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6권
서경 신무협 소설
1장. 고백
이제는 상갓집 개 신세가 되어 버린 섬절귀와 절심도를 의심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의심을 거뒀다.
그들 두 사람이 귀면탈과 은면탈을 움직인 암중의 주재자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가치가 걸린 이번 싸움에 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또 모르지. 오늘 투입하지 않는 이유가 의심의 시선을 아예 거둬내려는 고도의 술책인지.’
‘이젠 패왕성에서 벗어날 때가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자유롭게 움직이며 흉계를 꾸미기 위해서 말이야.’
아직은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래서 만에 하나에 대한 의심만 남겼다.
“상당 부분 의심을 거뒀지만, 그래도 섬절귀와 절심도에게 꼬리는 붙여 놓았겠지요?”
“물론입니다, 태상장로님. 정의개들을 총괄하는 정의당의 호법들을 움직였습니다.”
“정의당의 호법들을?!”
옥면신개의 눈이 동그래졌다.
“잘하셨습니다, 방주. 그들이라면 능히 들키지 않고 잘 따라 붙을 겁니다.”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추적과 은신, 정보수집에 특화되어 있는 자들이니 믿을 만했던 것이다.
“패왕성은 지금껏 그래왔듯 태상장로님께서 수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소이다, 방주. 한천화, 그 녀석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내가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려 했으니까요.”
감시하다 혹시 모를 마찰이 생긴다 하여도 안면이 있으니 괜찮으리라.
***
보무도 당당하게 패왕성으로 복귀했다.
3천 수백여 명을 상대로 모두 404명이 정벌을 나아가 사망자 겨우 스물일곱에 중상자 열 둘, 경상자 서른셋이니 대승도 이런 대승이 또 없었다.
“패왕의 승리를 감축하외다.”
“패왕성 만세, 만세, 만만세-에!”
집법장로 검귀 진산과 모든 무인들이 질서정연한 사열로 패왕과 정벌군을 반겨 주었다.
‘감축 드립니다, 아버지.’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군요.’
소패왕과 한천용 한빈 형제도 열렬히 박수로써 패왕과 정벌에 떠났다가 돌아온 무인들을 환영했다.
피식.
“소란 떨기는…….”
패왕은 그저 한 번 살짝 웃고 말았다.
군림성 따위 걱정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늙은이를 놓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되레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너무 오랜만의 전투라서 그랬어.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 즐기는 바람에 그만…….’
맛난 음식 아껴 먹듯 가장 재미난 상대를 뒤로 미뤘기에 놈들이 도주할 수 있었다.
‘다음엔 반드시 보자마자 벤다.’
두 번 실수는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두 늙은이를 마주하는 날이 바로 두 사람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기뻐하기보다 패왕성을 위해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위로가 먼저다.”
“물론입니다, 아버지.”
패왕의 일성에 따라 도착하기가 무섭게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위로가 시작되었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완벽하게 위로할 수는 없었지만, 적절한 보상금을 지급하고 명예를 세워 줌으로써 어느 정도는 갈음하도록 했다.
그 뒤에야 비로소 승리를 축하하는 조촐한 연회가 있었는데, 패왕께서 워낙 허례를 싫어하는지라 모두 한 잔의 술로 간단하게 끝냈다.
평범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패왕께서는 다시 폐관수련에 들지 않았다.
군림성의 일을 겪으며 생각을 굳힌 모양이었다. 아예 작정한 듯 소패왕을 대동한 채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에 돌입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패왕전에서 함께 집무를 보았다. 만금상단의 왕노야가 왕소봉에게 그러했듯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가르침은 밤에도 이어졌다.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나면 언제나 연무동에서 함께 들어가 실전비무를 나누었다. 혹독한 수련으로 실력을 더욱 끌어 올리려는 것이었다.
연무동에는 한천용과 한빈도 종종 불려갔다.
아침 식사시간에 보면 참 볼 만했다. 
터지고, 멍들고, 찢기고…….
누구 한 사람 멀쩡한 이들이 없었다.
“파하하하! 형님들, 일전에 제가 아버지께 실전비무를 지속할 때 뭐라고 하셨지요? 노오-력을 하십시오, 노오-력. 파하하하.”
형님들을 놀려 먹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어머니는 입장이 또 달랐다.
“힘들지? 이거 많이 먹고 힘내렴.”
차마 말릴 수 없어서 가슴앓이만 하는 유소향은 먹음직한 반찬들을 연신 소패왕과 한천용 한빈 형제들 앞으로 밀어 놓았다.
한 술 뜨기 무섭게 그들의 밥 위에 고기를 얹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당연히 아버지가 질투를 했다.
“커험험. 부인, 거 너무 편애가 심한 거 아니오?!”
“심해요? 그 말을 정작 쓰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아시면서 그러시나요?!”
