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히어로 04권
도핑 히어로 04권
도핑 히어로
04
소락
도핑 히어로 04권
차례
Chapter 01. 탐관오리 - 2
Chapter 02. 시너지
Chapter 03. 창포검
Chapter 04. 이번엔 진화다
Chapter 05. 전설의 짚신
Chapter 06. 개똥도 쓸모가 있다
Chapter 07. 시간 지각 진화
Chapter 08. 금도끼 은도끼
Chapter 09. 검후
Chapter 10. 거짓말의 교훈
Chapter 11. 계룡산 우리가 접수한다
도핑 히어로 04권
Chapter 01. 탐관오리 - 2
강호는 피식 웃으며 허리에서 도핑용 건을 뽑았다.
“이쪽도 업그레이드다.”
푸슛! 푸슛!
“아 따거!”
저만치서 존재감을 숨기기 위해 숨죽이고 있던 동일이 팔짝 뛰었다. 그리고 몰려드는 해골 무사를 보며 원망 어린 눈으로 강호를 흘겨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다 작전대로 되고 있어.”
당연히 안 괜찮다. 그러나 강호는 태연하게 한 손을 흔들어 주며 허벅지 양쪽에 주사기를 연달아 꽂았다.
2단 도핑 대귀.
와이어를 이용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며 해골 무사를 사냥했다. 강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잔상만 보일 정도로 급가속했다.
2단 도핑의 효과다. 다만 하체의 경우 크게 부풀기보다 우둘투둘하게 변해 팬티만 남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기분도 오랜만이군. 삼십 분 정도 버티려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하며 신선한 피와 공기를 손끝, 발끝 말단까지 밀어낸다. 근육이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르며 한계까지 힘을 쥐어짜 낸다.
강호는 오연한 시선으로 탐관오리를 바라보았다.
진정한 암행어사 출두!
비록 한시적인 힘이지만, 도핑 헌터에겐 숙명일 뿐 한계는 아니다.
강호는 더는 필요가 없어진 와이어를 회수하며 땅을 박찼다.
쾅!쾅!쾅!쾅!쾅!
강호의 발에 닿는 순간 바닥, 벽, 천장이 움푹움푹 파였다. 그때마다 고무 튕기듯 가속하며 해골 무사를 완전히 박살 냈다.
포탄처럼 묘실의 사방팔방을 휘몰아치자, 해골 무사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도적놈답게 제법 날래구나. 허나 그것도 끝이다.]
탐관오리는 활집에서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퉁!!
화살이 허공에 떠 있는 강호를 노리고 빛살처럼 쏘아졌다.
강호는 어쩔 수 없이 천왕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순간 손이 저릿할 정도의 강한 위력. 연달아 화살이 날아들자, 강호는 어쩔 수 없이 쉬이 뛰어오르지 못하고 화살을 피하는 데 집중했다.
“탐관오리 주제에 제법 활 좀 쓰나 봐? 근데 그거 내 활이니까 허락받고 써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언제까지 혓바닥을 놀릴 수 있는지 보자꾸나.]
탐관오리는 손가락으로 관을 가리켰다. 그러자 관 안에서 핏물이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딸려 올라왔다.
[깨어나라!]
핏물이 흩뿌려지자, 고약한 비린내가 물씬 풍기며 부서진 뼛조각들이 달그락달그락 움직였다. 그리고 이미 완전히 해치웠던 해골 무사가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너무 멀쩡하게 복구되었다.
강호는 해골 무사가 늘어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탐관오리가 활을 당기지 않는 틈을 타, 다른 해골 무사 수를 줄이는데 전력을 다했다.
어쩐다? 유인책을 한 번 써봐?
탐관오리가 관 주변을 떠나지 않으니, 답답한 강호였다. 그가 근처로 가지 않는 이유는 저 새까만 관이 특별하기 때문. 멀리서 봐도 섬뜩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관 안에 찰랑거리는 인간의 정혈이 바로 탐관오리의 생명의 근원이다.
