사이 또 신지혜는 열심히 상추쌈을 싸고 있었다. 현우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꼬마가 꼬마 같지가 않아. 영악한 아이구나.’
자기 딴에는 나름 생각이 있겠지만 아직 아이는 아이였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현우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앗! 물 없다! 제가 가져올게요!”
신지혜가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지유야. 어때?”
“똑똑한 아이 같아요. 귀여워요.”
“그리고?”
“네?”
반문하던 송지유가 현우의 속내를 파악하고는 풋 웃었다.
“저 아이가 탐나서 그랬던 거였어요?”
“응, 근데 왜 웃어?”
“그동안 오빠가 기획사 대표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나 봐요.”
“그건 너무하잖아?”
현우가 피식 웃었다.
연예 기획사의 근간이자 미래는 연습생들이었다. 기획사가 체계적일수록, 규모가 클수록 연습생 시스템이 잘되어 있었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S&H가 그랬다. 엘시가 탈퇴하고 걸즈파워의 인기가 예전만 못했지만, 또 제나 같은 괴물 신인을 세상에 공개했다. 김정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걸즈파워 2기 멤버로는 제나같이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수두룩할 게 분명했다.
“저 아이도 우리 회사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부모님 동의만 있으면 연습생으로 뽑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재능도 있어 보이고. 슬슬 연습생들을 모집해 볼 생각이었거든.”
차마 황금색 후광을 봤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돌려서 말한 거였지, 현우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아직 11살로 어리긴 했지만 황금색 후광의 꼬마 아이였다.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 제격이었다.
“아이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부모님 의사가 제일 중요한 거 알죠?”
“당연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우는 신지혜라는 아이를 두고 벌써 미래까지 계획을 하고 있었다.
‘배우? 아이돌? 뭐가 좋을까?’
그사이 신지혜가 물통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현우와 송지유, 최정희의 컵으로 정성스레 물을 따라주었다.
“착하네. 요즘 초등학교 4학년은 다 이런가?”
“그건 아니에요. 제가 학교에서도 반장이고 선생님들한테도 칭찬 많이 받거든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깨알 같은 자기 PR까지, 현우는 그저 흐뭇했다. 송지유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또 연예인이라는 직업에도 흥미가 있는 것 같았다.
“지혜도 뭐 좀 먹어야지. 계속 챙겨주니까 미안한데?”
“저는 이게 좋아요.”
씩씩하기까지 했다. 현우는 여러모로 신지혜라는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 * *
“…….”
초록색 봉고차의 맨 뒤 좌석에 앉아 신현우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겹치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신현우의 눈동자로 수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현우 씨, 있잖아. 내가 계 모임에서 들었는데 소아 백혈병이 그렇게 무서운 병은 아니라고 하네? 그러니까 힘내. 응?”
“감사합니다, 선배님.”
혼자만의 침묵을 깨고 신현우가 입을 열었다.
“에이~, 선배님은 무슨! 그래도 기분은 좋네? 호호!”
50살이 훌쩍 넘은 아줌마 트로트 가수가 신현우의 부드러운 미소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었다. 신현우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수에 젖은 그 수려한 모습에 아줌마 트로트 가수들이 넋을 잃었다.
“…….”
김형식 사장과 술잔을 기울인 이후로 신현우는 많이 변해 있었다. 짧아진 머리카락만큼이나 그의 거칠었던 성격도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드르륵.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봉고차의 문이 열렸다. 가장 늦게 내린 신현우가 호박 나이트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며칠 전 깽판 아닌 깽판을 쳤던 그곳이었다. 누군가가 신현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남훈이었다.
“긴장할 거 없어. 맥주병을 맞은 사람도 왔는데 자네가 신경 쓸 게 뭐가 있나?”
“어깨는 괜찮으십니까?”
“크게 다친 건 아니었잖아. 깁스도 풀었겠다, 마이크는 왼손으로 들면 되지.”
그때였다. 험악한 인상을 한 실장이 지하 계단을 통해 올라왔다. 그리고 신현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신현우가 먼저 사과를 건넸다. 예전의 신현우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머리가 왜 그러쇼? 빌어먹을. 천하의 신현우가 머리카락을 다 잘랐네.”
거친 언사였지만 그 속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신현우도 실장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추장스러워서 그냥 잘랐습니다.”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상관은 없는데, 아쉽네. 진짜 팬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 이따가 그 노래나 부르쇼. 내 특별히 세션들한테 말해 놨으니까.”
“그러죠.”
신현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데뷔곡이자 대표곡 ‘Sad Cry’는 아내가 떠나고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팬을 위해서라면 한 번 정도는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지하로 내려가자 다시 밤의 세계가 펼쳐졌다.
‘…….’
처음 밤무대를 봤을 때는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만 하던 공간이 이제는 차라리 편했다. 일부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이곳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리고 딸아이들을 위한 무대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대기실로 들어가자 무용수들이 또 신현우를 쳐다보았다. 저번에 무례했던 언사가 떠올라 신현우는 입이 썼다. 하지만 어색함에 차마 사과할 수도 없었다. 신현우는 그저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신현우는 딸들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신현우가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무용수들이 또 신현우의 앞으로 몰려와 있었다. 신현우의 눈길이 향하자 무용수들이 움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