찌릿.
어머니께서 톡 쏘아 붙였다. 아버지를 향해 사납게 눈을 흘기셨다.
“커험험. 그래도, 거, 너무…….”
천하의 패왕이 대부인 유소향의 시선을 피했다. 밥그릇에 고개를 파묻은 채 그냥 열심히 젓가락질만 했다.
우걱. 우걱.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원.
‘크크큭. 아이고, 웃겨라.’
나는 소리 죽여 웃을 수밖에 없었다.
패왕이 공처가라니.
아마, 다른 곳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패왕께선 나를 연무동으로 따로 부르지 않았다.
출정 전 한 달 내내 계속된 구타를 통해 충분하다고 판단하신 모양이었다.
그렇듯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내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친구. 그간 잘 지냈나?
그 날의 만남 이후 벌써 일 년이 지났네.
강남 4공자의 회합이 코앞이라는 뜻이지.
하여, 이번 회합에 한천화 친구를 초청하는 바일세.
바쁘시겠지만, 부디 꼭 왕림해 주길 바라네.
가문의 일로 인해 나는 참석하지 못하기에 그날의 회합을 주도하며 모두의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어줄 사람은 친구 밖에 없기 때문이네.
부탁하네.
남궁상진 배상
그제야 시간의 흐름이 피부로 느껴졌다.
영웅전에 들어온 지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어 버리다니, 시간 참 빠르다.
“가야지. 암.”
패왕성의 분열을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픈 곳을 도려낸 셈이다.
내원의 핵심 무력들을 지켜냈고 패왕성의 자금사정을 안정시켜 놓았으며 외부에 녹림이라고 하는 지원세력도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 더해, 패왕께서 떡 하니 자리를 지키고 계시기도 하지.”
잠시 친구 좀 만나고 돌아오는 정도의 일탈은 충분히 해도 괜찮은 시기다.
“가서 제갈군악 그놈에게 대놓고 물어봐야지. 앞으로도 뒤통수 칠 생각이 있느냐고.”
틀림없이 제갈세가에 내 말이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 그건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그날, 그 자리에 나왔던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 앞으로는 허튼 수작 하지 말라는.
“근데 남궁상진 그 친구는 왜 못 온다는 거야? 가문에 일이 있나? 우리 패왕성이 겪었던 것만큼이나 큰일이 생긴 걸까?”
가문에 일이 생겼다고 하니 그게 또 궁금해졌다.
그만큼 중요한 일인가 보다.
“일단 아버지께 아뢰고 준비하자.”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께서 소패왕과 함께 집무를 보는 패왕전으로 향했다.
***
패왕전도 휴식 시간이었다.
보름 동안의 강행군.
출정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시작된 군림성의 뒤처리와 함께 만금상단의 일이 계속해서 밀려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기댄 패왕이 한동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젠 정말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천화, 그 녀석이 너무 큰일을 해주었어.”
만금상단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현재 패왕성의 영역 내 중요 거점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만금상단이 상회를 내었다.
곡식, 소금, 의류, 생필품 등등 거래품목과 거래량이 증가하면 할수록 그 모든 활동을 보장해주고 물류의 안전을 지켜주는 패왕성의 수입이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중소상단과 각 지역의 상회들까지 패왕성의 깃발 아래 영업을 하고자 하니, 모여드는 자금이란 정말이지 막대했던 것이다.
“소자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 보여주었던 나태와 한량 노릇이 전부 장로들을 견제하기 위한 심모원려라는 사실에 정말이지…….”
소패왕이 심모원려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였다.
‘아차, 그게 있었지?!’
한천기는 잊고 있던 한 가지를 기억해냈다.
그것은 바로 금낭.
일 년여 전, 아버지 패왕께서 기약 없는 폐관 수련에 들 무렵에 한천화가 건넨 주머니 두 개 중 하나였다.
‘이 금낭은 아버지께 건네라고 했었지.’
아직도 내용물의 정체를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자신이 받은 주머니에 들어 있던 내용이 바로 장로들의 분열책에 대한 경고였으니…….
정말 궁금했다.
그런 혜안을 지닌 막내가 아버지께 드리려 특별하게 준비한 것이다. 
그 금낭 안에는 대체 어떤 놀라운 내용이 깃들어 있을까?
‘지금 드릴까?’
아니면 언제고 한천화가 말한 순간이 오길 기다렸다가 드려야만 할까?
‘천화가 말하길, 아버지께 드릴 금낭은 패왕성이 정파나 다른 어떤 세력으로부터 침공을 당하는 극한 상황이 오면 건네 드리라 했었는데.’
얼마 전 그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패왕을 직접 대면하고 출관을 유도했으며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냥 내가 보관 중인 건데.’
그래서 고민이었다.
막내 천화가 말한 그런 극한 상황이 정말 도래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