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히어로 07권
도핑 히어로 07권
도핑 히어로
07
소락
도핑 히어로 07권
차례
Chapter 01. 천살갑 - 2
Chapter 02.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Chapter 03. 삼두룡
Chapter 04. 이강호를 잡아라
Chapter 05. 3번째 진화
Chapter 06. 불가살(不可殺)
Chapter 07. 허락할 수 없다
Chapter 08. 신선놀음 - 1
도핑 히어로 07권
Chapter 01. 천살갑 - 2
새하얀 뇌전이 천살갑의 은빛 비늘을 때리며 사방이 새하얗게 변했다.
마침내 죽음의 회전이 드디어 멈췄다.
“축지법으로 문워크도 되는구만. 나쁘지 않은걸?”
강호는 키득대며 천살갑이 들으라고 목청을 키웠다.
“내가 말한 대로 짜릿하지? 근데 형이 항상 1+1을 선호하거든.”
강호는 다이얼을 돌린 뒤 힘차게 비격진천뢰를 던졌다.
우르르르콰콰콰쾅!!
뇌전이 다 걷히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뇌전이 그 위를 뒤덮자, 천살갑은 몸을 격렬히 떨며 괴로워했다. 마치 천벌이 내린 듯한 장엄함에 멀리 있는 헌터들조차 숨을 죽여야 했다.
천살갑은 꼿꼿이 세운 비늘을 눕히지도 못한 채 꼼짝도 못 했다. 그저 움찔움찔하며 아직 살아있음을 짐작게 했다.
뇌전이 가시기가 무섭게 강호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은설!”
멀쩡한 건물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은설은 낙하하며 그대로 천살갑의 비늘 사이에 검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검을 비틀어 뽑자, 검은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미리 봐둔 꼬리 부위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검을 휘둘러 기어이 피를 보았다.
강호는 천살갑 주변을 돌며 끝에 추가 달린 와이어를 던져댔다.
핑핑핑핑핑!
비늘 사이에 와이어가 이리저리 얽히기가 무섭게 강호는 재차 외쳤다.
“소정방!”
“우오오오오오!”
숨어있던 소정방이 뛰어와 천살갑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박았다.
철썩!
천살갑의 날카로운 비늘이 그의 두툼한 뱃살을 파고들었다.
“곧 깨어난다. 절대 떨어지지 말고 버텨!!”
소정방의 역할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찹쌀떡처럼 찰싹 달라붙어 놈의 회전을 막는 것.
움직임이 둔한 소정방에게 안성맞춤 임무지만, 그들 중 가장 위험한 역할이다.
천살갑의 비늘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강호는 빠르게 와이어를 미리 땅속 깊이 박아둔 쇠기둥에 고정했다.
“온다!!”
강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대한 동체가 들썩였다. 생각 같아서는 비격진천뢰를 두어 개 더 먹여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냥의 궁극적 목적은 이익이다. 그리고 강호는 그걸 잊지 않았다.
번쩍!
천살갑의 눈이 뜨였다. 뇌전에 눈알이 터져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익!!
가슴이 철렁! 할 만큼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충격파가 터졌다.
그러나 은설은 헬멧을 쓰고 있었고, 소정방은 아예 살에 머리를 파묻은 상태다.
그리고 강호 곁에는 4명의 분신체가 천살갑을 비웃고 있었다.
“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시끄러우면 귓구멍에 휴지라도 쑤셔 박아.”
“니들이 더 시끄러워.”
“뭐래 병신이.”
“어라? 내가 병신이면 너도 병신?”
4명의 분신체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그러나 웃는 얼굴과 달리 눈은 날카롭게 천살갑의 약점을 살피고 있었다.
“간만에 힘 좀 쓰자.”
강호의 말에 분신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좌우로 나뉘어 천살갑의 꼬리 부분의 비늘을 잡고 용을 썼다.
놈의 진짜 약점.
그건 바로 항문이다.
더럽긴 하지만, 그곳을 공략할 수만 있으면 온전한 비늘을 통째로 얻을 수 있다.
“끄~응!!”
“하아아아압!!”
“으랏차차차!!”
“애새끼들 양기가 죄다 주둥이로 몰렸나.”
좌우로 두 명씩 나뉜 분신체의 팔뚝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동그랗게 말린 천살갑의 꼬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4명으로는 힘들겠는데? 분신을 더 늘려야 하나?
강호는 갈등했다. 그러나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분신을 늘릴수록 가하는 힘은 더 커지겠지만, 반대로 감당해야 할 것들 또한 그만큼 늘어난다.
게다가 현재 ‘무두귀’ 도핑이다. 분신체를 운용하자, 빠져나가는 생기가 급격히 불어나고 있었다.
“젠장 혓바닥이다! 다들 조심해!”
강호 하나의 외침에 4명의 강호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말린 몸뚱이에서 머리만 불쑥 내민 천살갑은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둘러댔다. 그러면서 꼿꼿이 세웠던 비늘을 일제히 눕혔다.
그러나 놈의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소정방에 박힌 비늘은 살에 파묻혀 완전히 눕혀지지 않은 데다, 칭칭 감긴 와이어 때문에 비늘을 완전히 닫을 수 없었다.
놈도 그 사실을 알아채고 혓바닥으로 소정방을 공격했다.
