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4권
서경 신무협 소설
1장. 녹림왕(2)
‘서, 설마?’
노관채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전면을 파고드는 애송이가 알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고수라는 걸 피부로 느낀 것이다.
‘강사지경?!’
상대가 펼치는 초식의 진정한 위력을 알았다.
저 하늘거리고 너울대는 빛의 실 줄기가 강기 직전의 도사 혹은 검사가 아니라 사실은 강기가 응축되고 또 응축된 후 만들어진 강사지기였다는 사실을.
버언쩌저적. 스가각. 스사삿.
“크아악.”
“커헉.”
무인지경이라고 해야 할까?
감히 그 앞을 가로 막아서서 한 초식 이상을 버텨내는 존재가 없다.
‘호걸대주와 부대주조차 한 수에 서너 조각으로 변해 버렸음에야…….’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덜덜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렸다.
머리칼이 쭈뼛 곤두섰다. 등줄기를 타고 피어오른 소름이 전신으로 쫙 퍼졌다.
‘어, 어쩌지?’
이제는 알겠다.
부딪치면 죽는다. 자신이라고 해도 반드시.
‘십여 초식 정도나 버틸까?’
전력을 다한다면 일다경까지도 버틸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결국엔 죽고 마는데…….’
노관채주 마등의 시선이 한천화의 뒤로 향했다.
검게 변해버린 안색은 오래지 않아 아예 흑빛으로 변해 버렸다.
‘씨바, 저 새끼들조차 다들 한 가닥 하네.’
거령이야 대가리니 그렇다고 치자.
놈의 수하들은 대체 뭔가?
단숨에 밀려 버려서 거령 한 놈만 남을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흐아아아-압!”
패애애액. 콰창. 뻐어억.
“크악.”
되레 밀고 나온다.
무슨 놈의 도끼질 한 방이 일류 고수가 전력을 다해 내려치는 것만 같다.
“하아아-앗!”
후우웅. 콰앙. 퍼어억.
“커헉.”
도끼질을 막아내질 못한다.
처음에는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저 따위 평범한 도끼질을 어째서 다들 받아내지 못하고 밀리다 못해 자신의 무기로 자신의 몸을 찍는 것인지 말이다.
“끼야아-압!”
패애애액. 쩌어엉. 퍼어억.
“크아악!”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겠다.
봉황채 산적들의 도끼질은 평범한 도끼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아아-압!”
도끼질 한 방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한다.
호흡과 도끼질이 완벽하게 일치하며 그 일격에 몸무게까지 오롯이 실려 있었다.
‘양패구상의 초식.’
마등은 그렇게 느꼈다.
떨쳐내는 모든 도끼질이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는 마지막 일격이라는 것을.
후우우-웅. 쩌어엉.
“커헉.”
그러니 쉽게 막아낼 수가 없는 거다.
상대와는 달리 지킬 게 많고 죽기 싫은 놈들이 양패구상을 받을 리가 없으니까.
‘저걸 받아내려면 저놈들보다 내공이나 초식이 더 월등해야만 가능한데…….’
호걸대나 녹천대 모두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니 미칠 노릇인 거다.
밀자니 실력은 안 되고, 그냥 놓자니 체면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건 물론이고 목숨까지 날아간다.
그때였다.
휘릭. 후우-욱.
무인지경으로 호걸대와 녹천대를 썰어 대던 한천화가 돌연 노관채주 마등을 향해 짓쳐들었다. 잠깐 놀라는 사이 길을 뻥 뚫어낸 것이다.
‘오, 온다.’
마등은 직감했다.
자신의 생과 사가 결정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순간,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들이 있었다.
바로 봉황채 산적들의 비명이었다.
쩌어엉. 퍼억. 삿.
“크아악.”
“커헉.”
진짜 양패구상을 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압도적인 도끼질로 선전을 하고는 있지만, 결국 숫자의 벽을 넘어설 수 없었던 거다.
파카-앙. 뻐어억. 서걱.
