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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포수가 160km를 던짐 3권
-대전 3연전 2
“3볼!”
[호크스 배터리가 백건우와 승부를 피하네요. 일부 대전 팬들이 야유를 보냅니다.]
 
강철웅이 마운드에서 나의 눈을 피했다. 
신인인 나를 상대로 이렇게 대놓고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니.
[볼넷! 걸어서 1루로 나가는 백건우.]
[2점 차에서 굳이 승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거죠. 원더스 타선에서 무서운 타자는 백건우뿐이니까요.]
“꼬마야. 인상 좀 풀어라. 이런 대우받는 것도 타자에겐 영광이야.”
“영광이든 뭐든 짜증나네요.”
“어쭈~”
1루수 남승룡이 나의 반응에 콧방귀를 뀌었다. 
‘뛰지 마.’
우리 벤치에서는 나에게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초구부터 도루하고 싶었는데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따아악- !
[에드가의 타구가 유격수 땅볼이 됩니다. 더블 플레이!]
4번 에드가가 병살타를 치며 나까지 허무하게 아웃이 되었다.
이어서 5번 유승우가 삼진을 당하며 이닝이 끝났다.
[결과적으로는 호크스 배터리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야구에서 고의사구도 명백한 작전이거든요.]
5회초.
여전히 3대1에서 나의 3번째 타석이 찾아왔다. 
호크스 벤치는 더 노골적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공 던질 것도 없이 자동 고의사구를 택합니다. 백건우가 또 걸어 나가며 2사 1, 2루가 됩니다.]
다음 타자 에드가가 3루 땅볼을 치며 찬스를 날렸다.
새 배트로도 그의 타격 부진을 구해낼 순 없었다.
[백건우와 승부를 피하고부터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호크스 배터리입니다.]
 L 원더스 타자들도 쪽팔리겠다. 진짜. ㅎ
 L 지난 시즌에는 건우 없이 어떻게 야구 했냐? ㅋㅋ
 L 에드가 저 새끼는 야구선수 맞아?
“야. 백건우. 정신 차려. 포수 마스크 쓰면 타격은 잊고 나한테만 집중해. 알겠냐?”
“네. 선배님.”
“짜식아. 진짜 겐세이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인상 쓰지 마.”
“예?”
“이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문턱이 몇 개나 있을 거 같냐? 생각보다 졸라게 많단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반드시 극복해야 할 단계가 빨리 찾아왔을 뿐이니까. 주둥이 내밀지 마.” 
툭- 
이치용이 내 엉덩이를 발로 툭 차더니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 걸음걸이가 어쩐지. 
‘발이 불편한가?’
나는 이치용의 조언대로 타격을 잊고 포수 역할에만 집중했다. 
따아아악- !
[잘 맞은 타구가 더 뻗지 못합니다. 우익수 플라이 아웃! 이치용이 5이닝 1실점으로 이닝을 끝내며 승리 투수 요건을 달성합니다.]
이치용은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내 5이닝을 채웠다.
“고생했다. 치용아. 6회부터는 불펜이 가동될 거니까 쉬어라.”
“예. 그러셔야죠. 코치님. 이번에도 내 승리 날려버리면 이 자식들 내가 직접 빳따를 칠 겁니다.”
“치용아~”
“뭐.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코치님? 지금 불펜이나 타선이나 쪽팔린 줄 알아야 합니다. 호크스 애들이 하는 거 보세요. 건우 빼고 나머지는 다 홍어좆으로 보잖아요!”
“야! 이치용. 오늘따라 말이 좀 많다.”
이치용이 언성을 높이자 잠자코 있던 주장 최재환이 발끈했다. 
그는 7번 타순으로 밀려난 후 야구에 흥미를 잃었는지 조용히 숙소와 야구장을 오갔다. 
주장 역할도 하지 않았다. 
클럽하우스에서도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울고 싶던 최재환의 뺨을 싸가지 없는 후배 이치용이 갈겨준 상황이다.
“내가 말이 좀 많으면 안 됩니까? 오늘 선발로 5이닝 1실점 했는데? 그런 잘난 선배님은 현재 타율이 어떻게 되시죠?”
“뭐! 이 새끼가 너 미쳤어!?”
“니들 뭐 하는 거야!? 중계 카메라가 찍고 있잖아!”
 
