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7권
서경 신무협 소설
1장. 쌍룡진천(雙龍振天) (2)
보원의가 별채.
팽려옥과 교옥진, 청수 도장을 맞이한 것은 한 구의 싸늘한 주검이었다.
“천화 오라버니께서는 이미 지하에서 적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도 싸우고 계셔요.”
교옥진이 맞장구를 쳤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쿠드드드. 트드드드.
대지가 몸살을 앓았다.
가만히 서 있음에도 절로 몸이 떨릴 만큼 격렬한 충돌이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들어가야겠어요.”
“잠깐!”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나아가려는 팽려옥을 교옥진이 붙잡았다.
“독이에요.”
“……!”
팽려옥의 눈이 동그래졌다.
청수 도장이 말을 보탰다.
“입구 앞 주검이 독인인 모양이오, 소저. 개방 정의개가 전해준 말과는 달리 별채 지하로 통하는 입구에 가득하다던 독연이 더는 보이지 않으니 말이오.”
“아!”
확실히 그러했다.
입구까지 밀려 나와 넘실대고 있다던 독연은 씻은 듯 사라졌다.
대신 주검을 중심으로 방원 5장 정도의 흙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별채 지하로 향한 길을 완벽하게 가로막은 셈이었다.
이름하여 진독.
과거 한천화를 괴롭혔던 5비와는 달리 쏟아 내보지도 못하고 죽은 2비의 체내에 있던 독이 두 쪽이 나면서 외부로 흘러나온 것이다.
쿠르르릉. 쿠그그긍.
트드드드드.
그 와중에도 대지의 떨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별채가 통째 흔들렸고 처마 밑 기왓장에서는 미세한 가루와 먼지가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대체 어떤 전투를 벌이고 있기에 별채는 물론이고 대지까지 이처럼 몸살을 앓는 것일까?
‘미안해요, 천화 오라버니.’
팽려옥은 안타깝기만 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했듯 자신도 그를 돕고 싶은데 능력이 닿질 않아 마음이 괴로웠다.
청수 도장이 슬쩍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팔공산으로 갈 것을 그랬나 보오.”
이곳은 능력이 닿질 않으니 그곳으로 가서 도움을 주면 어떠냐 하는 의미였다.
“그래요, 언니. 안타깝지만, 우리 중 누구도 독에 정통하지 못하니…….”
교옥진마저 팽려옥을 설득할 때였다.
쿠우으으으-응.
한차례 둔중한 울림이 주변을 송두리째 뒤흔드는가 싶더니 별채를 포함한 대지가 들썩하다가 힘없이 밑으로 꺼져버렸다.
“천화 오라버니-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팽려옥이 길게 외쳤다. 독을 뚫고 달려가려 했다.
“언니!”
그런 팽려옥을 교옥진이 다시 한 번 붙잡았다.
그때,
퍼펑. 휘류류류.
뿌연 먼지 꼬리를 이끌며 하나의 형체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언니 저기!”
“아?!”
팽려옥의 눈에도 보였다.
반경 십여 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덩이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한천화의 모습이.
“그가, 오라버니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팽려옥의 눈에 글썽 눈물이 고였다.
고통 그 자체.
반경 십여 장에 이르는 공간을 통째 꺼트리며 솟구쳐 오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허공에 오도카니 멈춰 서 있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한천화의 표정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망할 놈의 진독 때문이었다.
본인은 물론이고 귀령의 은면탈 십 인까지 모두 비약을 복용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천화에게 차례차례 제거당하고 말았다.
남은 것은 1비 하나뿐.
결국 1비 역시 5비가 그러했듯 마지막 일격에 진독까지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것이다.
결과는?
“크으으으-흐!”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한천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참아냄과 동시에 바닥 상태에서 다시금 몸을 터뜨릴 듯 차오른 내공을 제어해내야만 했다.
팽려옥이 길게 외쳤다.
“오라버니-이!”
한천화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심장에 고통을 느낀 것이다.
“려옥 소저. 어, 어떻게 여길……. 크흑.”
팽려옥의 외침은 한천화의 뒤를 이어 구덩이를 기어오르던 1비의 관심까지 불러 모았다.
“크흐흐흐.”
놈이 팽려옥을 보며 웃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소, 소저 피하시오. 어서…….”
진독을 소화해내느라 나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심장과 단전이 동시에 뚫린 1비는 놀랍게도 최후의 발악을 했다.
“네놈의…… 계집인 모양…… 이로구나…….”
1비가 팽려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복수다-아!”
화아악.
놈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마지막 한 줌의 내공과 미약한 진독이 팽려옥을 향해 뿜어졌다.
“어딜!”
팽려옥이 겁도 없이 맞받아갔다.
“죽어라, 악적. 하아아-앗!”
버언쩍.
팽려옥의 도 끝에서 솟구쳐오른 도강의 빛줄기가 분노한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진독을 갈랐다.
촤아악.
단숨에 진독을 가른 후 아직도 기어 나오는 중이었던 1비의 몸마저 정확히 쪼갰다.
스삿.
“크흐-으.”
허리가 두 동강 난 1비가 묘하게 웃었다.
자신이 뿜어낸 진독의 기운이 팽려옥의 가슴에 깃드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흐으으-.”
뚝.
정말 놀랍도록 질긴 생명력이었지만, 놈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갑자기 뚝 끊겼다.
절명한 것!
심장과 단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참으로 오래도 살았다.
직후,
“훕!”
쨍그랑.
팽려옥이 손에 쥔 도를 떨구었다. 두 손으로 목과 코를 감싸 쥐었다.
“언니!”
“안 된다.”
교옥진이 달려들려 했지만, 사형인 매화검수 청수에게 제지당했다.
“독이다!”
눈치 챈 것이다.
종류를 알 수는 없지만, 실로 무서운 종류의 독이 팽려옥 주변에 가득하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게 내 눈에는 더 잘 보였다.
‘젠장. 거기서 왜 그대가 튀어나오냐고?!’
지켜볼 수밖에 없던 상황에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지?’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것도 빨리.
‘그렇지 않으면 저 여인은 죽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모든 종류의 독을 흡수, 내공으로 치환해 낼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저 여인은 오래지 않아 한 줌 독물로 녹아내릴 것이다.
‘응?!’
그때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모든 종류의 독을 흡수, 내공으로 치환해 낼 수 있는 내 고유의 능력.
그것이라면 어떻게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게 가능할까?’
더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직도 폭풍처럼 전신을 휘도는 내공을 간신히 억누르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주, 주변을 좀…….”
“염려 마세요,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시게, 한 소협.”
겨우 뱉어낸 내 말을 교옥진과 청수가 바로 알아들었다. 동시에 검을 뽑아 든 후 돌아섰다. 주변을 경계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 오라버니. 커흑. 쿨럭.”
새카맣게 죽어가는 얼굴로 팽려옥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녀린 손을 뻗었다.
씨이익.
나도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녀를 위해 애써 웃었다.
가능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내가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해 보려 해.”
“하, 하세요. 어서. 쿨럭.”
연신 죽은 피를 게워내며 팽려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한 가지 더 허락을 받아야만 했기에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몸에 손을 대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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