“끄으-흑.”
“큽!”
한 놈에게 둘, 혹은 셋씩 달라붙어 공격을 퍼붓다보니 잔부상이 누적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엔 하나 둘씩 쓰러져갈 수밖에 없었다.
마등의 마음이 기울었다.
‘버텨야 한다.’
하 팔채 소속 떨거지답지 않게 다들 놀라운 실력들을 보여주었지만, 지금 보여지는 것이 한계였다.
결국 처음에 내렸던 판단이 옳았다.
봉황채 놈들은 오래지 않아 거령 한 놈만 남고 다 쓰러질 게 빤했다.
‘그래야만 흑룡채 애들에게나 전강에게 녹림의 큰 형님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어.’
자신이 먼저 꼬리를 만다면 다 날아간다.
마등 본인을 녹림의 큰 어른으로 인정해줄 산적은 더는 없을 것이다.
‘전강마저 비웃겠지.’
그걸 어찌 견디겠나?
차라리 지금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백배, 천배 더 낫다.
‘좋아, 일다경. 일다경만 버티자.’
그래도 쫄리니까 거드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다.
뒤를 향해 외쳤다.
“전강. 네가 왼쪽으로 들어가!”
전강의 도주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분명히 합공을 위해 지시까지 했음에도 거부하거나 뒤로 뺀다면 이 일이 모두 마무리가 된 후 부하들에게 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예? 외, 왼쪽이라니…….”
“하아아-!”
스릉. 탓.
전강이 당황해하는 사이 마등은 패검을 뽑아들고 먼저 선공을 개시했다.
버언쩌저적.
필생의 공력을 집중시킨 모양인지, 패검 끝에서 두 자 어림이나 하는 검강이 피어올랐다. 이어 독문 검법인 철검혈화비검의 절초를 펼쳐냈다.
쉬가가-각.
허공에 검강으로 이뤄진 붉은 꽃송이가 수도 없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젠장. 으아아-합!”
한 발 늦게 상황을 파악한 전강이 한천화의 왼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버언-쩍.
통짜 쇠로 만들어진 철퇴를 휘둘러 갔다.
철퇴 끝에서 솟구쳐 오른 빛의 구(球)가 진한 황색을 띄어갔다.
후우웅.
묵직한 파동과 바람이 철퇴 끝에 맺혀 대기의 진동을 이끌어내었다.
***
‘다행이다.’
내 입술이 절로 하늘을 향해 말려 올라갔다.
강제로 열어젖힌 길 끝의 마등과 전강이 도주 대신 전투를 택했기 때문이었다.
‘뒤로 빠졌으면 피해가 더 컸을 텐데.’
지금도 익숙한 비명소리가 송곳처럼 가슴을 찌른다.
“크아악.”
“커헉.”
그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내공을 모두 신법에만 운용한 덕에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던 봉황채의 산적들이었지만, 결국 한계를 맞고 있었다.
후우-웅. 파카-앙.
차창. 스각. 서걱.
“크악.”
“커헉.”
이젠 처음과 달리 한 방에 상대를 골로 보내지 못한다.
계속된 전투에 힘이 떨어진 나머지 뒤로 밀리거나 되레 반격에 당한 것이다. 계속해서 진짜 양패구상으로 쓰러지는 수하들 숫자가 늘어만 갔다.
‘거령. 너만 믿는다.’
나는 수하들의 비명 소리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 신경 써 봐야 내 손발만 무뎌지니까.
그 대신 아낌없이 내공을 퍼 올렸다. 패왕도에 밀어 넣은 후 한 가지 구결을 이끌어냈다.
‘건곤일면무(乾坤一綿舞), 하늘과 땅을 하나로 잇는 춤사위가 있으니…….’
후욱. 삿. 휘릭. 스가각.
자유롭던 동작이 일정한 운과 율을 타기 시작했다.
덩실덩실.
중원에선 좀체 볼 수 없던 삼박자의 선이 고운 하나의 춤사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