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 하 변호사 07권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7권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7
산경(山景)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7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죽음의 신, 하 변호사 07권
Chapter 01.
양동이 두 개에 가득 찬 물고기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두 시간, 이 정도면 오늘 일은 끝났다.
하루 두어 시간 바다에서 물질하고 나머지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물고기를 판다.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며 평온한 하루를 끝낸다.
이런 단순한 생활이 수영선수로서 트레이닝을 하고, 시합에 나가서 우승하고,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
인생의 절정기를 너무 어린 나이에 맞이한 걸 두려워한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 평온하게 살자고 권유했던 것이 옳았다.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양동이를 들고 시장에 갔을 때, 늘 같은 자리에서 아들을 반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곧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왜 이리 늦으실까?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는데.
불길한 느낌에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장까지 나가 볼까 생각했는데, 효자야.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오다니.”
집에는 낯선 사내 세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말아. 몇 가지 질문에 대답 잘하고 우리가 찾는 거 넘겨주면 아무 일 없어.”
“어…. 어머니는?”
“아는 게 없는지, 아니면 숨긴 비밀이 많은지 모르겠는데 입이 무거우시더라고. 그래서 잠깐 주무시도록 했지. 이대로 영원히 잠드느냐 아니냐는 우리 금메달리스트 아들의 입에 달렸어. 어때? 협조할 거지?”
정체를 알고 침입한 놈들이다.
“확인부터.”
“뭘? 아…! 어머니 상태?”
사내는 안방을 가리켰다.
황급히 달려가 죽은 듯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니 숨소리가 들렸다. 몸을 살펴봐도 상처는 없었다.
“됐지? 어때? 협조할 마음이 생겼어?”
“뭐야? 알고 싶은 게?”
“오! 월드 클래스는 좀 달라. 겁이 없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좋아. 그럼 첫 번째 질문, 삼지창 어디다 뒀냐? 모른다고 발뺌하지 마라. 네가 그 삼지창 들고 수영장에서 우승 퍼포먼스한 영상 봤으니까.”
“너무 늦게 왔어.”
“뭐?”
“자카르타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버렸다. 원한다면 버린 위치는 알려주지.”
사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배를 타고 여기로 오면서 마카사르 해협에 던져버렸어. 수영 선수로서의 나를 버린 거야. 거기가 그다지 깊지 않으니 잘 찾아보면 발견할지도 모르지.”
“이거 참, 별일 아닌 일을 별일 있게 만드네.”
세 사내는 권총을 빼 들고 아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 * *
“트라이던트 확인했는데 그 수영선수가 고향으로 돌아가며 바다에 버렸다고 합니다. 물론 진짜 트라이던트는 아니었습니다.”
“기대도 안 했다.”
제우스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 물건이 그냥 기념품은 아니었습니다. ‘파인만 나노 웨이브’라는 회사가 제작해서 전한 것입니다. 수영 기록을 보며 마치 포세이돈 같다고 하면서 말이죠.”
“기업이 줬어?”
“네. 시애틀에 있는 회사인데, 지금 테크놀러지 분야의 최고 기업입니다.”
제우스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너 지금 정말 쓸데없는 걸 들고 와서 주저리주저리 하는데, 네 보고의 끝에 뭔가 중요한 게 없다면 이쯤에서 그만둬.”
“그 회사를 하데스가 자주 찾았습니다.”
더 화내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는 게 나을 성 싶었는지 사내가 황급히 말했다.
하데스라는 이름이 나왔지만 제우스는 여전했다.
“하데스가 기업 전문 변호사라면서? 그게 특별한 거야?”
“시애틀의 리자드맨 진술이 있습니다. 하데스가 ‘파인만 나노 웨이브’를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리자드맨을 통해서였습니다. 비즈니스였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겠죠?”
조금은 흥미가 돋는지 제우스의 시큰둥한 표정이 변했다.
“리자드맨은 초월자가 아니면 정보를 주지 않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시애틀의 리자드맨은 좀 특별했습니다. 리자드맨이라는 정보상을 원했다기보다는 억지로 떠맡은 귀찮은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약간의 위협만으로도 아는 걸 말했다고 합니다. 곧 그만둘 것 같았다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으니 지금쯤 짐 싸서 사라졌겠구만.”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그 회사는 어때?”
“CEO는 제임스 브론즈라는 엔지니어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은 거의 다 대표의 머리에서 나왔고요. 가끔 회사에 얼굴을 드러내긴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소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다시 제우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회사 내용이 궁금해서 물었겠어? 수상한 점은 없어?”
“제임스 브론즈의 과거를 뒤집어 봤는데 뚝뚝 끊어집니다.”
“인생 기록이 매끄럽지 않다?”
“네. 이런 경우는 단 하나밖에 없죠.”
“그놈도 초월자다?”
“그래야 설명 안 되는 게 맞아 떨어집니다.”
사내는 말을 끝내고 제우스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눈길을 느낀 제우스가 머리를 흔들었다.
“몰라. 누군지 전혀 짐작이 안 간다.”
“뛰어난 엔지니어라면 헤파이스토스(Hephaistus)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기술자가 어디 한둘이냐? 내가 몇 번 말했지만 넌 올림퍼스를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 좁은 시야를 좀 넓혀. 전 세계의 신화를 잘 뒤져보면 기술자쯤은 꼭 한 명씩 나오더라.”
“그렇긴 합니다만 올림퍼스 출신이 아닌 자를 하데스가 자주 만나겠습니까?”
“그건 그럴싸해.”
