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히어로 10권
도핑 히어로 10권
도핑 히어로
10
소락
도핑 히어로 10권
차례
Chapter 01. 단숨에 오르다 - 2
Chapter 02. 광쌍
Chapter 03. 이 남자가 싸우는 법
Chapter 04. 능력지상주의
Chapter 05. 복수는 나의 힘
도핑 히어로 10권
Chapter 01. 단숨에 오르다 - 2
“이 와중에 작대기를 꽂아?”
강호는 광승의 느닷없는 행동에 기가 찼다.
놈이 팔뚝에 주사한 건 도핑용 약물이 아닌 건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사기였으니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하다. 작대기는 마약 주사기의 은어였고.
미친놈답게 사방이 적인 상황에 마약을 투여한 거다.
“약쟁이에게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말이지. 땡중! 부처가 그리 가르치더나?”
강호는 일부로 목청을 키워 놈을 도발했다. 그러나 광승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얼씨구? 저거 지금 부르르 떠는 거지? 그냥 미친 중이 아니라 미친 변태 중이었어?
하도 어이가 없는 짓거리라 별별 꼴을 다 보아온 나조차 지금 상황이 헷갈린다. 단순히 금단현상을 이기지 못해 마약을 쓴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네.
강호가 어이없어하는 건 단순히 광승이 약쟁이라서가 아니다.
제아무리 약에 절어있다지만, 괴물과 권능자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까지 마약을 투여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반면 광승은 동공이 탁 풀린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약에 취해 환각 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광승이라더니.”
서수만은 하도 어이가 없어 공격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못 먹어도 고!’
만약 홀로 광승을 처치한다면 길드 내에서의 위상도 부쩍 올라갈 것이다. 욕심이 불쑥 머릴 들자, 서수만은 전략을 수정했다.
여태 최대 거리를 유지한 채 광승을 견제하기만 했다. 그러나 거리가 멀수록 권능의 위력은 당연히 약해진다.
서수만이 작정하고 광승과 거리를 좁히며 권능을 끌어올렸다.
‘가시덤불!’
손가락만 한 뾰족한 가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지가 땅거죽을 뚫고 뻗었다. 그리고 촉수처럼 꿈틀꿈틀 일어나더니 대가리를 빳빳이 쳐들었다.
“가라!”
서수만이 팔을 휘두르자, 가시나무가 채찍처럼 가지를 휘둘러 광승을 때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강호가 버럭 소리쳤다.
“멍청아! 피해!”
“응?”
과거 남미의 마야부족은 영적 체험을 위해 환각성 버섯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강호는 그걸 떠올리자, 광승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의심했다.
아니나다를까 광승이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천수관음의 형상에서 뿜어내는 금광(金光)이 진해지며 주변 어둠을 단숨에 밀어냈다.
서수만도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쯤은 눈치챘다.
그러나 이미 내친걸음. 도중에 공격을 취소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
그는 가시나무를 조종하면서도 다른 손으로 새로운 나무를 불러냈다.
‘등갑!’
가시 몽둥이가 광승의 머리를 노리고 뚝! 떨어졌다. 그러자 천수관음이 합장을 한 뒤 그대로 팔을 펼쳤다.
금광이 광승을 중심으로 넘실넘실 퍼져나갔다. 그러자 금광에 닿은 가시나무는 순식간에 시들더니 말라비틀어져 땅에 축 늘어져 버렸다.
서수만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며 불러낸 등나무를 아치형 모양으로 이리저리 엮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천수관음의 손바닥이 등나무를 두들기자, 산산이 터져나갔다.
힘의 여파만으로 서수만은 피를 토하며 뒤로 멀리 날아갔다.
“운 좋은 놈.”
강호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괜히 한 말이 아니다.
사방에 몰려든 죽병이 광승의 공격을 1차로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서수만은 저승 구경을 했을 것이다. 금광에 노출된 죽병은 일제히 터져나가며 잔해만 남았다. 실로 엄청난 위력!
강호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려 2층 통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금광이 한차례 폭발한 뒤 천수관음의 형상은 다시 흐릿해졌다.
광승의 시선은 여전히 고개를 들면 보이는 무수히 많은 부처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자대비한 부처가 그를 굽어살피고 있었다.
“자비로서 널리 중생을 구제하면 공중에서 은밀히 여래를 보리라.”
광승은 또다시 계시를 받았다는 감격에 차 눈물을 흘렸다.
“소승이 저 마구니를 처단하고 사바세계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반드시 구원하겠나이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이 빠르게 멀어지는 강호의 등에 닿아있었다.
* * *
강호와 서수만이 광승과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김신은 약탈자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썅! 원거리 공격을 해! 불로 지져!”
근처에만 가도 꽁꽁 얼어붙은 동태 신세라, 약탈자들은 욕설을 뱉으며 냉기를 피해 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전원 권능자들이다.
초반 몇 명이 얼어붙자, 사방에 흩어져 김신을 공격하는 한편 동료를 불러들였다.