최재환이 이치용의 멱살을 붙잡자 신성락 코치가 말렸다.
[잠깐만요. 지금 원더스 더그아웃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요? 선수들끼리 몸싸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L 이제는 별 지랄들을 다 하네~ 
 L 야구를 못하면 사이좋게나 지낼 것이지~ 콩가루 야구팀~ 
 L 그냥 싹 다 잘라버려! 차라리 2군 애들을 올려라!
 L 큰일 날 소리! 원더스 2군 투수들 던지는 거 못 봤냐? 걔들 1군에서 던지면 다음 날 해외 토픽에 나올걸. ㅋㅋ 30실점 쌉가능. ㅎㅎ
 L 씨바. 이놈의 팀은 썩은 양파도 아니고. 까도까도 썩은 놈들이 나와…
코치들이 둘을 뜯어말려서 겨우 진정되었다.
이치용은 더그아웃에서 클럽하우스로 몸을 피했고 최재환은 씩씩거리며 타석에 나섰다.
원더스 동료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전부터 민망한 감정은 있었는데 내가 본격적으로 고의사구를 당하자 부끄러움이 폭발했다.
원더스 타자들은 나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더그아웃 분위기가 불편해서 땀에 젖은 언더 셔츠도 갈아입을 겸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치용이 구석에 앉아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도 참 무서운 놈이다. 양말이 다 피범벅인데 지금까지 이걸 참고 던졌어?”
“아~ 씨발. 아파 죽겠네. 그럼 어떻게 해요. 명색이 선발인데 5회는 채워줘야지. 쪽팔리게 아프다고 내려와요?”
“선배….”
“아! 깜짝이야! 뭐야? 왜 왔어?”
가서 상황을 보니까 가관이었다.
이치용의 왼쪽 엄지발가락이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스타킹이 빨갛게 물든 걸 보니까 발톱이 빠진 상태로 출혈과 통증을 참으며 던진 모양이다. 
“1회 패싸움 났을 때 제일 먼저 뛰쳐나왔다가 다쳤죠? 누구한테 밟혔어요?”
“야. 니가 무슨 소년 탐정 백전일이야? 왜 추리를 하고 지랄이야. 그냥 좀 밟혔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쪽팔리니까.”
“….”
매번 이야기했지만 투구는 정말 섬세한 기술이다.
어떤 투수는 손톱을 평소보다 살짝 짧게 깎았다는 이유로 그날 경기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엄지발톱이 빠진 상태로 5회를 던졌다구? 
이치용은 미친 인간이다.
내가 이런 돌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선배님. 오늘 첫 승 꼭 챙겨드릴게요. 걱정하지 말고 앉아서 쉬세요.”
“오냐~ 꺼져~”
나는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아. 맞다. 언더셔츠.
***
[3대1에서 마운드를 이어받은 원더스 구원 투수는 설형욱입니다.]
6회말.
우투수 이치용 다음에 좌투수가 올라오는 타이밍이긴 했는데 고재익이 아닌 설형욱이 올라왔다.
김진석 감독의 생각인지 아니면 신성락 투수 코치의 결정인지는 모르겠다.
고재익이 찰떡같이 흡수한 신구종을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설형욱을 챙겼다. 
“높은 직구로 카운트를 잡고 낮은 변화구로 유인하시죠.”
“그래. 건우야. 너의 사인대로 따라갈게.”
막돼먹은 이치용에 비하면 설형욱은 신사였다.
슬프게도 신사보다는 막돼먹은 인간이 마운드에서는 더 유리했다. 
설형욱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오늘 불펜에서 고재익이 공 던지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설형욱이라고 신성락 코치에게 파워 커브를 배우지 않았겠는가. 
단지 우연의 일치로 그의 손에는 맞지 않았고 고재익의 손에는 척 달라붙었을 뿐이다. 
주변에서 고재익을 칭찬할 때마다 설형욱은 본인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몸쪽 높은 직구.’
스윽- 
‘몸쪽 낮은 커브.’
스윽- 
첫 타자 알렉스에게 겁먹은 설형욱은 나의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몸쪽에 부담을 느꼈다. 
‘좌투수가 좌타자의 몸쪽에 부담을 느끼면 끝장이야. 던질 곳이 없어진다.’
알렉스는 장타력이 없었다.
이어서 나오는 장타자들과 승부하려면 미리 몸쪽을 몇 개 던져놔야 했다.
척- 
‘한가운데 직구.’
[투수가 투수판에서 발을 뗍니다. 무슨 일이죠?]
 L 무슨 일이긴 원더스 좆된 일이지… ㅎ
 L 내일부터는 1군에서 보지 말자. 설형욱 얘는 솔직히 1도 기대가 안 된다. 
 
‘몸쪽 높은 직구.’
끄덕- 
내가 다시 사인을 내자 설형욱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삼모사였는데 설형욱은 지금 그런 판단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설형욱이 초구를 던집니다! 아! 한가운데로 몰렸어요!]
따아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