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6권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6권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6
동경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6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Chapter 06.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6권
Chapter 01.
생클레어 가문의 화려한 응접실.
철컥!
두꺼운 문이 굳게 닫혔다.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서재에 앉은 노년의 사내.
차림새만큼이나 깔끔한 콧수염 위,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아들을 향했다.
“황실로부터 조합 설립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야겠느냐?”
생클레어 가문의 현 가주인 월터 생클레어가 차갑게 물었다.
마주 선 둘째 아들, 라인 생클레어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혈육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냉혈한.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였다.
“……죄송합니다.”
월터 생클레어는 찻잔을 기울였다.
“뭐, 사내가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지. 하지만 같은 실수가 두 번이 된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폰스 가문과 떨거지들은 어떻게 나오고 있지?”
“며칠 내로 자산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지분에 대한 배당금만 잘 챙겨주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 전쟁이 커질 때까지 최대한 몸을 낮추어야 한다. 큰 전쟁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니.”
“물론입니다. 제국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날이 은행 설립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반쯤 남은 찻잔을 살며시 흔들던 월터가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표정과 비슷했다.
“걸리적거리는 놈의 이름이 바토니 카일로라고 했던가.”
“맞습니다.”
“흠, 원정대가 소리소문없이 전멸한 선례가 있었나?”
“몬스터 토벌과 북부 원정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월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한데, 이런 상황에 네 형은 뭘 하고 있다더냐.”
“별장에서 책에 빠져 산다고 합니다.”
“다비드…….”
눈치를 살피던 라인 생클레어가 서둘러 대답했다.
“형님은 제가 잘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유가 뭐라더냐?”
“그게…….”
라인이 주저하자, 월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또 내게 무언갈 숨길 작정이냐.”
“아, 아닙니다. 단지, 동생으로서 형의 실수를 입 밖에 꺼내기가…….”
“말해보아라. 어서.”
라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신도 속아 넘어갈 연기였다.
“순위전 결승전에서 바토니 카일로의 검에 독을 발랐다고 합니다.”
“……!”
월터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형님에게 매수된 제국 기사들을 조용히 입막음하긴 했습니다만, 혹시라도 궁에서 알게 되는 날에는…….”
“하, 어리석은 놈!”
책상을 거칠게 내려친 월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중요한 시기에 그런 짓을 벌여? 제정신이라더냐?”
“…….”
“별장으로 사람을 보내라.”
“아버지.”
“문을 틀어막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라. 놈은 가주가 될 자격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 형님을…….”
“잔정에 휘둘리면 가문은 끝이다.”
“……알겠습니다.”
월터 생클레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비드는 어릴 적부터 가주가 될 자질이 충분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굴 때가 있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패배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따위의 성격.
처음에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해결 방식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흠…….”
생클레어 가문은 분기점에 서 있었다.
고리대금 조합과 은행의 설립.
그건 새로운 국가 체제를 의미했다.
전통적인 명예와 권력을 고집하던 세상에서 자본이 주인이 되는 세상으로의 분기점이었다.
장남이었던 다비드가 무너졌으니, 남은 건 둘째 아들뿐.
딸들은 어차피 출가외인이 될 몸이고, 각자의 정의가 너무나 뚜렷해서 뜻이 맞지 않았다.
“라인.”
“예, 아버지.”
“은행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오랜 전쟁으로 제국민들이 현실에 눈을 떴고, 전통적인 가치관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고로, 세상은 곧 변할 겁니다. 황제 위에 식량, 식량 위에 화폐. 이것이 제가 보는 미래입니다.”
거침없이 대답하는 아들의 모습에 월터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잘 보았다.”
“아버지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전선에서의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지?”
“레이카르트 기사단이 작전에 나갈 때마다 적들에게 정보를 흘리고 있습니다.”
“전사자는 많을수록 좋다. 전선이 확대되고 물자만 더 투입될 수 있다면 말이다. 곧 대규모 징집이 있을 터, 제국민들이 전쟁이라면 치를 떨도록 만들어라.”
“물론입니다. 벌써 황실과 귀족들의 돈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세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테고, 조만간 곳곳에서 자금 요청이 쇄도할 겁니다.”
“좋다. 빈민가는 해결했나?”
“그쪽은 데미안과 칼페온이 먼저 들어갔습니다.”
“해결책은?”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월터가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데미안은 뱀과도 같은 자다. 매사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일을 진행할 때는 과감하게 하도록 해라.”
“예, 아버지.”
“말이 좋아 남작이지, 칼페온은 뒷골목 건달들이다. 건달과 뜻을 함께한 대공이라니. 명분만 확실하다면 무슨 짓을 벌여도 좋다. 일만 잘 처리한다면 황명은 사후에도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이만 가보거라.”
라인 생클레어는 공손히 손을 모은 채 물러났다.
홀로 남은 월터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슬슬 개혁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칼은 반드시 생클레어 가문이 거머쥐어야 했다.
가문의 이름으로 이 혼란의 시대를 끝내야 했다.
계획은 이만하면 됐다.
건달 출신의 칼페온은 로페즈가 정리해 줄 것이다.
그동안은 같은 배를 탔던 탓에 손댈 수 없게 했지만, 앞으로는 달랐다.
딸이 가진 정의감을 이용해 놈들을 탈탈 털어버릴 일만 남은 것이었다.
* * *
늦은 밤, 빈민가 인근의 폐창고.
앞에는 양팔을 걷어붙인 칼페온의 조직원들과 벤젠이 서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 몸을 푹 숙였다.
조직원에서 지부장까지 올라간, 북부 연합을 처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벤젠이었다.
“물건은?”
“안에 있습니다.”
“문제 되지 않게 잘 데려왔겠지?”
“물론입니다. 귀신의 할아비가 와도 모를 겁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
그는 바토니 카일로였다.
“가자.”
벤젠이 문을 열어주었고, 바토니는 베레모를 푹 눌러쓴 채 창고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밧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
사내는 바토니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누가 이렇게 험하게 다루라고 했어?”