아무리 타격을 가해도 관 안에 피만 충분하면 금방 복구가 돼버리니, 그 주변에서 싸우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었다.
물론 묘실 안 또한 탐관오리의 영역. 묘실 안에서는 관이 멀리 있어도 정혈을 이용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타타타타!
강호가 고민하는 사이, 다시 한 번 토미 건이 불을 뿜었다.
[감히!]
“저 멍청한 놈이!”
탐관오리와 강호는 동시에 동일을 노려보았다. 정작 당사자는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토미 건도 노리고 쏜 게 아니라 일반 탄환이 든 탄창을 끼운 뒤 그냥 냅다 갈긴 것이다. 다만 재수 없게 관을 맞추는 바람에 모두의 주의를 끌게 됐다.
[방자 주제에 방자하구나!!]
애지중지하는 관이 공격당하자 탐관오리는 분노했다. 그러자 해골 무사들 대다수가 동일을 노렸다.
저 뼈다귀 영감, 라임 보소? 소싯적에 서당에서 시조 좀 읊으셨나? 방자 주제에 방자라……. 입에 착착 감기는 게 아야에게 알려주면 좋아하겠군.
뜻밖의 상황에 강호는 쾌재를 불렀다. 해골 무사 대다수가 동일을 노리고 움직였다.
“저 자식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야.”
강호는 피식피식 웃으며 탐관오리에게 달려들었다.
반면 탐관오리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단순히 동일이 관에 사격을 가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총알 따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고작 두 명에게 귀한 생명수를 낭비하다니. 용서할 수 없도다.]
탐관오리의 목표는 명확했다.
인간의 정혈을 관에 가득 채우는 것. 그래야만 족쇄를 풀고 세상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애초에 무덤에 접근하는 인간이 적은 탓. 안 그래도 슬슬 조바심이 나던 차였다. 그 와중에 고작 인간 두 명에게 귀한 정혈을 낭비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스르릉!
탐관오리가 짚고 있던 죽장 손잡이를 뽑자, 검게 물든 검이 날카로운 이를 번뜩였다. 단순한 지팡이가 아닌 창포검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
[본관을 친히 나서게 하다니. 괘씸한지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겠다!]
* * *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든다면서? 큰소리치길래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약하시네. 맨날 관짝에 드러누워 있다 보니, 기가 허해지셨나?”
[이이! 고얀!]
챙챙챙챙챙!
강호의 천왕검과 탐관오리의 창포검이 얽힐 때마다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얇고 날카로운 창포검은 음험한 혀를 날름대며 강호를 노렸다. 그러나 파사현정의 힘이 담긴 천왕검을 뚫어내지 못했다.
거대한 천왕검을 회초리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강호의 용력(勇力)에 번번이 공격이 막히자 탐관오리는 짜증이 솟구쳤다.
[기어이!]
탐관오리의 텅 빈 눈구멍에서 푸른 귀화가 화르륵! 솟구쳤다. 그러자 관에서 정혈 한 줄기가 뻗어 나와 몸을 감쌌다.
그러자 강호는 뒤로 몸을 빼며 한 손을 내밀어 까딱거렸다.
“치사하게 자꾸 피 빨래?”
대답 대신 정혈로 만든 화살이 날아들었다.
촤아악!
“안 통한다니까. 피가 남아도나 봐?”
천왕검으로 후려친 뒤 강호는 계속 도발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 뒤를 탐관오리가 훌훌 날아 쫓았다.
강호는 계속 도망 다니면서 해골 무사만 공격했다. 그럴수록 탐관오리는 약이 바짝 올라 강호를 쫓았다.
쥐돌아, 너만 믿는다.
강호는 관 아래에서 불그스름한 빛을 보며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남은 도핑 지속 시간은 20분. 그 전에 쥐돌이가 성공해야 했다. 그가 준 임무는 다름 아닌 탐관오리의 관에 구멍을 내라는 것.
