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히어로 02권
도핑 히어로 02권
도핑 히어로
02
소락
도핑 히어로 02권
차례
Chapter 01. 금와보살 - 2
Chapter 02. 파주 신도시
Chapter 03. 길라잡이
Chapter 04. 암시장
Chapter 05. 소환사의 협곡
Chapter 06. 8급 승급 심사
Chapter 07. 제3 땅굴
Chapter 08. 두더지 혼인
Chapter 09. 보물에는 임자가 있다
도핑 히어로 02권
Chapter 01. 금와보살 - 2
얼굴은 푸르스름하고 왼손에 커다란 칼을 쥔 사천왕이 고함을 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귀를 감싸 쥐고 비틀거렸다.
【누구냐! 어느 무지몽매한 인간이 신성한 경내를 어지럽히는 것이냐!】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에 아야는 얼른 손가락으로 한 헌터를 가리켰다.
쟤요! 쟤가 했어요!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초등학생이 따로 없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려 강호를 보자, 똑같이 손가락질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런 눈으로 봐?
지금 민망한 게 대수야? 사천왕의 분노를 빗겨갈 수만 있다면 얼굴에 철판 몇 장 까는 거야 일도 아니지.
강호는 몸을 낮춘 채 슬금슬금 움직였다.
“금기를 범한 인간만 벌을 받사옵니까?”
“나도 몰라. 그래도 사천왕 씩이나 돼서 잘못 없는 우리까지 싸잡아 공격하면 체면이 깎이는 거 아니겠어?”
둘은 속닥거리며 길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사천왕 중 하나인 증장천왕의 등장에 헌터들은 아연실색했다. 그 틈을 타 금와보살이 폴짝폴짝 석탑 틈으로 쏙 들어 가버렸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개굴!
금와보살의 울음소리에 증장천왕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됐다.
【벌을 받을지어다!!】
증장천왕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쩌저적! 갈라졌다.
그 모습에 강호는 더는 기척을 숨기지 않고 자세를 바로 했다.
“망할! 악귀들을 불러내는군.”
“그래도 저 사천왕 님은 나쁜 인간만 벌할 것 같아 다행이옵니다.”
“다행은 무슨! 사천왕은 몰라도 악귀에게 적과 아군의 개념이 없어. 그냥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 달려들거든.”
갈라진 땅의 틈새에서 악귀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다. 악귀들은 사람의 형체를 지니고 있었고 복장도 석탑 주변에 몰려 있는 헌터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복장을 보니 이곳에서 사천왕에게 죽은 헌터들 같은데…….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여기서 죽는다면 저들과 같은 악귀 신세가 될 테니 불행. 악귀가 된 지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으니, 강력한 마물은 아닐 거라 다행이다.
하지만 아무리 약한 마물이라도 머릿수가 많으면 깡패다. 이럴 땐 뭐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시다!
“튀자!”
“어디로 말이옵니까?”
“일단 옆쪽 담을 넘자고. 그나마 증장천왕만 나온 것 같은……게 아니라 다 현신했군.”
동서남북 방위를 점한 사천왕이 팔짱을 낀 채 인간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불러낸 악귀들이 계속 불어나며 주변을 빼곡하게 채웠다.
“온다! 내 뒤로 바짝 붙어!”
검은 파도가 넘실거리며 그들을 덮쳤다. 강호는 칼로 악귀들을 베어 넘기며 담을 향해 달렸다.
“전부 재생되옵니다!”
“나도 알아! 적합한 무기가 없으면 방법이 없어!”
그나마 강호 쪽 사정은 나은 편. 석탑을 중심으로 원형진을 짠 헌터들은 훨씬 많은 악귀를 상대해야 했다.
“앗! 담장이 이상하옵니다.”
미리 기계 벌 몇 마리가 담장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망할! 사천왕이 현신하며 결계가 생성됐나 보군. 이렇게 되면 출구는 두 군데뿐이다.”
“그런 건 미리 말씀해주셔요. 왜 자꾸 감추는 것이옵니까?”
아야는 달려드는 악귀들에게 개틀링 건을 갈기며 책망했다.
“미리 말해주면 너무 좋아할까 봐.”
“이 마당에 뭘 좋아한다고!”
“저기 증장천왕을 뚫고 가야 하거든. 여기 들어올 때 사천왕 때려잡고 싶다면서?”
“제가 언제 그랬사옵니까? 잡으면 안 되느냐고 물어본 것뿐이옵니다.”
아야는 강호의 살짝 흘겨보았다. 그러다 그의 등 너머의 증장천왕을 보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날아서 넘어가는 건 어떻사옵니까? 사천왕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가능성은 충분하옵니다.”
“안 그러는 게 좋을걸?”
“여기서 버티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사옵니까? 정 안내키면 저 혼자라도 시도하겠사옵니다.”
“그러시던가.”
강호의 심드렁한 대꾸에 아야는 샐쭉한 얼굴로 기계 벌들을 불러모았다.
붕붕거리며 날아오른 아야는 곧장 담을 타고 통천문 쪽으로 향했다.
아래를 내려다본 그녀는 강호가 악귀들을 뚫으며 달리는 것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내 말을 듣지 그랬사옵니까? 좀 더 혼쭐이 난 다음 도와드리겠사옵니다.”
여유롭게 비행하던 그녀는 이내 강호가 말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익! 끈질긴 남정네들은 정말 싫사옵니다!!”