“막아!”
“여긴 나 혼자 막는다. 너흰 빨리 꼬리나 잡아 빼.”
“다섯으로도 안 됐는데, 넷으로 하라고? 말이야 방귀야?”
“미친 새끼들.”
“분신인 우리가 미쳤으면 너도 미친 거잖아.”
“나 미친 거 오늘 내일도 아니고 새삼스레 알려줄 필요 없다.
분신들은 낄낄거리며 재차 꼬리 쪽에 달라붙어 힘을 쓰기 시작했다. 거기에 은설까지 가세해 검으로 비늘 틈새를 찔러대며 천살갑을 자극했다.
강호는 놈의 옆구리를 따라 달리며 철퇴를 들었다.
계룡산에서 얻었던 은입사 귀면문 철퇴다.
처음엔 신통을 끄집어낼 방도를 몰라 한동안 방치하다가, 세종시를 떠나기 전 무려 정밀 감정까지 받아 놓았다.
실전에서 쓰는 것은 지금이 처음.
텅! 텅! 텅!
철퇴가 시뻘건 혓바닥을 쳐낼 때마다 점액질이 튀겼다. 그러나 강호는 점액질을 피하지 않고 소정방을 노리는 혓바닥만 집요하게 가로막았다.
점액질이 살갗을 지글지글 녹이자, 검은 실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마수와 악귀의 싸움 같았다.
상처가 재생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호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못 구르게 막아야 해!”
이제야 감전된 몸이 속박에서 벗어났는지, 천살갑의 몸부림이 점차 격렬해졌다.
“이러다 와이어 끊어지게 생겼어!”
분신체들의 외침에 강호는 아껴두었던 귀면문 철퇴의 신통을 발동시키려 집중했다. 몸의 기운이 철퇴에 빨려 들어가며 은입사 무늬에서 은은한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나와라 뚝닥!”
귀면문 철퇴로 땅을 때리며 주문을 외치자, 땅속에서 커다란 문이 불쑥 솟았다. 강호는 천살갑의 비늘을 박차고 날아올라 반대편으로 착지해 재차 귀면문을 소환했다.
“크크크크! 씨바 나와라 뚝딱이래.”
“하하, 저 새낀 부끄러움도 없나.”
분신체들이 낄낄대자, 강호는 순간 울컥해 분신체를 회수할 뻔했다.
지금껏 철퇴를 쓰지 않은 이유도 솔직히 쪽 팔려서였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무릅쓴 보람이 있었다.
거대한 문에 새겨진 무수히 많은 귀신 얼굴들이 아우성치며 천살갑의 옆구리를 잡아채자, 놈의 몸부림이 덜컥 멈췄다.
“얼마 못 버틴다!”
“아, 더럽게 보채네. 그럴 거면 좀 화끈한 걸 빨던가. 무두귀가 뭐야 무두귀가.”
분신술에 이런 단점이 있을 줄 몰랐다. 설마 그간 억눌렸던 자아가 튀어나오는 건가? 이러다 자아 분열증 걸리게 생겼군.
강호는 피식거리며 은설을 불렀다.
“설! 네가 혓바닥을 좀 맡아!”
은설이 바람처럼 달려와 검으로 혓바닥을 견제했다. 잠시 여유가 생긴 강호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천살갑을 올라타 머리 쪽으로 달렸다.
“어디서 더럽게 혓바닥을 날름거려? 그냥 얌전히 뒈져주면 안 되겠니?”
강호는 철퇴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놈이 머리를 흔들어 떼어내려 했지만, 강호는 비늘을 단단히 잡고 철퇴를 내리쳤다.
한 번 때릴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그러자 천살갑은 머리가 빙빙 돌아 혓바닥을 마음대로 놀리기 힘들어졌다.
그동안 분신체들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서로 힘을 지렛대처럼 철근을 쑤셔 박아 돌돌 말린 꼬리를 반쯤 끄집어냈다.
천살갑이 더는 못 버티겠는지, 꼬리를 쭉 뻗으며 땅을 때렸다.
터―엉!
“조심!”
반동으로 와이어가 끊어지며 놈이 벌렁 몸을 뒤집었다. 덕분에 귀면문까지 탈출했으니 천살갑으로서는 도박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옆구리에 달라붙은 소정방 때문에 놈은 몸을 쉽게 굴리지 못했다.
어느새 분신체들이 꼬리에 와이어를 칭칭 감고 사방에 매달리자, 몸을 완전히 말지 못해 배가 훤히 드러났다.
은설이 날아올라 검으로 천살갑의 배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익!!
“썅! 옆구르기다!”
은설은 어쩔 수 없이 뛰어내렸고 강호와 분신체들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놈을 와이어에 묶어두려 용을 썼다.
그때 멀리서 구경만 하던 헌터 수십 명이 달려들었다.
“도망가라니까, 죽고 싶어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구만.”
강호는 헛웃음을 삼켰다.
천살갑의 치명적인 공격이 아직 하나 남았다.
헌터들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달려온 것이다. 선두에는 강호에게 대들었던 헌터가 있었다.
헌터들은 강호가 이리저리 던져둔 와이어를 붙잡고 늘어졌다.
강호는 옆에서 함께 와이어를 당기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