쥐돌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관에 바짝 붙어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눈치보다 탐관오리가 강호를 쫓기 바쁘자, 그제야 이빨로 열심히 관을 갉아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에는 이빨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평범한 쥐였다면 관에 구멍을 뚫는 게 불가능했겠지만, 쥐돌이도 요괴다. 녀석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하며 아주 조금씩 관에 긁힌 자국이 남기 시작했다.
* * *
탐관오리는 분노로 이성을 잃기 직전에 묘실 바깥의 인기척을 느끼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문을 열어주어라.]
솟을대문이 주인의 명을 받아 활짝 열렸다. 그러자 다급한 기색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다 들어왔으면 빨리 문 걸어 잠가!!”
“젠장! 문이 안 닫혀! 더 붙어서 밀어!”
여러 명이 솟을대문에 달라붙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약탈자들이 온다. 자릴 잡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장에라도 무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죽을 위험에 빠졌더라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절대 유적의 보스가 있는 곳으로는 오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웬 미친놈과 약탈자들에게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무덤의 심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나마 문을 사이에 두고 방어한다면 충분히 막아볼 만했다. 하지만 갑자기 엄청난 돌풍이 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밀어냈다.
“후후후. 드디어 제대로 놀 수 있겠어. 기다리느라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고. 하마터면 못 참고 싹 죽여버릴 뻔했지 뭐야.”
홍희명은 솟을대문을 넘어오는 약탈자들과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는 공략자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공간이 넓은 묘실이 갑자기 들이닥친 인간들로 인해 비좁아 보일 지경.
탐관오리는 흡족했다.
관과 멀리 떨어질수록 정혈 흡수 효율은 급격히 낮아진다. 그렇기에 지금껏 만족할 만큼 정혈을 모으지 못했던 거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인간이 제 발로 걸어와 주었으니, 기꺼울 수밖에.
[인생사 호사다마라더니. 본관이 친히 나선 보람이 있구나. 감히 본관을 능멸한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라.]
지금껏 강호와 동일을 쫓아다니기 바빴던 해골 무사들이 몸을 돌렸다.
그로 인해 곤란해진 것은 공략자들이다.
앞에는 약탈자가, 뒤에서는 해골 무사가 공격하니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개판이로군.”
강호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공략자들이 궁지에 몰린 것은 상관없다. 문제는 저들이 피를 흘릴수록 탐관오리가 강력해진다는 것.
그렇다고 약탈자들을 죽여도 마찬가지.
가장 좋은 방법은 이곳에 있는 인간들이 힘을 합쳐 무덤의 주인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으니, 외통수인 셈이다.
“강호야, 노오올자!”
“미치겠네.”
탐관오리 하나만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해맑게 웃으며 달라붙은 홍희명을 보자 강호는 머리가 아팠다.
쥐돌이 저거 꾀부리고 있는 거 아니야?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괜한 의심부터 들었다. 그러나 쥐돌이가 알았더라면 억울해 눈물을 찔끔 흘렸을 거다.
쥐돌이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태어나서 이리 맹렬히 이를 갉아댄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제 고작 손톱만큼 파인 게 전부.
찍찍! (안 돼! 쥐돌이의 자존심이 있지!)
자존심은 둘째치고 실패했다간 뒤끝 심한 인간에게 얼마나 시달릴지 모른다. 쥐돌이는 심기일전해 재차 맹렬하게 관을 갉기 시작했다.
그나마 숨 돌릴 여유가 생긴 동일은 눈을 껌벅였다.
“이게 뭔 일이래?”
저쪽에선 강호, 홍희명, 탐관오리가 싸우고 있었고 솟을대문 근처에서는 공략자, 약탈자, 해골 무사가 싸운다. 동일은 살금살금 구석으로 가, 숨을 돌렸다.
“휴, 죽는 줄 알았네. 그나저나 빗자루 아니었으면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