사내의 추론이 흡족했는지 제우스의 얼굴엔 미소가 보였다.
“미국 가서 확인해봐. 그 잘난 테크놀러지 기업의 대표 정체가 뭔지 알아봐. 혹시 초월자라면 우리 쪽으로 싹 감아볼 수도 있겠지? 엄청난 기업이라고 했으니 든든한 자금줄이 되잖아.”
사내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말입니까?”
“왜? 너도 인간이 말하는 초월자잖아. 설마 겁먹은 건 아니지?”
“그건 아니고…. 전 올림퍼스 출신이 아니니까….”
“출신 따지지 마라. 그리고 지금은 헤브라이(Hebrai) 왕국의 시대잖아. 네가 바로 이 시대의 메인 스트림이라고. 위대한 천사, 세라핌(Seraphim)님. 자신감을 가져.”
제우스는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천사 세라핌이 머리 숙이자 제우스는 아직 듣지 못한 정보를 물었다.
“참, 그 수영선수는 어떻게 됐어?”
“집에 화재가 발생해서 모친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거 참, 조용히 살려고 외딴곳으로 갔을 텐데…. 안타깝구먼.”
제우스도 혀를 찼다.
* * *
연구실의 스테로페스는 핸드폰의 알림음에 눈길을 돌렸다.
그가 키워드를 걸어놓은 몇 개의 단어가 걸리면 뉴스 속보나 논문이 곧바로 뜬다.
지금의 알림음은 뉴스 속보다.
「인도네시아 출신 올림픽 수영 4관왕, 세계 신기록 보유자 사망.」
황급히 기사를 보니 화재로 인해 모자가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브론테스의 죽음 이후 조금이라도 위험이 감지되면 몸을 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외딴 섬마을 바닷가의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적당히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집에 화재가 났다고 해서 탈출하지도 못했다? 꽉 막힌 콘크리트 건물도 아닌데?
브론테스는 아르게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스 봤어?”
“봤어. 그거 사고 아니라 살인이다.”
“그렇지? 우리가 선물한 트라이던트, 그걸 노리는 놈이 범인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데스도 그 창이 포세이돈의 것인 줄 알고 직접 찾아갔다고 했으니까.”
“그 애를 죽였다는 건 삼지창의 출처를 확인하려고 한 걸 테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죽였을 거다.”
“그 애가 우리 회사 이름을 끝까지 발설하지 않았을 거라고는 기대 안 해. 그러니까…….”
아르게스가 긴 한숨 끝에 말했다.
“난 LA를 떠나 멕시코 목장을 간다.”
“그래. 나도 캐나다로 갈 거야. 여기에 덫을 좀 놓고 말이야.”
“오케이. 멕시코에 도착한 뒤 전화 바꿔서 다시 연락할게.”
통화를 끝낸 스테로페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부사장에게 아주 간단한 메일 하나를 날린 것이다. 연구를 위해 회사를 비운다는 짧은 메일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회사에서는 대표가 외딴곳에 박혀 연구에 매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대표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들고 왔으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회사 시큐리티 시스템을 비상 모드로 바꾼 것이다. 현업의 시큐리티 팀조차 바뀐 걸 눈치채지 못한다. 이제 빌딩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까지 감시의 눈길이 몇 배로 증가한다.
연구실을 나선 스테로페스는 캐나다 대신 파인만 나노 웨이브 빌딩의 맞은편 건물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탑 층으로 올라간 스테로페스가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의 지하 연구실과 똑같은 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 연구실 한켠에는 거대한 대형 모니터가 있었고 그 모니터를 통해 건물 주변 상황을 한눈에 확인하는 몇몇 요원들이 앉아 있었다.
“지금부터 철저히 감시해. 분명 누군가가 나타날 거다. 안면 인식 프로그램 돌려놨으니까 처음 방문한 놈들은 무조건 체크해. 놓치면 안 된다.”
“네. 대표님.”
스테로페스는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주 뛰어난 놈으로 열 명…. 아니 스무 명 부탁해. 응? 아…. 수상한 놈들을 좀 잡으려고. 죽이는 건 아니고…. 그래, 생포가 목적이야. 장소는 내 회사. 며칠…. 아니, 오늘일 수도 있어. 분명히 나타난다. 누군지는 우리가 알려줄 테니까 어렵지는 않을 거야.”
통화를 끝낸 스테로페스는 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수영 금메달리스트를 죽인 놈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 * *
감시의 눈을 부릅뜬 지 이틀째, 모니터링 요원이 소리쳤다.
“확인해야 할 인물이 떴습니다. 본사 로비에 하나, 빌딩 밖 셋. 그리고…. 옥상에도 한 명 있습니다.”
“옥상에?”
보고받은 스테로페스는 믿을 수 없었다. 테크놀러지 기업이라 출입이 까다롭다.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단 출입 카드가 없으면 엘리베이터와 계단까지 접근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접견실이 있는 3층 이상은 직원 동행 없이 출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옥상만 다시 확인해. 우리 직원일 수도 있어.”
“외부인 맞습니다. 카메라는 이 건물에서 찍은 겁니다.”
저놈들이다!
건물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통하지 않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능력, 초월자 아니면 초능력자들이다.
스테로페스는 곧바로 전화를 들었다.
“지금 확인했다. 로비에 회색 정장을 입고 두리번거리는 놈 하나. 빌딩 입구를 지키는 놈 둘, 동쪽 입구에 서 있는 놈 하나. 그리고 옥상에 하나. 모두 잡아!”
모니터에는 로비를 가로지르는 사내 몇 명과 밖으로 나오는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