악귀들은 서로를 밟아 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꾸역꾸역 기어올라 공중에 떠 있는 아야를 노렸다.
평범한 들판이었더라면 그녀는 어리석은 악귀들을 비웃었을 것이다.
더 높이 날면 그만이었으니. 하지만 이곳은 활성화된 유적지다.
아야는 고도를 높이다가 강한 압력에 순간 균형을 잃고 추락할 뻔했다.
결국, 잔뜩 골이 난 얼굴로 강호 곁으로 내려왔다.
“왜 그런 뚱한 표정이야?”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옵니까?”
강호는 킬킬댔다.
확실히 나도 미친놈이군.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인데도 웃음이 나오는 걸 보면 말이야.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진 않아서. 그나저나 슬슬 피곤해지는군.”
“좋은 방법이 없사옵니까?”
둘은 악귀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데도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둘 다 아직 밑천은 꺼내지 않은 상황.
“무기가 이 모양이라.”
평범한 칼로 악귀를 베다 보니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녹이 슬고 있다. 강호는 정글도를 버린 뒤 확장팩에서 빠르게 똑같은 칼을 꺼냈다. 벌써 두 자루째다.
이쪽은 이미 한 번 보여줬잖아?
자자 빨리 능력을 보여주라고 메카닉 위치. 그래야 공평한 거 아니겠어?
이곳을 돌파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호는 아야가 감춰둔 능력을 꺼내길 원했다.
“무기만 통하면 돌파할 수 있사옵니까?”
“증장천왕에게 타격을 입힐 정도의 무기만 내 손에 들어온다면 충분해. 약속하지.”
아야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한숨을 포옥 쉬었다.
“이곳의 금변석을 죄다 가져가도 적자이옵니다. 설마 그게 제일 좋은 칼이옵니까?”
“아마도?”
강호의 뻔뻔한 대꾸에 아야는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을 끌수록 일이 커진다.
지금은 악귀들만 움직이고 있지만, 언제 사대천왕이 움직일지 모른다.
그녀는 확장팩에서 조심스레 작은 나무상자를 꺼냈다. 덕지덕지 붙은 누렇게 바랜 종이를 제거하자, 안에는 칼자루가 해골 모양으로 양각된 단검이 들어있었다.
강호는 머리카락이 쭈뼛할 정도로 불길하고 음습한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지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주가 깃든 단검이군.”
“부두교 제사장이 쓰던 것이옵니다.”
“고작 그 단검으로 저 증장천왕을 상대하라는 건 아니겠지?”
강호는 일부러 모른 척 운을 띄웠다. 그러자 아야는 뾰로통한 얼굴로 눈을 흘겼다.
“멀쩡한 칼이나 내놓으셔요.”
“자.”
“어째 기다린 것 같사옵니다?”
“설마.”
“악귀들이 근처에 오지 않게 확실하게 막아주셔요.”
“걱정 붙들어 매셔.”
기다렸다는 듯 한 번도 쓰지 않은 칼을 휙 던져주자, 아야는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속이 쓰렸지만, 어쩌겠는가?
‘이 빚은 두고두고 받아내겠사옵니다.’
야무진 각오를 다지며 아야는 정글도와 저주 깃든 단검을 교차시킨 뒤 권능을 발현했다.
저주 깃든 단검은 달그락거리며 저항했다. 이를 예상했던 아야는 권능의 힘을 한층 더 강하게 개방했다. 그러자 주변에 빛무리가 어리며 그녀의 머리칼이 나풀나풀 춤을 췄다.
잠시 후 단검 칼자루에 붙은 해골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검은 연기는 허공에 흩어지는가 싶더니, 강한 힘에 붙들려 정글도를 빙글빙글 돌다가 스미듯 흡수되었다.
“여기 받으셔요. 워낙 조잡한 칼이라 내구도가 형편없사옵니다. 사천왕 님의 무기와 부딪히면 몇 번 버티지 못할 것이옵니다.”
“주의하지.”
강호는 새롭게 변모한 칼을 잡기가 무섭게 악귀들을 공격했다.
저주 깃든 칼의 위력은 대단했다.
칼에 베인 악귀들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댔다. 칼에 닿기만 해도 상처 주변이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상처가 부식되었다.
“위력이 나쁘지 않은데?”
“고작 그 정도로 호들갑 떨 것 없사옵니다.”
강호는 피식 웃으며 순식간에 포위망을 돌파했다. 그리고 통천문 근처에 도달하자, 석탑을 응시하던 증장천왕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 요망한 기운이로다! 】
증장천왕은 호통을 치며 커다란 검을 휘둘렀다.
후아아앙!!
바람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거검(巨劍)이 강호의 머리로 뚝 떨어졌다.
강호는 칼등을 왼손으로 받쳐 양손으로 증장천왕의 칼을 받아냈다.
카카카카칵!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증장천왕의 검이 미끄러졌다. 녹색 기운이 빠르게 증식하며 증장천왕의 검을 갉아댔다. 그러나 부식되지 않고 녹색 기운은 이내 흩어졌다.
증장천왕은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강호는 칼끼리 부딪칠 때마다 손목을 비틀어 공격을 흘렸다.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강한 힘. 그러나 손목보다 칼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강호였다.
“악귀들 좀 맡아줘!”
증장천왕과 싸우던 강호는 주변에서 달려드는 악귀들이 자꾸 방해하자, 아야에게 도움을 청했다.
“혼자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그랬나? 그럼 아까 한 말 취소.”
“참 얼굴도 두껍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