“소운, 중연 너흰 포위당하기 전에 침선장님이 오는 방향으로 퇴각해.”
“예? 형은요?”
소운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그는 파티의 유일한 치유사다. 만약 김신이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치료한단 말인가?
“나 혼자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너희까지 지키긴 힘들어.”
최중연도 서포터였기에 난전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소운과 최중연이 파티에서 김신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가장 중요한 파티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김신은 일단 둘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굳이 피할 필요가 있을까?”
최중연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묻자, 김신은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약탈자가 이쪽으로 몰려들면 유적 변형이 일어난다. 그 전에 침선장님과 합류해야 해.”
소운과 최중연은 이해를 못 한 얼굴. 그러나 싸우는 와중에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빨리!”
“아, 알았어요.”
소운이 허둥거리며 최중연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둘이 멀어지자, 김신은 싸늘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약탈자를 바라보았다.
“이강호 저 미친놈과 엮인 걸 원망해라.”
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서리가 맺히더니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냉기 폭풍이 몰아쳤다.
* * *
“저기 소운이랑 중연이 아닙니까?”
도천 법사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면서도 용케 멀리서 달려오는 이들을 알아보았다.
“맞습니다. 김신 시주가 안 보이는 게 약탈자와 싸움이 벌어졌나 봅니다. 일단 도와야 할까요?”
대우가 주변을 살피며 묻자, 구정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일단 광승을 찾아야 해요. 그쪽이 더 급합니다.”
‘서수만의 대답이 없는 걸 보면 광승 때문일 거야. 유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제압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경험 많은 구정아라도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서두르죠.”
구정아의 말에 도천 법사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나 상황이 다급하게 흘러가고 있기에 다들 구정아의 뒤를 따라 달려야 했다.
그리고 통로에 거의 도달할 무렵, 대우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허어! 유적 변화가 시작될 조짐입니다.”
사방에 악다구니 쓰는 소리, 비명, 폭음이 뒤섞여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은 은신하고 있던 약탈자의 기습을 받아야 했다.
“제가 길을 열지요.”
구정아는 바늘 한 줌을 전방을 향해 뿌렸다.
피피핏!
꽁무니에 가느다란 실을 매단 바늘들이 약탈자들을 단숨에 꿰매 땅에 고정했다.
“으악!”
“젠장! 이것 좀 누가 잘라!”
바늘이 살갗만 통과했지만, 전신을 관통당해 조금만 움직여도 피부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통증이 밀려들었다.
“침선장님. 김신 혼자서 약탈자들을 막고 있어요. 그리고 통로 쪽으로 약탈자들이 죄다 몰려드는 통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2층에 오르려고 주변에서 대기하던 공략자들까지 어쩔 수 없이 전투에 휘말렸어요.”
최중연이 태블릿을 들어 보이며 보고하자, 구정아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일단 신이에게 통로 쪽으로 퇴각하라고 전해. 가자.”
일행은 달려드는 약탈자를 처리하며 통로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이미 변형이 시작되었네요.”
약탈자들과 공략자가 흘린 피를 머금은 곳에서 붉은빛이 맴도는 대나무가 빠르게 자라났다. 그리고 수 미터 크기로 자라난 대나무가 쫙! 갈라지며 죽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수백, 아니 천이 넘어가는 죽병들이 인간들을 노리고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외곽에선 약탈자들이 날뛰었다.
“이강호는 어디 있죠?”
구정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강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최중연이 태블릿을 조작해 지도를 띄워 유심히 살피더니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승천문에 거의 다 갔어요.”
“허! 저 요망한 놈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도천 법사는 기가 막혀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수만 저놈은 또 왜 저래? 여기가 무슨 놀이동산인 줄 알아?”
나무의 탄성을 이용해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는 서수만을 보자, 헛웃음만 났다.
“광승을 피해 다니는 거예요. 아무래도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인 것 같군요.”
광승은 엄청난 수의 죽병에 포위당했는데도 거침없이 서수만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죽병이 계속 쏟아져 나오자, 도천 법사는 다급한 얼굴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1층에 있는 공략자들까지 위험합니다.”
한 번 나온 죽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이야 통로 주변에 몰려 있지만, 일정 수가 넘으면 사방으로 흩어져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다.
공략자들이 유적 변형을 피하려 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 늘 일정 인원을 유지하며 죽병의 숫자를 최소화했는데, 이강호의 분탕질 때문에 엉망이 됐다.
그러나 일행의 전력으로 몰려든 약탈자를 단숨에 정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광승부터 제압해요. 조일동. 전투에 끼어들지 말고 지켜보다 지시에 따르세요.”
“알겠습니다.”
구정아는 왠지 지금 이강호가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 * *
강호는 용갑의 비늘을 원래대로 돌린 뒤 갑옷 소매 부분을 툭 때렸다. 그러자 창 한 자루가 튕기듯 튀어나왔다.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그러게 왜 미친놈을 건드려서는.”
마치 방방이를 탄 것처럼 이리저리 날고 있는 서수만을 보며 강호는 킬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