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히어로 05권
도핑 히어로 05권
도핑 히어로
05
소락
도핑 히어로 05권
차례
Chapter 01. 삼성의 가호
Chapter 02. 대운(大運)은 무슨
Chapter 03. 세종특별시
Chapter 04. 봉이 이강호
Chapter 0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Chapter 06. 합격
Chapter 07. 흑백 거사의 의뢰
Chapter 08. 자격 증명
Chapter 09. 사인참사검
Chapter 10. 재난 경보 시스템
Chapter 11. 한판 붙자
Chapter 12. 녹두병
Chapter 13. 동상이몽 - 1
도핑 히어로 05권
Chapter 01. 삼성의 가호
은입사 귀면문 철퇴.
조선 시대의 철퇴로 천지개벽 이전 대한민국 보물 제1444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아직 제대로 각성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각성하게 되면 두 개의 귀면문을 소환할 수 있는 강력한 보물급 유물이었다.
홍희명과 만난 뒤 내내 저기압이던 강호의 기분이 180도 달라졌다. 아마 유은설만 없었더라면 어깨춤을 추며 깨방정을 떨었을 것이다.
“어디 삼은각 구경이나 할까? 아차 그전에 설! 저기 뒤편에서 슈트를 갈아입는 게 어때?”
은설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빠른 걸음으로 나무 뒤편으로 향했다. 그녀 또한 자신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 다만 타인과는 전혀 다른 향기를 느낀다는 게 그녀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강호는 부끄러워하는 은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삼은각에 들어가자, 삼은을 기리는 위패가 제단 위에 놓여 있었다.
“선죽교는 아직 유적화가 안 일어난 건가?”
북한 지역을 안 가본 것은 아니다. 천지개벽 이후 국경선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되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북쪽으로 가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다.
그렇다고 남쪽의 공략자들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일은 드물었다. 공략해야 할 유적이 사방에 넘쳐나는데 굳이 낯선 땅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무렴 어때. 내 손에 철퇴가 들어왔다는 게 중요한 거지. 흐흐. 그런데 늑돌이 넌 웬일로 조용해? 창포검을 얻었을 땐 못마땅한 티를 팍팍 냈잖아?”
― 그 철퇴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래? 하긴 도깨비가 저승과 관련이 있진 않으니.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각성시켜야 하나? 혹시 신통이 깃든 물건을 각성시키는 방법 아는 거 있어?”
― 모른다. 약해 빠진 존재일수록 어딘가에 의존하려 들지.
“어련하시겠어.”
강호는 위패를 건드리지 않고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별다른 함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손을 뻗었다.
푸스스.
손에 닿기 직전, 위패는 가루가 되어 바람결에 흩날려 사라졌다.
강호는 헛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리다, 어느새 슈트를 갈아입고 온 은설과 마주쳤다.
“없어질 거면 빨리 없어지던가.”
그는 괜히 민망해 위패 탓을 했다. 은설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까 약효가 완전히 사라졌지?”
“네.”
“아마 땀과 함께 배출된 게 아닌가 싶은데…….”
“네.”
아니 얘는 나랑 지금 내외하는 건가? 어째 대답이 죄다 단답형이야?
물론 강호가 은설과 친해지고 싶어 자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 말만 하고 해줘야 할 역할만 수행해준다면 100% 만족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상세한 대답이 필요할 경우까지 말을 아끼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혹시 부작용은? 어디가 간지럽다거나 통증이 있다거나, 혹은 심장이 빨리 뛴다든가?”
“그런 건 없는데…….”
은설은 머뭇머뭇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말해주는 게 좋아. 사람 몸이라는 게 생각보다 예민하거든.”
“……답답해요.”
“답답?”
“뭔가 가로막힌 느낌이 들었어요.”
“그 막혀 있던 게 한 번에 터져 나왔다는 건가?”
“네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은설의 반응에 강호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너 말할 줄 알았어?”
갑자기 늑돌이가 대화에 끼어들자, 강호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필요하다면.”
“허!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왜 매번 기분 나쁘게 남의 머릿속에서 쫑알거려?”
늑돌이는 강호의 말을 무시한 채 제 할 말만 했다.
“능력을 조절할 줄 모르니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다. 강제로 억누르는 느낌을 기분 나빠하지 말고 일단은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밀어내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이런 걸 밀당이라고 부른다지? 인간 암컷, 지금부터 저 수컷과 함께 밀당을 연습해라.”
늑대를 올려다보는 유은설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어렸다.
아니, 밀당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자꾸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강호는 뭐라고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 * *
“캬하하하. 나 잡아 봐라! 나 빼고 전부 술래!”
“저 미친놈 좀 막앗!!”
홍희명의 해맑은 웃음이 대웅전을 간지럽히듯 울려 퍼졌다.
