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8권
서경 신무협 소설
1장. 전쟁의 승자는?
흠칫.
군병들이 몸을 떨었다.
아무리 봐도 별 볼 일 없는 일개 서생의 입에 담기기에는 너무 큰 직함과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실제 인연이 있는 호부낭중의 아우에게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자신들의 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 너무 빤했으니까.
“호부낭중 왕유령 대인 말씀이시오?”
“호부산하 탁지부와 금부를 동시에 담당하시며 총부와 창부의 일까지 살피시는 그 왕유령 대인이 맞소이까?”
이건 또 몰랐네.
‘그냥 조세나 담당하는 분으로 알았는데, 그새 많은 것을 이루신 모양이구나.’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기뻤다. 무척.
“그렇소이다. 그 왕유령 대인이오.”
내 답에 두 군병의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
“대인의 존함이 어찌 되신다고 하였습니까?”
“소장이 너무 긴장하다 보니…….”
피식.
“한천화. 그게 내 이름이오.”
“자, 자, 잠시만…….”
“이쪽으로 오십시오, 한 대인. 귀한 분을 예서 모실 수가 없습니다. 접객청으로 가시지요.”
정문을 지키는 군병 전체가 들썩였다.
나를 외부에서 귀한 손님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곳으로 모셔갔다.
꽤 너른 곳이었다.
여느 가문의 영빈관 못지않은 크기의 전각에 정갈하게 꾸며진 실내였다. 덩그러니 커다란 원탁의 탁자에 홀로 앉아 나는 왕유령을 기다렸다.
‘형님이 어찌 반응하려나?’
정말 궁금했다.
왕유령은 나를 기억할까?
‘불과 2년 전인데…….’
사람은 지위가 변하면 종종 바뀌기 일쑤다.
더더군다나 호북성의 재정을 총괄하는 위치에 올라선 고위 관료라면 더 심하다.
‘어쩌면 그 형님도 변해서 나를 그냥 모르는 척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럴 때는 과연 어찌 반응해야 하려나?
놀라서 호들갑 떤 만큼 군병들이 뿜어낼 분노는 진해질 것이다.
피식.
‘그냥 잘 먹고, 잘 살라며 두고 떠나지 뭐.’
진정한 선의란 본디 잊는 법이다.
서운해하거나, 대가를 바란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선의가 아니다.
‘내 행동은 분명히 선의, 대가가 없다고 하여도, 또한 내 선의를 받은 상대가 나를 모른다 하여도 그건 그의 그릇일 뿐 나의 잘못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때였다.
“어디냐?!”
저 멀리에서 분명히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접객청으로 뫼셨습니다, 대…….”
와다닥.
관병의 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의 주인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피식.
‘형님인가?’
와다닥. 와다다닥.
달음박질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차 한잔도 나오질 않았는데.’
업무고 나발이고, 내 방문 소식을 듣기 무섭게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왈칵.
접객청의 문이 열렸다.
내 기억 속의 왕유령이, 소패왕을 비롯한 패왕성의 내 형제들을 제외하면 내가 처음으로 ‘형’이라 불렀던 사내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났다.
“아우!”
글썽.
왕유령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하하하. 형님. 그간 강녕하셨…….”
“천화 아우!”
와락.
아직 인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왕유령이 날 듯이 달려왔다. 나를 끌어안았다.
“하하하. 형님. 숨 막힙니다.”
“이 나쁜 사람. 어째서 이제야 왔어?! 왜 연락도 닿질 않았던 게야?!”
“하하하. 소제에게 연락을 넣으셨습니까?”
“당연하지.”
“죄송합니다, 형님. 소제가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본가에 잘 붙어있질 않아서 몰랐습니다.”
사실이었다.
그간 내가 오죽이나 바빴는가?
‘패왕성 재정 문제 해결과 수련 그리고 군림성 문제 등등 온갖 일에 밖으로만 돌았지.’
왕유령의 역정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리고! 2년 만에 봤다고 지금 우형이랑 내외하는 거야 뭐야? 뭐? 소제? 말끝마다 붙이는 존칭은 또 뭐야? 정말 자꾸 그럴 거야?!”
우려와는 달리 왕유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처음 만났던 그때로, 왕유령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편히 대했던 그 시절로 되돌렸다.
“아, 형. 숨 막혀.”
“이 못된 놈!”
“알았어, 형. 미안해. 그러니까 좀 놓고 하자고-오. 나 숨 막혀-어.”
내 말투가 바뀌니 그제야 놓아주는 왕유령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가자!”
“응? 어딜?”
왕유령 손에 끌려 일어나며 물었다.
“너를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서 대접할까? 안 돼. 당장 우형이랑 가자.”
“어딜 갈 건데?”
“가보면 안다.”
막무가내였다.
왕유령은 내 손을 꽉 잡은 채 달리듯 승선포정사 밖으로 이끌었다.
“아직 근무시간 아니야?”
“됐어. 네가 왔는데 근무는 개뿔.”
피식.
“그래도 괜찮아?”
“당연하지. 포정사 대인께서도 나만 보면 제발 좀 쉬어가며 일하라고 채근하시는데, 감히 뉘가 있어서 2년 내내 단 하루도 쉼 없이 일한 내가 오늘 하루 조금 일찍 퇴청하는 걸 두고 뭐랄 수 있겠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2년 내내 하루도 쉼 없이 일했다고?’
오죽했으면 승선포정사의 수장인 포정사가 제발 좀 쉬어가며 일하라며 채근을 다 할까?
‘열심히 사셨구나, 형님도.’
나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온 듯하다.
“이거 좀 놓고 가, 형.”
“도망가려고? 어림도 없다, 녀석아.”
“어휴.”
왕유령은 내 손을 끝까지 잡고 종종걸음을 걸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고관에 속하는 분인데 교자나 말 혹은 마차 따위는 안 타시는 건가?’
그러고 보니 행색도 예상과 다르다.
첫 관직을 받을 때 하사받은 관복 한 벌을 지난 2년 동안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입었던 모양인지 이곳저곳 색도 조금 바랬고 헤어졌다.
‘신발도 그래.’
다 헤지기 직전이다.
호부낭중 청리사라는 고위 관리.
정문을 지키던 군병의 말마따나, 호부산하 탁지부와 금부를 동시에 담당하며 총부와 창부의 일까지 살피는 고위관리의 행색이 왜 이 모양일까?
“형.”
“응?”
“교자나 마차는 안 타?”
피식.
“내가 그런 거나 타고 다니면 좋겠느냐?”
우문에 현답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왕유령과 비슷하게 웃으며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뭐, 그냥 힘들어 보여서.”
“무슨 소리?!”
대뜸 힘찬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 암. 이렇게 행복한데, 힘들 까닭이 없지.”
뭐가 그리 행복하다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곧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왕유령은 나를 이끈 곳은 성도 중심을 완전히 벗어난 곳의 조그만 마을이었다.
‘전에 살던 곳과 비슷한 느낌이네.’
대나무가 병풍처럼 늘어선 곳이 예전에 살던 왕유령 자택의 뽕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다 왔다.”
조그만 마을에서도 외곽의 작은 집으로 나를 이끈 왕유령이 드디어 손을 놓았다. 자랑스럽게 나를 안으로 안내하며 공개했다.
“우형의 집이다. 네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지내주길 바란다.”
세상에.
호부낭랑 청리사가, 정5품의 고위 관리가 저런 남루한 곳에서 살고 있다니.
“네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받은 조언을 잊지 않아 지금도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내 근본은 청빈을 지향한다는 것을 말이다.”
“형.”
왕유령의 전신에서 후광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