그러나 분위기는 반대로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대웅전 탱화에서 쏟아져 나온 신병(神兵)들과 귀축(鬼畜)들이 적의를 품고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을 막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홍희명까지 난리를 피워대니. 공략자들은 약이 바짝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일단 우리끼리라도 손을 잡는 게 어때?”
“뭘 믿고? 나중에 뒤통수 처맞는 건 사절이야.”
“이대로라면 피해가 너무 크다. 그리고 정감록을 얻으면 두 길드가 같이 볼 수도 있지.”
며칠 전 계룡산에서 성스러운 빛이 3일 동안 솟구쳤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대전에서도 이를 볼 수 있었고 대형 길드 몇 곳이 급하게 사람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계룡산 안에 활성화된 유적이 여러 개였기에 인원 분산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 하필 정감록을 얻을 단서가 저 미친놈의 손에 들어갈 줄이야.
“좋아. 어차피 정감록을 얻으면 파리떼가 들끓을 테니. 대신 뒤통수 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곧바로 전면전을 벌이기 싫다면 말이야.”
“그러지.”
차가운 인상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땅을 짚고 있던 철궁을 들어 올렸다.
찌이이이.
거의 키만 한 대궁이다. 그것도 철로 만든 활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근력은 둘째치고 팔 길이의 한계 탓에 시위를 절반도 못 당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의 팔은 거의 무릎까지 내려올 만큼 길었기에 철궁은 만작되었다.
퉁!
철궁을 떠난 철시가 퍼덕거리며 공간을 뛰어넘었다.
“켁!”
살이 한 움큼 뜯겨나간 왼쪽 어깨를 쥔 홍희명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술래잡기에 활 쏘는 건 반칙 아냐? 아님 새로운 놀이?”
신이립은 대답 대신 연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홍희명은 땅으로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런다고 내 화살을 피할 수는 없을 거다.”
그는 하늘을 향해 철궁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살은 하늘 높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눈이라도 달린 건지 홍희명을 정확히 노려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홍희명은 아슬아슬하게 화살을 피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자신을 찔러오는 창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다음 팔을 맹렬히 휘저어 바람을 일으켰다.
“으헛!”
“뭐, 뭐야?”
맹렬한 바람 때문에 사람들이 둥실 떠올랐다. 홍희명은 그들을 방패 삼아 화살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애꿎은 이들이 화살에 꿰뚫리자, 무표정한 신이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난감하군.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소수 정예로 놈을 노렸을 것을…….’
애먼 사람이 화살에 맞는 것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피해야 했다.
신이립은 당겼던 시위를 느슨하게 하며 입을 열었다.
“용추, 서로 손잡기로 한 것 아니었나?”
“난 놀고 있는 줄 알아? 빌어먹을!”
철추를 휘둘러 귀축 한 마리의 머리통을 터트린 밤송이 수염의 사내는 짜증을 냈다.
“착각하지 마라. 우리 목적은 유적 공략이 아니야.”
“��! 그럼 서로 감춘 패를 까자고. 그런다고 저 미친 새끼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석으로만 몰아넣으면 된다.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까.”
둘은 시선을 마주친 뒤 동시에 홍희명을 노려보았다.
* * *
강호는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 놨네.”
주변에 널린 건 건물 잔해만이 아니었다. 간만의 먹잇감에 까마귀들이 시체에 대가리를 처박고 포식하고 있었다.
미래를 알고 싶어 정감록에 목을 매더니, 제 죽을 운명이 이곳에 있는 줄은 몰랐나 보네. 병신들 천지군.
시니컬 해진 강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투 흔적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철수하는 게 낫겠군.”
“……왜요?”
“동학사를 있는 대로 들쑤셔 놔서, 우리까지 뒷감당하게 생겼어. 들어가는 품에 비해 품삯이 박하니, 그냥 손 터는 게 나아.”
유은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도 딱히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강호는 은근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적당한 유물 하나 주고 입 닦으려 했는데, 그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일이 틀어졌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일 가까운 유적을 들릴까?
“혹시 피곤해?”
도리도리.
“그럼 여길 나가서 다른 유적도 한 번 둘러보자고. 약효가 어느 시점에서 땀으로 배출되는지 확인도 할 겸.”
“……네.”
‘부끄러워.’
그녀는 당분간 절대 헬멧을 벗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긴 싫었으니까.
강호는 일주문을 향해 움직이다 걸음을 멈췄다.
“잠깐! 아무래도 방향을 틀어야겠어.”
후각을 둔감하게 만든 대신, 청각을 올려둔 상태. 멀리서 나는 소음을 잡아낼 수 있었다. 원래 나가려던 길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소리다.
“지금부터는 기척을 최대한 지우고 움직인다. 가능하지?”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